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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 Nov 25. 2020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2)

만족의 삶을 사는 방법


 매년 2월 2일, 이곳 펑서토니에서는 마못(다람쥐와 비슷한 그라운드호그)이 겨울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려주는 축제가 열린다. 이 성축절에 현장에서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일기 예보관 필은 매년 펑서토니에 간다.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만족이 최우선인 사람이다. 함께 온 카메라맨 래리와 PD리타와는 다른 고급 숙소를 써야 할만큼 까탈스럽다. 매년 가는 펑서토니이지만, 겨울잠을 자던 마못 '필'을 꺼내서 귀를 기울여 해석해 온 동네 사람들에게 공표하는 이 이상한 전통이 이해되지 않는다. 자신의 할 일만 끝내고 어서 돌아가겠다는 필은 이 하루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자신의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이곳에 내린 폭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하루 더 묵게 된 필.

 다음날이 되자 똑같은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어제와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느낀다. 계속되는 데자뷰에 혼란스러워 리타에게 이야기해보지만 전혀 믿지 않는 눈치이다. 이상했던 하루가 지나자 또다시 돌아오는 2월 2일, 2월 2일, 2월 2일... 성축절에 갇혀버린 필은 지루하고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견뎌낼 방법을 찾아 헤매 다닌다. 필은 반복되는 하루를 어떻게 지내게 될까


(*아래 내용부터는 영화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이 영화의 원제목은 Groundhog Day, '성축절'이다. 필이 갇힌 하루. 축제이지만 늘 반복되는 이 하루에 갇힌 필은 필사적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성축절에 갇힌 필의 변화를 알아보고 싶다.



1. 혼란스러워하는 필

 당연하겠지만 필은 어제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호텔 사람들, 그리고 길에서 만나는 똑같은 노숙자, 우연히 만나게 되는 방정맞은 보험판매원 네드. 어제와 같은 물 웅덩이에 빠지는 자신의 모습까지 반복되는 데자뷰에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이런 감정도 잠시, 그는 곧 지루해진다. 항상 반복되는 하루와 다를 것 없는 일상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이라곤 없다고 느낀다. 

 몇 초 뒤에 이 도로에 어떤 차가 지나갈지, 나는 몇 초 후에 어떤 일을 해볼 수 있을지, 수없이 반복되는 하루에 지친 필은 어차피 내일이 오지 않을 거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는 무작정 이 하루가 어떻게 끝나든 똑같은 내일이 반복되니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저질러본다. 


2. 즐기려고 하는 필

 술에 취해 도로에 정차되어있는 차들을 들이받고, 차를 기찻길로 끌고 가고, 이런 일들을 반복하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마음에 드는 여자와 데이트하기 위해 여자 마음에 알맞은 답을 얻어, 새로운 내일에 여자와 데이트를 한다. 틀린 답이어도 새로운, 아니 내일은 다시 오늘이 되니 괜찮다. 자신의 반복되는 하루를 여자와의 데이트에 써보기도 하고 함께 왔던 PD 리타와 데이트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하루를 반복해 그녀가 마음에 들어할 만한 데이트 코스, 대화 주제, 좋아하는 음식까지 모두 준비하기도 한다. 

 반복되는 하루를 통해 얻고 싶었던 리타의 마음을 얻지 못하자 필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그 후부터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들을 반복한다. 삶의 의미가 없어진 그는 물속에서, 건물 위에서, 자동차 교통사고 등으로 죽지만 눈을 뜨면 다시 2월 2일이 그에게 와 있다. 


3. 가치를 찾는 필

 필은 더 이상 이 곳 펑서토니와 여기 사는 이들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다. 수 없이 반복되는 하루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리타에게 자신은 불사신이라는 말을 하며 매일매일 같은 하루에서 깨어난다고 털어놓는다.

                                              '저주가 아닐지도 몰라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렸죠 '

                                                                     '정말 낙관적이구만!'


 자신이 갇힌 이 하루와 이 마을, 그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게 된다. 부정하던 모든 것들에 대해 그는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하루하루 자신에게 반복되는 하루를 통해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반복하고,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에 도울 수 있는 것들을 도와주며 펑서토니의 하루를 지낸다. 자신에게는 새로운 내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본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 자신이 하는 일들.



 비로소 그는 자신의 반복되는 환경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의 만족은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결심과 선택한 것들을 사랑하는데서 온다는 것.

 배워보고 싶었던 피아노를 배우고, 얼음 공예를 연습한다. 매일 만나던 이들에게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그의 긴 겨울에 저녁 파티에 인생의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 2월 3일을 맞이한 필

 필은 '내일'을 맞이한 이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게 될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반복되는 하루가 아닌 자신의 선택과 삶을 사랑하는 자세를 이미 습득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에서의 의미와 가치를 느낀 필은 더 이상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불만과 불평, 이기심으로 보낼 수 없게 되었다고 장담한다. 

 


 자신의 만족이 삶의 방식인 줄 알았던 이 남자 필.

 사실 필이 살아갔던 방식은 진정 자신의 만족이 아니었다. 정작 자신의 만족이 무엇인지 모르며,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자신의 마음에 들기를 바라면서 지루함과 실증만으로 하루를 채워갔다. 그런 필의 하루는 2월 2일의 반복되는 기간들과 별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맞이한 내일이 바로 내가 맞이하는 오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주어진 환경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이런 결심을 하는 데까지는 누구도 관여할 수 없다.

 '낙관적이구만!'이라는 필의 한 마디에서 일상에 치인 필의 많은 감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고전 영화만이 주는 간단하지만 명확한 이야기를 곱씹어본다. 

 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필의 이야기가 위로가 된다.

 힘을 내라는 따뜻한 이야기보다 지금 우리들과 비슷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일까.

 

 손에 쥔 작은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타인과의 비교에 지친,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사진 출처: IMDB <Groundhod Day(1993)> Photo Gallery

                네이버 <사랑의 블랙홀> 포토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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