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감의 이면
공감의 폭력
아리 애스터 감독의 연출작 미드소마는 주인공 대니가 남자친구의 친구인 펠레의 고향, 호르가 마을에서 열리는 하지축제에 참석해 벌어지는 일이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공포영화와 다르게 모든 사건이 백주대낮에 벌어지는데, 이 특징은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유혈씬과 밝은 톤의 의상, 밝은 색채의 건물들의 기괴함을 한층 더 부각하는 요소로서 작용한다.
주인공 대니는 가족들이 가스 중독 자살사고로 모두 사망한 이후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
남자친구인 크리스챤은 이를 위로하지만 대니의 증상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의존적인 성격의 대니는 이 사건 이후 남자친구에게 더욱 의존적으로 변하고 결국 남자친구의 친구들을 따라 스웨덴 호르가 마을에서 벌어지는 하지축제 미드소마에 참석하게 된다.
그러나 호르가 마을은 이상하리만치 강한 유대감으로 연결된 기괴한 마을이었고 축제의 일환으로 한 쌍의 노인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미드소마에 참석한 외지인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이 외에도 대니의 남자친구인 크리스챤에게 최음제를 먹여 강제로 마을의 소녀와 성관계를 맺게 하는 등 기괴한 일들을 벌이기 시작하는데, 종국에 가서야 호르가 마을의 미드소마 축제는 대지의 순환을 위해 9명의 사람을 제물을 바치는 거대한 의식이었음이 밝혀지며 막을 내린다.
극 중 대니는 미드소마 축제에서 5월의 여신이 된다. 5월의 여신은 미드소마 축제 기간 중 살아있는 여신으로 추앙받는다. 대니는 충격과 맞닥뜨리면 쓰러지거나 오열하는 증상을 보이는데 대니가 남자친구 크리스챤의 외도를 목격하고 오열하자 그녀의 시중을 들던 여성들이 대니의 감정을 따라 오열하는 모습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반강제적으로 마을 소녀와 성관계를 맺던 크리스챤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데, 크리스챤과 성관계를 맺던 여성이 신음을 내뱉자 그녀와 크리스챤을 둘러싼 여성들도 여성의 신음을 따라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흔히 사람들은 이 장면을 두고 호르가 마을의 기괴할 정도의 깊은 유대감을 나타낸 장치로서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화면상의 구도, 즉, 대니가 쓰러져 오열할 때와 크리스챤이 성관계를 맺을 때 여성들이 각각 대니와 크리스챤을 둘러싸고 있는 구도를 통해 호르가 마을의 여성들이 이 두 사람을 감정적으로 윤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호르가 마을의 사람들은 감정적 유대라는 탈을 쓴 정신적 윤간을 통해 긴 세월 동안 산 사람을 죽여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의식을 계속 이어왔다는 말이 된다.
감정은 직관적이기에 강력하다. 이성은 집중력을 요하나 감정은 특별한 집중력을 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은 대체적으로 감정적 자극에 쉽게 동요되곤 한다.
이 영화의 종국에 대니는 불타는 성전에서 죽어가는 크리스챤을 떠올리며 대성통곡을 하다 희미한 미소를 짓게 되는데 이는 강한 유대감을 가진 가족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강한 유대감을 가진 마을에서의 경험을 통해 극복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일치성과 유대감이 가지는 반작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다른 사람과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건 매우 즐거운 일이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그 사실만으로 개인에게 큰 위안이 된다. 그러나 개인에게 위안이 되는 일이 반드시 옳은 일일까? 마피아나 야쿠자를 생각해 보자. 그들도 유대감을 중시하고 조직원들은 유대감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린 마피아나 야쿠자의 존재도 합당하게 인정해야 하는가?
감정적 연결로 얻는 충족감은 순전히 개인적인 일이다. 그 유대감을 빌미로 무언갈 요구하거나 강요한다면 그건 진정한 의미의 유대라고 볼 수 없다. 유대의 탈을 쓴 폭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미드소마가 상당히 잔인하고 폭력적인 영화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감정적 연결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광기로 발전할 수 있다. 마치 호르가 마을에서 벌어지는 미드소마 축제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과의 1:1 관계에서, 혹은 나와 집단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이 영화를 보며 한 번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