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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로등 Mar 27. 2022

다시 원서 읽기를 시작하다

시작은 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서서히 내 삶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삐걱거리고 우울함이 시도 때도 없이 몰려오곤 했다. 겉보기에 가장 큰 이유는 복직 후에 회사에서 경력단절이 됐다는 것이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 대해서 아무런 자신감을 가질만한 일이 없었던 점이 더 큰 이유였다. 


나는 건강과 워라밸을 실현하는 40대 직장인으로 사는 듯이 보일 것이다. 남들도 퇴근하는 시간에 셔틀버스를 타고  올림픽공원 앞에서 내린 후 그 공원을 25분 정도 걸어 관통해 집으로 갔다.  하지만, 때로는 나만  패배자가 된 것 같은 느낌 속에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영하 10도의 겨울밤에도 걸어서 퇴근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미 어두워진 동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삶에 대한 의욕이 생겨남을 느꼈다.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 이 상태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았다. 역시나 무엇을 해보려 해도 하루 이틀 만에 주저앉아 자책하기 일쑤였다. 무엇인가 써보려 해도 노트가 맘에 안 들고, 펜이 이상하고, 팔도 아프고 시간도 없어 못하곤 했다. 


그러다가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려 하면 이유는 셀 수도 없이 만들어진다는 것. 그리고 나는 사실 무엇을 해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는 인정했다. 사실은 그 패배감의 구덩이 속에 피해자 역할을 하면서 계속 웅크리고 있고 싶은 게 진심일 수 있다고 말이다. 아니, 그게 진심이라고.


억지로 나를 끌어내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력할수록 안 끌려 나오는 나였으니깐.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네이버 블로그에 서로 이웃을 신청했다. 내 블로그는 그야말로 먼지 날리는 곳인데 말이다. 누구실까? 그분의 블로그에 들어가서 봤더니 매일 운동하고, 명상하고, 공부하는 것들을 인증하고 계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글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왜 충만감이 드는 것인지, 그  좋은 느낌에 매일 블로그를 들어가 보기 시작했다. 


또 다른 한 분의 블로거가 있는데, 예전에 영어책을 읽다가 너무 단어 찾기가 귀찮아서 단어장을 찾아보다 알게 된 블로그였다. 그런데 아직도 원서를 꾸준히 읽고 기록을 남기고 계시는 것이었다. 


블로그 상으로 두 분 모두 직업이 있고, 10대의 아이들(복수)이 있는 분들이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힘들고, 비참하고, 잘 안된 인간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가 만든 그런 이야기 속의 주인공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꾸준함과 스스로의 동기부여가 선순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그 블로그들만 봐도 내가 동기 부여됨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나만의 방식으로. 아이들 읽게 하려고 사둔 책들, 그것들을 더 이상 방치할 필요가 없다. 내가 읽어줄게.  사실 내 영어 공부의 목표는 Gerard Diamond의 <Guns, Germs and Steel>과 Yuval Harari의 <Sapiens>를 원서로 읽고, 그런 류의 책들을 원서로 읽고 이해하는 것이다. 


시작이 없으면 완성도 없고, 과정이 없어도 마찬가지다. 오늘 내가 원서를 읽는다면 분명히 목표와 한 바운더리 내에 있게 되지만, 오늘 읽지 않는다면 나는 목표와 아주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영어 원서 읽기를 시작했고, 세 권을 마친 오늘 1년 후에 내 읽기 목록과 단어장과 블로그와 브런치가 모두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지 상상하며 설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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