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에는 영화 <화차>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 어디까지나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평론이 아닌, 영화에서 다루는 ‘경찰’의 모습에 대해 해학적 시각으로 써 내려간 글이니 가볍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절대 붙잡히지 마
결혼을 한 달 앞둔 문호(이선균 배우)와 선영(김민희 배우).
두 사람은 시댁에 가기 직전 휴게소를 방문한다. 문호가 커피를 사고 돌아오는 사이 선영은 사라지고 없다. 고속도로 한복판 휴게소에서 차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진 그녀.
경찰은 단순 실종사건으로 취급하고, 수사에 진척이 없자 답답한 문호는 전직 형사인 사촌 형 종근(조성하 배우)에게 선영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종근의 탐문이 시작될수록 선영이 감추고 있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문호는 무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
2012년에 개봉한 <화차>는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 스릴러 영화의 수작으로 뽑힌다.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가 원작이다.
화차(火車)는 지옥에서 죄인을 실어 나르는 수레라는 뜻.
선영은 화차에 스스로 탑승했을까, 삶의 물결에 떠밀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흘러들게 됐을까.
일본 소설을 한국 영화로 각색하는 건 쉽지 않다. 아무리 흥행한 작품이라 해도, 원작의 흥행이 리메이크작의 흥행까지 보증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특히 수사물 리메이크는, 각 나라별로 사법 절차나 수사 기관 혹은 단계가 다르다는 점에서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예시로, 최근의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교통경찰의 밤>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거의 모든 도로에 CCTV가 설치된 나라에 살고 있다 보니 CCTV가 없어 사건 관계자의 진술을 종합해 신호등의 시간까지 계산해 가며 추리하는 모습이 너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미국드라마 <CSI> 시리즈는 또 어떤가? 범인이 저항을 하려는 모션만 취해도 총을 쏘고, 자신이 죽인 범인의 모습을 보며 이 사건은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하는 장면은 이 드라마가 정녕 외국 드라마임을 깨닫게 해 준다.
<화차>를 만든 변영주 감독도 각색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국민 정서에 더욱 와닿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으리라.
문호를 도와 자신만의 수사를 펼치는 종근은 원작 소설에서 ‘휴직 형사’로 나오지만, 이 영화에서는 ‘뇌물을 받고 파면된 형사’로 나온다. 한 마디로, 전직 형사라는 점이다.
이미 경찰관의 신분이 아닌 종근은 형사팀장으로 근무하는 친구의 명함으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긴 하지만, 진술을 확보하는 용도로 사용할 뿐 다른 수사는 모두 발로 뛴다(과학수사요원도 아닌 그가 지문 현출용 분말과 붓을 챙겨 다니는 장면은 약간 웃겼다).
종근의 모습을 보다 보면 원작자인 미야베 미유키가 일본 사람임을 몰랐어도 원작이 일본 배경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일본은 사설탐정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994년 첫 연재를 시작해 아직까지도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는 <명탐정 코난>만 봐도 알 수 있다. 작 중 ‘모리 코고로’는 경찰관을 그만둔 이후 탐정사무소를 차려 사설탐정으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사설탐정은 보통 공권력의 힘을 빌리기엔 시간이 없거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의 의뢰를 받는다.
지금 문호의 사정이 그렇다.
약혼녀가 사라졌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인정된 부부는 아니니, 실종신고를 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비장애인 성인의 실종은 범죄 혐의가 없는 한 ‘단순 가출’로 분류되어, 실종 초반에 공권력이 투입되기도 어렵다.
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1분 1초가 급한 상황. 사설탐정이 법적으로 금지된 한국에서, 이 빈자리는 ‘파면당한 형사’가 메꾸었다.
2017년 문화일보에 나온 기사를 보면, OECD 34개국 중 사설탐정이 법적으로 금지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https://m.munhwa.com/mnews/view.html?no=2017091301033539310002
우리나라에서도 사설탐정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고, ‘한국공인탐정협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탐정 자격증을 발급하는 중이다.
현직 경찰관 중에서도 은퇴 이후 삶을 위해 미리 자격증을 취득하는 사람이 있다.
사설탐정, 정말 합법화될 수 있을까?
행복하고 싶었어
한 여자가 기구한 삶에 의해 지옥으로 쫓겨갈 때 가만히 있던 법과 절차는, 오히려 그녀가 행복해지기 위해 스스로 움직일 때 긴박하게 움직였다.
화차(火車)에 탑승한 사람은 지옥까지 쫓아가도 화차(火車)의 운전대를 잡은 사람에 대한 후기는 없는 현실 앞에, 다소 숙연해지는 기분이 든다.
좋은 영화는 감상 이후 많은 생각과 해석을 양산하는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화차>는 정말로 추천하는 작품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가장 슬픈 영화였다.
나 사람 아니야. 나 쓰레기야
선영의 행동을 결코 옹호할 순 없다. 그녀 역시 자신의 욕망을 쟁취하기 위해 죄 없는 누군가를 지옥으로 끌고 가버린 악인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모든 해석 끝에 ‘하지만’이 붙는다.
하지만, 그렇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