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30대를 보내며
'요즘 애들은 그래?'
라는 말은 아마 30대 이전에는 하기 어려운 말일 거다. 30대 초반도 조금 머쓱하고 중반은 지나야 그런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90년생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책까지 나올 정도로 새로운 주류 세대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제는 2000년대 생들도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시기가 되었다. 내가 밀레니엄 해돋이를 보며 수능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던 그 시절에 태어난 아이들 말이다.
어쩌면 당신이
지금은 모르는 기분
아마도 70~80년대 생이 문화흐름의 주역이라는 의식을 처음 가진 세대가 아닐까 싶다. 그 이전 세대는 문화보다는 민주화나 복지 등 사회의식의 흐름을 주도했고 어느 정도 룰이 정해진 사회에서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만들어내고 즐기는 흐름은 90년대부터 절정을 맞았으니 말이다.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그룹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트렌드를 따라가는 입장이 되어본 첫 세대로서 느끼는 세대차이는 우리 엄마 아빠가 우리에게 느끼는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오늘 오전에 <서울 체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공연을 마치고 와서 '모든 것이 바뀐 세상에 나 혼자 남아있는 기분'이라는 이효리의 말에 엄정화는 '너도 아직 한창 젊을 때다'라는 말을 한다. 나는 엄정화가 젊다고 하는 이효리보다 다섯 살이나 어리다. 엄정화가 <디스코>라는 곡을 발표한 바로 그 나이, 서른아홉.
평범하게 군중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나 조차도 시대의 주인공들이 교체되고 있다는 느낌은 꽤 센티멘탈하게 다가오는데 저렇게 한 분야에서 탑이었던 사람이 그 자리에서 벗어나 이제 막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후배들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이 어떨지 가늠이 되자 나도 같이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남편이랑 같이 모교 앞에 놀러 갔을 때 학교 도서관 평상 앞에 앉아있으면서 뒤편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대학생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 나 이번에 거기 이력서는 광탈할 것 같아
- 그래도 너 OO는 다음 주에 면접이지?
- 아참, 걔는 남자친구랑 결혼한대?
- 다음 학기 휴학할 거야?
당사자들은 불안에 가득 찬 그 대화 속에서 아무것도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 나는 불현듯 부러웠다. 그 불확실성이 내포하고 있는 '가능성'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에. 아직 저들에게는 미지의 세계가 많이 남아있고 어떤 것이 될 수도, 누구와도 만날 수 있는 그 상태가 사무치게 탐이 났다. 그 후 5년이 지날 동안 나는 스스로 안식년을 가졌고, 직업을 바꾸었다. 그리고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직 맞벌이에 자녀가 없다는 점은 그때와 같지만 분명 큰 변화들이 있었다. 또한 30대 후반에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직장생활에서 매너리즘을 겪고 있는 친구들이 보기에는 부러운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안다. 지금은 그때만큼 '젊음이 주는 불확실성'을 동경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역시나 더 이상 스스로를 '요즘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멋쩍은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시큼털털한 아쉬움은 든다.
어쩌면 내가
지금은 알고 있는 것들
아직도 최고의 MC는 유재석이고, 전설의 디바는 이효리인 세상에 살고 있음에 안도하면서 언젠가 저들이 완전히 티비 속에서 자취를 감출 때쯤이면 그땐 정말 내가 늙었구나 체감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가깝게는 내 친구들 생각을 할 때도 세월이 흐름을 실감한다. 며칠 전 생일이라고 친구 한 명이 오랜만에 안부를 전해왔다. 2살짜리 아들을 키우면서 최근 이직까지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는 그 친구도 결혼 전에는 아프리카 사막과 마추픽추까지 다녀올 정도로 전 세계 곳곳 안 가본 곳 없이 다녔다. 그때마다 현지의 와인을 비교해 SNS에 부지런히 올리던 자유로운 싱글이었지. 그 친구가 정신없이 인생의 다음 단계를 클리어해나갈 동안 내가 대신 그 친구의 청춘을 추억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건넨 말이 '언제 한 번 만나서 그때 이야기 안주 삼아 술이나 한 잔 하자'였다. 연애 때문에 울고불고했던 시간들도, 학점에 목숨 걸던 일도, 취업 때문에 골머리를 싸매고 결혼 때문에 고민하던 것도 전부 다 그냥 뭉뚱그려서 애잔하게 그리웠다.
전 남자친구를 곱씹으며 잘 먹지도 못하는 소주를 들이켤 때의 그 첨예한 카타르시스까진 아니겠지만 왠지 와인 한 잔 천천히 음미하며 하나하나 되짚기에는 훌륭한 안주가 될 듯했다. <서른, 아홉>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것도 그 제목 자체가 와닿았기 때문이다. '서른 아홉'이 서른을 지나고 아홉 해라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에 30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내 나이를 마흔이 되기 전에 한 숨 고르는 쉼표로 생각해주는 느낌이랄까.
웬만하면 취하지를 않아서 취하려고 일부러 소주를 마셔보았던 쌩쌩했던 20대에서 기분 좋을 만큼 입에 맞는 술을 골라 마실 수 있는 30대를 지나고 이제는 좋은 술처럼 잘 익은 관계만 주변에 남겨두고 싶은 40대가 목전이다.
요즘 애들은 그래?
라는 말이 애수가 아니라 다름에 대한 존중이 될 수 있다는 걸 깨우쳐가는 서른, 아홉의 2월이 가고 있다. 술맛도 알고 살맛도 좀 알 것 같은 아름다운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