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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말구 Nov 22. 2020

[서평] 인간존재의 가치가 드러나는 삶

도로테 죌레, 『사랑과 노동』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새로운 기술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예상됩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작점에 있는 현재, 이와 관련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도 합니다. 새로운 산업기술이 어떠한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몰고 올지 대비하고 준비해야하기 때문이겠지요.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많은 일자리와 노동환경 자체가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란 예측이 있습니다. 세계적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 )은 그의 저서 『노동의 종말』(1995)에서 이미 기계화 및 자동화된 산업구조에 의해 인간의 노동이 로봇이나 기계로 대체될 것이며, 노동의 성격 자체가 달라질 것이라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의 보고서 ‘일자리의 미래’는 선진국 및 신흥시장 15개국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 향후 5년간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1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없어지는 일자리가 더 많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와 반대로 너무 비관적으로 여길 필요가 없다는 전망들도 있습니다. 미래엔 앞서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직업군들이 다양하게 생겨날 것이며, 그에 상응하는 다변화된 교육을 통해 새로운 기술에 부합하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현재로선 어떠한 전망이 들어맞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노동환경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많은 산업노동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산업노동자, 임금노동자의 처우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취약한 상태로 계속되어왔습니다. 노동현장엔 오늘날까지도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목숨을 잃는 생산 노동자, 택배 노동자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바로 옆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지요.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취약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이 많은 상태인데, 과연 새로운 노동환경의 변화가 노동자의 삶을 더욱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지, 아니면 더욱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노동환경의 변화의 시점에서 미래의 노동시장 변화를 탐구하기에 앞서, 노동 그 자체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노동현장에서는 노동자가 희생되었고, 해결되지 못한 어려움이 산재해 있기에, 노동에 대한 건강한 가치를 확립시키지 않고서는 새로운 노동환경의 변화에서도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무엇보다 신앙인으로서 노동에 대한 가치 정립에 있어 그리스도교 신앙은 어떠한 의미를 제시할 수 있을까요. 사실 노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신앙의 관점을 갖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시대에 따라 인간의 노동은 계속해서 새롭게 숙고될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은 인간 삶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요소입니다. 따라서 노동의 가치와 의미가 긍정적으로 세워질 때 우리의 삶 역시 건강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대로 노동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신앙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신앙은 노동의 가치를 무의미한 것으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신앙을 통해 어떻게 노동의 가치를 바로세우고, 또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도로테 죌레(Dorothee Sölle, 1929~2003)의 저서 『사랑과 노동』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도로테 죌레는 독일 쾰른 출신의 조직 신학자이자 여성 신학자입니다. 그녀는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강대국의 제3세계 지배와 같은 비극을 목격하면서 현실의 고통과 악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또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탐구했습니다. 특히 여성신학과 신비주의에 천착하면서 고통과 불의가 만연한 세계에서 신앙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신앙의 이정표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녀는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관념적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했습니다.

  특히 ‘인간은 사랑하고 노동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명제 아래 어떻게 인간이 세상 안에서 구체적으로 서로 사랑하고 노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신앙의 관점으로 조명한 책이 바로 『사랑과 노동』이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현대의 노동환경에서 한 인간의 가치가 오로지 노동력의 시장가치로 평가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여러 사회적, 경제적 조건들이 자본을 노동 위에 자리시킴으로 노동의 가치를 이윤추구에 고착된 부수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문제제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pixabay.com


  노동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노동과 임금노동을 동일시하는 데서 드러난다. 노동과 관련해서 우리는 창조가 아니라 돈을 생각한다. 노동이 삶을 유지하고 풍부하게 하고 충만케 한다는 점에서 노동 그 자체를 의미 있는 것으로 보는 대신 노동을 급료와 관련지으며 경제적 소득에 따라 평가한다. 이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는 만큼 노동의 의미는 공허해진다. 우리는 노동시장을 떠나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상품으로 노동을 축소시킨다. 109p  


  자본에 종속된 노동의 가치기준은 계량화되어 오로지 임금으로 밖에 제시할 수 없는데, 저자는 이러한 환경에서 노동은 아무런 자기실현이라든지, 성취감의 욕구를 채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노동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성경과 새로운 신학적 사유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저자는 먼저 창세기의 창조설화를 통해 인간이란 사랑하고 노동하는 존재로 창조된 존재라고 말합니다. 창조설화에 따라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존재가 되게 하시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창세 2,15)라는 말씀을 통해 노동하는 존재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창조에서부터 사랑하고 노동하는 존재로 창조되었고, 사랑과 노동을 통해 하느님 창조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출처: pixabay.com

  저자는 인간의 사랑과 노동의 의미를 하느님 창조에 협력하는 차원에까지 고양(高揚)시킵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노동은 부단히 지속되는 창조 과정에 대한 살아 있는 상징이다. … 한 인간에게서 노동의 가능성을 빼앗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인간다운 노동을 박탈당한 사람은 생산과정의 톱니바퀴 속에서 교환 가능한 나사처럼 취급되는데, 그는 노동과 실천, 자율적 활동을 통해 전개되는 창조 과정에 참여한다고 할 수 없다. 123p


  여기서 의문을 한 가지 갖게 됩니다. 인간의 사랑과 노동이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한다는 것. 노동이란 인간의 자기실현의 도구로써 하느님의 모상의 충만함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말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선 이러한 말들은 이상적(異常的)인 이야기로말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당장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처지도 있을 테고, 지금 일자리를 언제 잃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하며, 비참한 노동환경에 노출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노동에 대한 가치를 사유한다는 것은 관념적 유희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이야 말로 더 큰 해악을 가져올 것이라 말합니다.  


