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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늬 Nov 26. 2021

강아지 산책의 로망과 현실

episode12.그건 네가 좀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질문에 답변하기


동오는 실외 배변을 하기 때문에 하루에 2번 이상 산책은 필수다.

강아지를 안 키워 본 사람들은 낭만이 넘치는 산책 장면을 상상하곤 하지만 실제 '개'를 산책시킨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그것도 사람들의 편견 가득한 시선을 받는 '진도 믹스' '10kg'가 넘어가는 중형견을

여자 혼자 산책시키는 것은 심리적 체력적 소모가 정말 큰 일이다. 동오와 함께하는 산책이 쉽지 않은 것은 절대 동오가 문제견이어서가 아니다.


게다가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유난히 아이들이 많은 곳이어서 산책을 나갈 때마다 항상 초긴장 초예민 상태가 된다. 동오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공격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동오는 킥보드를 타고 돌진하는 아이들을, 괴성을 지르며 동오에게 돌진하는 아이들을 무서워한다. 동오에게 관심 없이 지나가는 아이들에게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데 가끔씩 "우와 멍뭉이다~!" 하면서 다짜고짜 동오에게 돌진해서 만지려고 하는 아이들이나, "꺄아아아아-"하는 소리를 지르며 동오에게 돌진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때 동오는 '멍' 하면서 오지 말라고 신호를 보낸다. 그런 경우 당연히 아이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동오 줄을 바짝 잡아당겨 멀어지게 하거나 아니면 아예 동오를 안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불도저처럼 다가온다면 나는 강아지가 아이를 무서워하니 다가오지 말아달라고 정중히 이야기한다.


애초부터 아이와 함께 나온 부모가 아이에게 강아지가 무서워할 수도 있으니 무작정 뛰어가지 말라고 강아지가 싫어할 수도 있으니 마음대로 만지면 안된다고 컨트롤하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정말 정말 극소수다. 뛰어가는 자기 애를 보고도 가만히~ 있다가 동오가 '멍'하면 그제서야 저렇게 크고 무서운 '개'를 왜 키워느냐는 혐오의 눈빛을 날리며 지나가기 일수다.


미안하지만 당신의 사랑스러운 아이가 괴성을 지르며 우다다 뛰어오는 게 당신에게는 간직하고 싶은 귀여운순간일지 모르겠으나, 나의 강아지에게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위협적인 행동으로 느껴질 수 있다. 당신의 아이가 당신에게 소중한 만큼 나의 강아지도 나에게 소중하고 서로의 안전을 위해 나는 만전을 기하고 있으니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런 일 뿐만 아니라 그저 동오와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을 뿐인데 왜 입마개도 안 씌우고 다니냐는 입마개 시비부터 시작해서 다짜고짜 왜 이렇게 큰 개를 키우냐는 밑도 끝도 없는 시비까지..(동오는 웰시코기 크기다) 이상하게 남편이 동오를 산책시키거나 함께 산책을 시킬 때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나랑만 산책을 나가면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산책만 나가면 초긴장 상태,  나 혼자 산책시키는 일이 심리적으로 체력적으로 힘에 버거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산책을 다녀와서 남편에게 몇 번 짜증을 낸 적이 있다.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 진짜 싫어 개념 없는 애엄마들 짜증 나;;"


남편의 반응은 "그건 네가 좀 예민한 거 아닐까?"였다. "가끔 네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때가 있는 것 같아"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그 사람들 생각은 안 한다는 거였다. 자기도 예전에 강아지를 무서워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프렌치 불도그 물림 사건을보고 난 후로 프렌치 불도그를 무서워했다는 거다.  


나 또한 강아지를 무서워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이들에게는 강아지가 귀신보다 무서운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다. 당연히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것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사람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다만, 난 무례한 사람들이 싫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정중하게 제가 강아지를 무서워하는데 혹시 먼저 가도 될까요?라고 묻는다면 난 두말하지 않고 그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을 거다. 자신의 아이가 강아지를 만지고 싶어할때 저희 아이가 강아지를 좋아하는데 한번 만져도 괜찮을까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죄송합니다 저희

강아지가 아이를 별로 안 좋아해요. 라고 정중하게 답변할거다. 사람들에게 내가 원하는 건 1%의 정중함이다. 실례합니다. 미안합니다 같이 그냥 의례적으로 붙이는 말들 제가 이런 상황인데 양해해주세요 같은 부탁의 어조 같은 거 말이다. 다짜고짜 왜 이렇게 큰 개를 키워요? 왜 입마개 안 씌워요. 어유 이런 개를 어떻게 아파트에서 키워 같은 앞뒤 맥락 없는 혐오의 말들과 무례한 사람들이 싫을 뿐이다.


게다가 내가 더 화가 나는 포인트는 남편과 산책 시에 이런 일이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다는 것이다. 왜 하필 나랑 단둘이 산책할 때마다 무례하게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생기는 걸까. 누가 봐도 어려 보이는 힘없어 보이는 여자인 내가 만만해 보여서 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서만큼은 프로예민러가 된다.  

나는 그게 싫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다.

아직은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내야만 하고

내가 목소리를 내면 누군가는 나를 반드시 미워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난 그게 두렵지 않다.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사람을 존중해야 하듯이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존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마치 죄인 것처럼 여겨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보다 어리다고 힘이 약해 보인다고 해서 무례하게 행동하는 꼰대가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산책 나갈 때마다 어이없는 이유로 시비 터는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평소 왠만한 일 다 웃고 넘어가는 순둥이지만

내 새끼 건들면 가만 안둔다.



수민

강아지 동오와 이제 셋이 살고 있습니다.

본업은 기획자, 부캐는 동오 언니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instagram : sumsumi_n


동오

진도 믹스 시 고르자브종 스트릿 출신 강아지

동네에 모르는 사람과 강아지가 없는 핵인싸견

하루에 두 번 산책해도 지치지 않는 개너자이저

유전자 구성이 다른데 왜 언니랑 성격이 같은지 미지수

@instagram : dogdong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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