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재형 Nov 11. 2022

나는 불안장애 입니다

여는 글

  인사드립니다. 나는 불안장애입니다.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지만 불안장애는 불안을 느끼는데 장애가 있는 병이 아닙니다. 장애가 있어 항상 불안을 느끼는 병이지요. 병의 이름에 도치가 쓰이다니, 생각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병을 가진 입장에서는 항상 재밌지는 않습니다만.


  1월에 나는 다 나아가는 병의 요양을 하는 요량으로 글을 쓴 바 있습니다. 육십 여일을 요양하는 중이라며 투덜거렸지요. 행복한 투정이었습니다. 그때는 요양일에 삼백 여일이 더 붙을 줄 몰랐거든요. 네, 맞습니다. 저는 불안장애를 1년째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병은 낫지 않았고요. 불안장애는 결코 만만한 병이 아닙니다. 일주일간 장염을 경험하고서 "이번엔 정말 죽을 뻔했어." 말하곤 했던 어릴 적 나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너 정말 죽을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고.


  불안장애의 유병률은 3~5%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인구를 5천만으로 놓고 그중 5%라고 한다면 2백5십만 명이 불안장애를 겪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불안장애는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강박장애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되기 때문에 저와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이 정말로 2백5십만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2백5십만 명이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이 막히는 기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목에 이물질이 든 기분에 헛기침을 하며 손발이 차갑고 땀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고 명치에 복숭아씨 같은 것이 떡하니 걸린 것 같은 기분을 느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당연하고요.


  불안장애 환자의 자기 고백과 같은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위에서도 썼듯이 병을 앓은 지 1년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1년 전을 정확히 기억합니다. 불안장애의 결정적 트리거는 백신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한 번쯤 맞았을 바로 그 백신이요. 저 멀리 대륙에서 넘어온 (시발, 대륙은 무슨 시발) 역병에 걸리지 않겠다고 저는 백신을 맞았고 2차를 맞았을 때 처음으로 공황발작을 경험했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불안과 죽음에 대한 공포, 과호흡으로 인해 방금 100미터 달리기를 마친 사람처럼 헐떡이는 가운데 나는 아, 이러다 죽는 거구나,라고 처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119 구급대도 타보았지요. 숨이 너무 안 쉬어져서 "저기, 마스크 좀 벗어도 될까요?"라고 구급 대원에게 물어봤는데 그 여성 구급 대원은 너무도 차가운 눈빛으로 대답하더군요.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사람도 마스크는 벗을 수 없어요." 누가 그걸 알았나요. 그냥 좀 무서웠던 것뿐이었는데요.


  코로나 백신이 정말 내 불안장애의 원인이 되는 트리거였을까요?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의사도요. 그저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가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답변입니다. "백신인 것이 확실합니다."라고 메시지를 전하는 순간 그들은 백신 희생자가 된 나를 위해서 여러 가지 귀찮은 일을 겪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은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개인이 나라를 이기는 경우는 없어요. 절대 인정받지 못할 거예요.


  나도 압니다. 인정받으려는 생각도 없고 이 나라, 대한민국으로부터 뭐, 백신 피해 보조금 따위를 받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그냥 조용히 한탄하고 말뿐이지요. 차라리 코로나에 걸리고 말지, 뭐 하겠다고 백신은 맞아서.


  아, 그래서 코로나는 걸리지 않았느냐고요? 걸렸습니다. 이놈의 역병은 이름을 바꾸기도 참 자주 바꾸더군요. 그때 이놈의 이름은 오미크론이었습니다. 지금은 BA 어쩌 구로 뉴페이스가 활개를 치는 모양이던데 질기기가 B급 공포 영화 속 살인마나 진배없습니다. 대가리에 총알을 아무리 박아 넣어도 죽지를 않아요.


  자, 그럼 1년이 지났으니 그럼 이제 많이 나았느냐? 증세는 많이 호전됐습니다. 그래도 1년이 지났으니까요. 불안은 느낄지 언정 죽을 것 같은 공포는 쉽사리 느끼지 않습니다.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하루에도 여러 번 숨이 쉬어지지 않는 느낌에 사로잡히지만 그게 단순히 '느낌'일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손발이 차가울 때는 엉덩이로 깔고 앉아 따뜻하게 해줍니다. 땀은 잠옷 바지 위에 슥슥 문질러 닦습니다.


  그럼 다 나은 거네? 아쉽게도 그건 아닙니다. 불안장애는 신발 밑창에 붙은 껌과 같습니다. 그것도 붙은 지 한참 후에 깨달은 껌과 같죠. 바닥에 신발을 벅벅 비벼서 껌을 떼어보십시오. 껌은 길게 늘어질 뿐 완전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불안장애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호전과 악화를 반복할 뿐이지요. 불안장애는 밤중에 잠깐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온 날파리와 같습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방에 있는 날파리. 안 보일만하면 어김없이 눈앞을 어지럽히는 그런 날파리입니다, 불안장애는. 여러분은 웬만하면 걸리지 마십시오. 물론 그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불안장애 1주년 자기 고백은 여기까지만 하렵니다. 새로운 작품 집필에 들어가게 돼서 자주는 못 쓰겠지만 그래도 틈이 날 때마다 신세 한탄 좀 하겠습니다. 불안장애 환자의 한탄은 우울감을 주변에 퍼트립니다. 그래도 글이면 조금 낫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아프지 마세요. 불안장애든 공황장애든 감기가 됐든 아프지 마십시오. 그리고 만약 그럼에도 아프게 된다면 일찍 나으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병환 1주년은 너무 애달픕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