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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로등 Dec 31. 2021

영어성경을 필사하다

Holy Bible - NIrV

예전에 영어공부에 한창 열심일 때가 있었다. 

하루가 너무 짧아서 마음이 조급했고, 시간을 만들어보려고 4시 30분에 일어나 출근 전에 두 시간을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휴직을 하고 나서는 내리 대여섯 시간을 영어로만 쓰고 읽고 듣고 보고 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요즘은 통문장에 대한 감각을 익히려고 필사를 한다. 통으로 먼저 문장을 읽고 외운다음 그대로 노트에 쓰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문장의 이해가 편해지는 것 같다. 


나는 쓰는 것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글씨를 못썼다는 이유로 교탁 앞에 나가서 일기장을 지우개로 모두 지우는 수모를 당한 후에는 내 글씨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학창 시절 내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글씨 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인지 내 글씨를 내 손끝에서 만들어내고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즐겁다. 


만년필이나 유성펜으로 종이에 쓰는 것도 좋아하고, 키보드를 두드려 쓰는 것도 좋아한다. 

전자는 천천히 쓸 때 좋고, 후자는 생각을 속도제한 없이 풀어놓고 싶을 때 쓰기 좋다. 


써보면 뭔가 다르다. 당장 달라지지는 않는데, 내 안의 뭔가 달라지는 느낌이 들고, 쓰는 순간에 빠져드는 경험도 하게 되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쓰기의 매력이다.


어쩌다 보니 요즘은 영어성경을 필사하고 있다. 

내가 따라 하던 영어공부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이 제안하셨었다.


그때는 성경이라는 책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고, 두께에 대한 부담감도 있어서 한 권 사서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었다. 그 책을 볼 때마다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처럼 느껴졌었는데, 지난달 어느 날 드디어 아무 곳이나 한 페이지 펴서 따라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을 따라 쓰다 보니 나름 매력이 있었는데, 첫째는 쉬운 영어로 되어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내용에 뭔가가 있다는 점이었다. 


선생님이 추천하신 이유도 쉬운 영어라서였고, 대개 문장이 두 줄을 넘지 않는다. 관계대명사가 있어도 문장 내에 한 두 개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 번에 읽고 외워서 따라 쓰기를 할 만하다. 게다가 영어 이름의 많은 부분이 성경에서 나온 이름들임을 알게 되었고, 각 인물들이 행한 일들이 있으므로 영어 이름을 보면  대략 어떤 맥락에 있겠구나 짐작해 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하지만 영어 표현이 쉽다는 것이지 내용이 쉬운 것은 아니다. 


Jesus라는 사람이 얘기하는 것은 정말 밑도 끝도 없다. 그런 그를 의심하고 경계하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정말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겠구나 짐작도 해 본다. 한 번씩, 그가 말하는 것이 내게 의미가 되어 다가올 때가 있다. 


예를 들어 Jesus가 말했다. 그는 그의 아버지(Father)와 함께 있다고. 그 아버지가 대체 누구인가? 왜 같이 있는가? 거칠게 이해해보고자 하면, 아버지는 아마도 근원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축의 시대에 발원했던 영성의 개념들이 서로 어디서든 만나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그 개념들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성경이라는 책이 고전의 하나로 여겨질 만큼 시대와 개인차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영어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 따라 쓰기 시작했지만, 점점 내가 예상하지 못한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것이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꾸준히 하면 걷게 되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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