  노동이 노동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문제를 무시하면, 우리는 동을 교환가치에 따라서만 판단할 수밖에 없으며, 마치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인 목적이기라도  듯이 노동하는 인간의 자기실현이라는 목표를 포기하게 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러한 목표를 포기해서는  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의 가치를 추상화해서도  되며, 노동 시간 외에서만 인간의 가치를 인정해서도  된다. 159p


  신앙의 관점으로 노동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노동의 올바른 가치를 정립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이라는 자기실현의 실천과 사랑이라는 봉사와 헌신에서 인간의 존재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기계화되고 도구화되어버린 노동을 지향하는 사회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루하루 허덕이는 노동을 하도록 방치한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참된 노동, 가치 있는 노동을 꿈꾸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순 없을 것입니다.

  저자는 참된 노동의 의미를 드러내는 현대의 가톨릭 영성으로 ‘가톨릭일꾼운동’(Catholic Worker Movement)과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노동하는 인간』(1981)을 꼽습니다.

출처: pixabay.com


  '가톨릭일꾼운동'은 미국 대공황시기 일어난 가톨릭 영성운동으로 당시 미국의 어지럽던 사회, 경제 상황 안에서도 의미 있는 노동, 가치 있는 노동을 실천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입니다. 피터 모린(Peter Maurin, 1877~1949)와 도로시 데이(Dorothy Day, 1897~1980)를 중심으로 실직자들을 중심으로 조합을 만들고, 노동과 영성, 애덕의 의미를 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저자는 가톨릭일꾼운동이 이윤추구만이 목적이 사회에서 노동이 무의미하게 퇴색되었음을 고발하고, 참된 노동을 통해 하느님과 이웃과 관계 맺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했다고 평가합니다.  

  또한 저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노동하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이라는 근거로 노동하는 인간의 주체성을 심도 있게 밝혀냈다고 평합니다. 회칙 『노동하는 인간』의 강점에 대해 저자는 “어떠한 굴욕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가치를 강조하는 데 있다”(161p)라고 말합니다. 또한 『노동하는 인간』 6항을 두고 저자는 교황이 “노동의 복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평가하는데 회칙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특히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 분이 지상 생활의 대부분을 목수의 작업대에서 육체노동을 하면서 보내셨다는 사실을 그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노동하는 인간』, 6항)


  저자는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노동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신약성경에서 노동이 하느님의 창조를 계속 수행하는 것임을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예수와 그의 친구들이 살았던 삶이다. … 목수의 아들은 어부들과 실업자들 사이에서 활동했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 즉 여성들이었다. 예수는 억압받는 자들을 돌보았고, 쫓겨난 자들을 찾아갔으며, 병자들을 치료했다. 이렇게 사회의 곤궁한 상황에 반응했다. 그는 사회의 필요를 주변 집단, 약자들의 필요로 이해했다. 이처럼 생산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실제적인 필요를 중시하는 것은 의미 있는 노동에 대한 우리의 성찰에 매우 분명한 가르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7p

출처: pixabay.com


  『사랑과 노동』이라는 책은 끊임없이 노동의 가치가 자본과 임금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노동이 임금에 고착되고, 그것으로 가치평가가 되는 만큼 진정한 노동의 의미가 축소된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노동은 실제적으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 삶 안에서 사회와 이웃과 관계 맺는 행위의 총체를 뜻합니다. 이는 노동을 임금으로 평가하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자는 외침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노동을 바라보자고 권유합니다. 노동하는 인간의 전체성을 임금과 자본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이 책은 노동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다양하게 제시합니다. 우리가 흔히 ‘노동’하면 떠올랐던 패러다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를 상기시켜줍니다. 어쩌면 저자의 주장이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임금이라는 요소를 배제하고 노동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자본이 노동보다 우위에 있다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때 노동을 통해 자기 존재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임금이나 수익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봉사와 헌신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레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말한 바대로 21세기에 인간의 노동력이 로봇이나 기계로 대체되어 노동의 성격이 바뀐다면, 오늘 함께 살펴본 도로테 죌레의 노동의 신학적 의미는 매우 유의미한 통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동환경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며 노동의 가치를 재정립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현실에서는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노동현장의 외침이 들립니다. 또 미래에는 그것이 어떻게 변할지도 알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자 도로테 죌레는 하느님 창조의 협력하는 사랑과 노동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를 비롯한 교회의 성인들이 말한 ‘희망’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희망을 통해 더 나은 노동환경을 위한 길을 준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어려운 노동환경 안에서,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미래의 노동환경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통으로 노동의 의미가 건전하게 자리 잡길, 노동이 오직 임금이 목적이 아니라 이웃에게 봉사하고, 헌신하고, 하느님과 관계가 목적이 되길, 많은 이들이 노동을 통해 희망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길, 이 책을 읽으며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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