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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Oct 23. 2024

그런데 교장선생님, 우리는 누가 달래주나요?

부디 따뜻한 라테 한 잔으로 선생님의 마음도 따뜻해지길...

교장실의 전화벨 소리는 곤한 잠을 사정없이 깨우는 휴대폰 알람소리 같았다.

"네 교장입니다."

"교장선생님, 지금 학생 한 명이 교무실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기 싫다며 교외체험학습을 허락해 달라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부모와 연락도 되지 않고 교무실 집기를 마구 던지고 난리도 아닙니다."

고3 부장 선생님의 전화였다. 100mm 달리기를 방금 끝낸 선수처럼 숨이 차서 제대로 말을 못 하였지만, 띄엄띄엄 들리는 말속에서 교무실의 긴박한 상황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알겠습니다. 그 학생을 지금 교장실로 보내주세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겠습니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우당탕탕 발소리와 함께 남학생 한 명이 교장실로 들어왔다. 곧바로 여자 담임 선생님도 들어왔다. 학생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목줄에 메인 성난 강아치처럼 씩씩 거리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빨개진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숨을 헉헉 거리며 문 앞에서 학생을 쳐다보고 있었다. 들숨과 날숨의 숨소리는 같았지만 교사와 학생의 표정과 마음은 학교 뒷 산 상수리 나뭇잎 색깔만큼 사뭇 달랐다.


"네가 박준태(가명) 구나. 여기 앉으렴"

나는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차분한 목소리로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당연히 학생은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교무실로 가셔도 좋습니다.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잠시라도 선생님과 학생을 분리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교무실로 가시라고 말했다.

"교장선생님 괜찮을까요? 지금 학생이 많이 흥분해 있고 돌발 행동을 할 수도 있어서요."

"괜찮습니다. 설마 준태가 날 때리기라도 하겠어요?"

걱정스러운 눈빛을 한 선생님은 머뭇거리더니 밖으로 나갔다.


"준태야 목마르지? 여기 음료수들 중에 뭐 마실래?"

나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 몇 개를 꺼내어 준태에게 고르라고 주었다.

"이거 마실래요."

준태는 목이 말랐는지 망고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의자에 덜컥 앉았다.

"준태야 점심은 먹었니?"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제를 돌려 물었다.

"네"

준태는 짧게 대답했다.

"그래 학교 다니기 싫다고?"

"..."

준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태야! 학교장 허가 교외체험학습은 교장 선생님인 내가 사전에 허락을 해야 가능하단다. 네가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싶은 이유를 알아야 허락을 해줄지 말 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냥 학교 다니기 싫어요.."

다물고 있던 준태의 입이 일그러지며 말했다. 아이는 그냥 학교 다니기 싫다고 한다. 준태 상황에 대해서는 담임 선생님한테 미리 들어 알고 있었다. 작년부터 친구 맺기를 어려워하고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한다는 사실, 그래서 학교를 자주 빠졌다는 말을 이미 들었다. 가정문제까지 얽혀 있는 준태에게 긴 말은 하지 않았다.

"알았다. 그런데 체험학습을 허락해 주는 데 조건이 있단다. 잘 지키겠다고 약속을 하면 허락해 주겠는데, 어때? 약속할 수 있겠어?"

준태는 교장의 약속이 궁금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약속이 뭔데요?"

"약속은 말이야. 먼저 체험학습 기간 동안 몸과 마음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생활하기. 그리고 체험학습 끝난 후 학교 잘 다니고 온종일 학교에 있기 힘들면 한 시간이라도 수업 듣고 집에 가기. 마지막으로 학교 왔을 때 배고프거나 목이 마를 때 또는 교장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싶을 때 언제라도 교장실로 찾아오기야. 어때? 할 수 있지?"

"교장실에 찾아와도 돼요?"

준태는 언제든 찾아오라는 말에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내게 물었다.

"당연하지. 지금도 세 명 정도 주기적으로 교장실에 찾아온단다. 너 허준 알지? 허준이도 가끔 교장실에 와서 음료수 얻어먹고 가는 걸"

"정말요? 허준이도 온다고요?"

준태는 학교 짱인 허준이도 온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근데 교장선생님, 제가 본 교장선생님 중에서 제일 잘 생겼는데요? 헤헤"

분노가 사라진 웃고 있는 준태의 얼굴은 교실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딱 고3 남학생이었다.

"자식 보는 눈은 있네 ㅎㅎㅎ"



학생은 서명을 받은 신청서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나는 교무실까지 아이를 데려다주려고 준태와 함께 나갔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은 교무실에 가지 않고 교장실 문 앞에 계속 서 있었다.

"교장 선생님 제가 준태 돌려보내겠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부모와 연락한 뒤 학생을 보내겠다고 하면서 나갔다.


한참 뒤 선생님이 다시 들어왔다.

"선생님 애 많이 쓰셨어요? 힘드시죠?"

"네 교장선생님 많이 힘듭니다."

선생님은 한숨을 깊게 쉬며 대답했다. 자세히 보니 선생님의 눈가엔 눈물이 맺혀있었다.

"제가 학생 잘 달래서 보냈습니다. 앞으로 잘하겠다고 약속도 했고요."

나는 학생이 들어올 때와 달리 나갈 때는 밝은 표정이었다고 강조하며 말했다.


"그런데 교장선생님 저희는 누가 달래주나요?"

순간 무거운 돌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혼미했다. 학생 마음만 살피고 돌볼 줄 알았지, 맹수에게 잡힌 사슴처럼 마음이 갈기갈기 찢긴 선생님의 마음을 미처 몰랐다.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얼마나 애쓰고 고생하고 있는지를요. 고3 담임이라 학생들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고생하시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진심 어린 나의 말은 선생님께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눈치였다.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천근만근의 몸을 이끌고 선생님은 한숨을 쉬며 교장실을 나갔다.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는 오늘도 학교는 언제나 소리 없는 전쟁터다. 각양각색의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살펴야 하는 교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겪는 감정 노동자이다. 학생에게도, 학부모에게도, 이 사회에서 지금처럼 인정과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그래서 조금 남아 있는 선생님의 자존심과 자긍심이 사라진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에게 갈 것이다. 영혼과 마음이 사라진 가르침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되기 때문이다.


따뜻한 차 한 잔 타주며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한 내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내일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정성과 공감이 듬뿍 담긴 커피 한 잔 내려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 같이 추운 날씨에 사회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우리 선생님들은 묵묵히 교실에서 학생과 희로애락을 함께한다.



방금

어제 그 선생님에게 따뜻한 제주말차라테와 빈츠 하나를 무심히 건네주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계시니 너무 애쓰지 말라는 말과 함께...

선생님은 감동이라고 하면서 더 잘 하겠다는 말고 함께 라테 한 잔을 들고 나갔다.

부디 따뜻한 라테 한 잔으로 선생님의 마음도 따뜻해지길 희망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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