지난 2019년 12월부터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2020년 현재까지 전 세계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가 처음 발생한 지역이라고 알려진 중국의 도시 우한은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2개월 넘게 완전히 봉쇄됐었고, 밀라노, 파리 등 유럽의 대표적인 도시들에서도 시민들의 이동이 강력하게 제한됐습니다. 이번 사태로 전 세계적으로 약 10억 명의 인구가 격리 및 이동 제한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에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번 사태가 192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경제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모여야 하는 관광업 및 공연・예술 산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공장이 멈추고, 소비가 크게 줄고, 주식도 큰 폭으로 떨어지며 분야를 막론한 수많은 회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실제 미국은 지난 3월, 단 2주 만에 1,0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실업 급여를 신청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제대로 출근을 못 하고 원격 근무를 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누군가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 차원에서는 '백신'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바이러스'처럼 지구 환경을 파괴해 온 우리 인류를 효과적으로 억제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우리 인류의 활동이 급속히 위축된 덕분에 인도 북부 지방 주민들로부터 수십년 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히말라야 산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만큼 대기 오염 상태가 나아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밖 활동을 못하고 있는 덕분에 도시화로 터전을 잃고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던 동물들도 최근 다시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전 세계 수많은 도시들의 대기질이 개선됐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큰 폭으로 떨어져 기후변화 문제 대응에 긍정적인 영향도 주고 있습니다.
결국 경제적 부담을 차치해 본다면 우리가 이런 자제와 불편을 단 2개월만 감당하더라도 지구 환경에는 매우 커다란 회복의 기회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됩니다. 그만큼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지구 환경에 얼마나 큰 부담이 되어 왔는지를 분명히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지구에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존재인지는 사실 몇 십년 전부터 우리 스스로 매년 확인해 오고 있습니다. 1986년부터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이 매년 조사되어 발표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지구가 1년 동안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을 우리가 언제 전부 사용했는지를 알려줍니다.
1987년 당시에는 12월 19일이었지만, 2019년에는 7월 29일이 됐습니다. 한 해의 반 밖에 안 되는 기간 동안 우리는 1년 동안 쓸 자원을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곧 남은 반 년 동안 우리는 지구를 쥐어짜서 회복 불가능하게 파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현재의 심각한 지구 환경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지점은 무엇보다도 우리 절대 다수 시민들의 '생활'이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이는 곧 우리의 '소비'와 밀접히 맞닿아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통해 전 세계의 모든 국가 및 모든 계층의 시민들이 '소비'와 '생산'으로 함께 실시간으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무분별하고 거대한 소비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원을 무리하게 캐내고 동물을 학대하며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더욱 많은 공장을 돌리고 제품을 운송할 수 있는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를 제대로 멈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환경 문제의 원인과 책임의 소재는 소비 측면 뿐만 아니라 과잉 소비욕구를 부추기거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부 비용을 최대한 자연에 전가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생산자 쪽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복잡한 것들을 단칼에 끊어낼 수 있을 근원적인 '해결'의 열쇠가 우리 일반 시민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이런 우리 일반 시민들의 소비 행태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우리 개개인들의 '감수성'입니다. 우리의 소비는 '생존'을 넘어서면 매우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이 됩니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을 넘어서면 우리는 맛있어서 먹고 즐거워서 먹고 건강하기 때문에 먹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반 시민들 각자가 갖고 있는 '생태감수성'이 어느 선까지는 높아져야 합니다. 생태감수성은 곧 자연의 변화를 인식하고 자연에 감정이입을 하며 서로의 관계성을 인식하고 느낄 줄 아는 공감력입니다. 곧 가족과 함께 살아가듯, 친구와 함께 살아가듯, 자연과도 함께 살아갈 줄 아는 것입니다. 상대 안색의 변화를 눈치채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때로는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태감수성을 갖는다는 것은 자연과 우리의 '관계'를 전제합니다. 자연과 보다 건전하고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우리의 생태감수성도 함께 잘 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자연과 관계를 잘 맺고 있을까요? 관계는 상대방의 얼굴과 이름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사람과든 자연과든 상대방을 바라보며 그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관계가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 <꽃>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평소에 자연의 얼굴과 이름을 얼마나 알아보고 불러 주고 있을까요? 우리가 평소 흔히 볼 수 있는 가로수 나무의 이름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놀랍게도, 제대로 아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일 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대부분 도시에서 태어나 쭉 도시에서 커 왔고, 제대로 환경교육을 받을 기회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연을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 다수는 이제까지 자연과 관계를 제대로 맺어보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아픔과 처한 상황을 현실적으로 우리는 얼마나 잘 공감해 줄 수 있을까요? 반대로 누군가의 얼굴과 삶을 잘 안다면-설사 그가 범죄자였을지라도-우리는 잘 공감해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일반 시민들이 자연의 얼굴을 익히고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줄 도구 및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고민해 왔습니다. 그래서 <시민・되다>라는 소셜벤처를 창업하고 연구 개발 활동을 진행하여 <나의 지구를 지켜줘>라는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된 '빅게임'을 개발해 현재 보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나는 관찰한다(식물편)>이라는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된 '보드게임'을 개발하고도 있습니다.
'빅게임'이란 방탈출 게임처럼 참여자가 일정한 물리적 공간 안에서 퀴즈를 풀거나 다양한 미션을 온몸으로 수행하는 게임입니다. <나의 지구를 지켜줘>는 학교숲이나 공원 같은 도시숲 안의 나무들을 '미션 식물'로 만들어서 해당 식물을 직접 찾아 관찰하게 하고, 주변의 새소리를 듣는 등 다양한 생태 놀이 미션을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생태교육 빅게임입니다. 이를 통해 참여자들은 식물관찰 역량을 증진하고, 다양한 생태 놀이 미션을 통해 온몸으로 자연을 느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더불어 해당 지역의 전통과 역사도 익힐 수 있어서 참여자는 식물과 역사가 모두 어우러지는 '장소감(sense of place)'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숲 공간과 함께 어느 정도 이상의 비용이 요구됩니다. 또한 이 게임이 설치된 공간에 직접 가야만 제대로 참여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교실과 같은 실내에서도 언제든지 간편하게 진행하며 식물 관찰 역량를 증진할 수 있는 생태교육용 보드게임 <나는 관찰한다(식물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실내용인 <나는 관찰한다>, 야외용인 <나의 지구를 지켜줘>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향후 실내외를 모두 아우르는 효과적인 생태교육 패키지가 완성되리라 기대합니다.
이 쯤에서 이 글이 홍보도 섞인 글이라는 점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위의 문제의식을 모두와 함께 공유하고 싶을 뿐만 아니라 실제 그 해결을 위해 직접 실천하고 있는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열심히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개발한 이 생태교육 프로그램들, <나의 지구를 지켜줘>와 <나는 관찰한다(식물편)>을 보다 많은 분들에게 잘 홍보하여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잘 활용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애든 우정이든 겪어보면 사람의 모든 관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연과 우리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자연은 당신에게 하나의 '몸짓'일 뿐인가요? 아니면 얼굴과 이름을 갖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꽃'과 '나무'인가요? 아직 몸짓이라면 이제 그의 이름를 불러 주어 당신 곁에서 꽃과 나무가 되게 해 주세요.
[참고]
<나의 지구를 지켜줘> 홈페이지: www.savemyearth.kr
<시민・되다> 홈페이지: www.be-citiz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