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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보다 더 값진 진수의 은메달

by MZ 교장

"진수(가칭)야 고생했어. 너무 멋져. 금메달을 놓쳐서 너무 아쉽지만 괜찮아"

저는 열심히 뛴 진수를 응원했습니다.


"교장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는 은메달 딴 것도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은메달도 만족스럽다는 진수의 말이 교장인 저를 머쓱하게 만들었습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 학교 학생 한 명이 어제 막을 내린 제106회 전국체육대회에 육상 경기에 참가했습니다. 우리 학교 운동선수는 간신히 육상부의 명맥을 유지할 정도인 다섯 명입니다. 육상으로 그리 유명한 학교가 아니어서 그런지, 본교에 입학한 학생은 주로 선수 경력이 매우 짧거나 입학 후 고1 때 처음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학생도 있습니다.


이번 부산에서 열린 전국체전에 출전한 학생도 육상을 고1 때 본격적으로 시작한 학생입니다.

난다 긴다 하는 학생들만 모여 있는 체고(체육고등학교) 학생들을 제치고 일반고등학교 육상 선수가 도 대표로 전국체전에 참가했다는 자체만으로 매우 놀랄 일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고1 때 운동을 시작한 학생이 첫 출전한 전국체전에서 동메달과 은메달을 땄다는 것입니다. 특히 은메달은 1등과 고작 0.02초 차이 밖에 안 났습니다. 비디오 판독을 해야 할 정도로 간발의 차로 금메달을 놓쳤습니다.

바로 코 앞에서 이 경기를 직관한 저는 심장이 떨어질 것 같았고 제대로 앉아 있지 못할 정도로 초초했습니다. 목이 터져라 파이팅을 외쳤고 손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박수를 쳤습니다.




KakaoTalk_20251024_140041136.jpg 출발선에 있는 진수의 모습이 너무 멋집니다.



일반계 고등학교는 입시 결과에 민감합니다. 좋은 학교의 기준은 SKY 대학에 얼마나 많은 학생을 입학시켰냐로 판단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에 젖어 있던 저는 진수에게 금메달을 놓쳐서 아쉽다는 말을 해버렸습니다.


은메달 딴 것도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하지만 "은메달 딴 것도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라는 진수의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아팠고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학교 교육은 성적으로 1등 한 학생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는 비록 못 하지만 각자가 지닌 저마다의 꿈과 끼를 지닌 모든 학생을 위해 존재합니다. 체육대회 때 달리기에서 1등을 한 철수를 위해 존재하고, 축제 때 노래와 춤을 제일 잘하는 수진이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학교는 모든 분야에서 1등 학생만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2등인 학생도, 꼴등인 학생도 졸업 후 멋지고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 존재합니다.


학교는 우리 아이들에게 결과보다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함을 가르쳐줘야 합니다. 1등이라는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 주변에 있는 친구들임을 알려줘야 합니다. 기꺼이 친구들이 자신의 배경이 되어 주었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성인이 돼서 배경이 되어준 친구와 사회를 위해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일깨워줘야 합니다.






유난히도 더웠던 이번 여름에 새벽 6시부터 운동장 트랙을 돌았던 진수는 은메달도 매우 값진 노력의 대가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전국체전 육상 경기에서 장내 아나운서가 달리고 있는 진수를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운동을 시작한 지 1년 6개월밖에 안 됐다는 데 이렇게 잘 달리는 것을 보니 육상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나 봅니다."


저는 육상 코치의 말을 들어 잘 압니다. 진수가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1월과 찌는 듯한 올 8월에 얼마나 많은 땀을 트랙 위에 흘렸는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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