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수많은 애니메이션 중 가장 감동적이었던 작품을 하나만 고르기란 정말 어렵다. 하지만 <라이온 킹>은 분명 상위에 꼽을만한 작품이다. 고대 영웅 설화와 똑같은 구조,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진행, 완벽한 음악. 아프리카에 가고 싶었던 건 이 작품 때문이었다.
실사판 개봉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처음으로 아이맥스를 예매하고 보다 몰입감이 높은 자리를 찾기 위해 콘서트 예매처럼 영화관 앱을 들락거린 결과 나쁘지 않은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개봉 다음날 용산 아이맥스에서 라이온 킹을 만났다. 하지만 이 영화가 3D였다는 것은 계산에 넣지 못했다.(나는 3D용 안경이 무겁고 어지러워 2D 영상으로 보는 4DX를 가장 선호한다.)
개봉 전부터 디즈니 유튜브로 티저 영상을,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OST를 듣고 또 들었다. 얼마나 기대를 하고 갔는지는 나만 아는 사실이다.
영화인지 아프리카 다큐인지 모를 화면
<라이온 킹>의 첫 장면은 명곡 'Circle of Life'가 나오면서 심바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갖 동물들이 모이는 장면이다. 애니메이션 때도 그랬지만 첫 소절과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은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다. 이건 실사도 마찬가지여서 '드디어 실사(애니메이션) 심바를 볼 수 있어!!!' 하며 기대감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코 앞에서 동물들을 보는듯한 장면이 계속되자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러다 동물들이 말하는 장면이 나오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게 라이온 킹이었지라고 생각하게 됐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동물들이 연기를 해도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실사 애니메이션에서는(분명 애니메이션이 맞긴 하다) 과한 더빙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 적도 있었다.
가장 과했다고 생각한 부분은 성장한 심바가 한숨을 쉬며 갈기털이 날아가고, 그 털을 얻은 라피키가 그걸로 점을 쳐서 심바의 생존을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원작에서는 심바의 털이 날아가는 장면이 길지 않다. 하지만 실사판에서는 털이 너무 많은 여정을 거치다 나중에는 쇠똥구리의 똥 속에까지 들어간다. 그걸 가지고 심바를 알아채는 라피키가 놀라울 정도였다. 그 기나긴 여정은 마치 '이거 봐, 실사판을 보러 왔으면 이 정도 실사 같은 장면들을 조금 더 경험해야지. 안 그래?' 하는 듯했다.
하지만 달라서 재미있었던 부분도 있었다. 운명을 깨닫고 돌아간 심바가 하이에나 정찰대의 눈을 피해 프라이드 랜드로 들어가려고 하는 부분이다. 원작에서는 티몬이 품바를 음식처럼 꾸미고 그 앞에서 하와이안 댄서 춤을 춘다. 하지만 이번 리메이크에서는 너무나도 유명한 <미녀와 야수>의 명곡, 'Be Our Guest'를 오마주 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빵 터진 장면이었다.
어린 심바가 날라와 함께 자주를 따돌리는 'I Just Can't Wait to Be King'에서도 애니메이션처럼 배경이 확 바뀌는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아기사자들이 정말 신나게 뛰어놀아 다른 동물들이 놀라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물론 음악은 이번이 훨씬 좋다. 마침 이번 곡에 원작 애니메이션을 붙인 영상이 있다.
그래도 원작 라이온 킹에 감동받은 사람이라면 볼만한 가치는 있다. 특히 OST는 애니메이션보다 뮤지컬 버전이, 뮤지컬보다 실사판 버전이 상당히 훌륭하다. 원래 훌륭한 곡을 더 아름답게 손댔다. 스카가 야망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Be Prepared'는 곡 자체로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다만 화면은 실사판이 너무 어두워 하이에나도 잘 안 보이고 특히 열병식 부분이 빠져있어 아쉬웠다. 물론 스카를 연기한 치웨텔 에지오포(Chiwetel Ejiofor)의 목소리가 정말 멋졌다. 노래까지 이렇게 잘하는 줄은 몰랐다.
물론 비욘세의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애니메이션에서는 날라의 표정이 어린이가 보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것 아닌가 했으나 실사판에서는 그런 표정까지는 나올 수 없으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음악이 더 빛난 장면이 아닌가 싶다.
아마 내 마음속에서 상상하던 것과 실사가 괴리감이 컸기 때문인 것 같다. OST는 예습(복습인가?)을 그렇게도 많이 했고, 디즈니 채널에서 새로운 티저 영상이 나올 때마다 몇 번이고 돌려본 것에 비하면 많이 아쉬운 작품이었다. <미녀와 야수> 실사판에서는 감동받아 눈물을 흘렸고, <알라딘> 실사판에서는 윌 스미스의 지니에 반한 것과는 차이가 좀 있었다.
그래도 심바가 실사로 돌아왔다는 점, OST가 더욱더 훌륭해졌다는 점에서는 꼭 한번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감동이 덜했던 것은 3D로 봐서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4DX로 한번 더 관람하면 괜찮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