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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 Apr 22. 2024

일을 하려면, 낭만이 있어야 합니다.

7년 차 작가가 일하는 이야기 (1)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무려 7년을 일했다. 이 기간 동안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았다. 오롯이 일을 쉬었던 기간은 출산전후뿐이었다. 출산 후 100일이 지난 지금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렇게 필드에 7년을 있다 보니, 일과 나는 함께 성장했다. 일이 있는 환경 속에서 나는 20대를 보냈고, 30대를 맞이했다.


작가라는 명함을 받은 그 해에는 정말 많이 다퉜다. 철없는 아이처럼. 베테랑 기획자인 팀장님께 내 기획안이 더 낫다며 소리 내어 어필하면서 싸우고, 나보다 한참 업계에서 오래 일한 PD님과 처음 일하면서도 쪼는 모습이 하나 없어 '작가라고 곤조 부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일 자체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맞았을까. 그냥 일상에서 영감을 정말 많이 얻고, 그것을 정리하고 조합해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삶을 사랑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비교적 빠른 기간에 온전히 홀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고, 그 뒤로는 쭉 혼자 프로젝트를 쥐고 해낼 수 있는 메인작가가 되었다. 그 덕에 일에 빠져 살았던 3-4년간은 늘 긴장 상태로 살기도 했다. 그러다 이직을 준비하며 힘이 빠지니, 시야가 넓어졌다. 더 다양한 일을 하고 싶어 졌고, 브랜드 필름과 홍보영상을 만들던 작가에서 콘텐츠 에디터가 되었다.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회사는 1년 만에 직원 70여 명이 되었다. 그곳에서 콘텐츠 에디터는 혼자였다. 그 1년 동안 나는 이것저것 재미있는 일을 많이 했고 회사도, 일도 정말 사랑했다.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때문이었을까. 사랑하던 회사가 자꾸만 초창기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모습에 마음이 갈피를 잃었다. 짧고 굵게 사랑한 콘텐츠 에디터 직함을 내려놓고 회사를 나왔다. 


회사를 나올 때쯤 첫 번째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PD님이 감독님이 되어 연락이 왔다. 프로젝트 하나 같이 해볼 수 있겠냐고. 그렇게 프리랜서 생활이 시작되었다. 감독님과는 2년째 주기적으로 일을 같이 하게 되었다. 프리랜서로 있으니 더 다양한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가장 사랑한 회사의 1년이 많은 도움이 된 것은 확실했다.) 프리랜서로 있어도 출산 후가 걱정이 되더라. 출산한 지 3개월이 되니 몸이 조금씩 회복되었을 무렵 감사하게도 감독님은 다시 연락을 주었다. 


대학을 막 졸업한 사회초년생에서 아기 엄마가 된 지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 세상을 조금 살아봤다고, 때가 묻은 것인지. 한 편의 브랜드 필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회사의 모든 자료를 공유받는다. 내부인들만 볼 수 있는 자료가 많다. 브랜드 필름은 회사가 가진 비전과 철학을 녹여내는 것이 핵심인데 어느 순간에는 광고주가 말하는 회사의 역사와 철학이 꾸며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회사의 구조적인 부분 (직위, 예산.. 과 같은)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모르고 싶은 내용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정말 글이 안 써진다. (누군가에게는 일에 대한 불평, 불만 등이 될 수도 있겠다.) 낭만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내게는 가장 일하기 힘든 순간이다. 


이럴 때는 처음 일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사회 초년생 같은 마음, 순수하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아 질문을 정말 많이 하던 때.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내가 만들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한참을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빛나는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컨셉을 잡고, 기획을 시작한다. 이때가 본격적인 일의 시작이다. 


순수한 낭만을 가진 마음이 이야기를 만든다. 우리가 다니는 회사, 일... 낭만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꿈을 꾸고, 행복을 찾고, 사랑을 해야 일을 할 수 있다. 고작 7년 차 작가지만 아직 낭만을 품고 일을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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