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해서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누었나요?
어떤 풍경을 오래 바라보았고, 어떤 생각에 잠시 빠져 있었나요?
오늘 하루의 인상을 몇 줄로 남겨둔다면 그건 어떤 문장들이 될까요?
-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김신지
책을 읽고 덮는 순간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지 쓱싹쓱싹 잘도 지워냈다. 그래서, 기록을 남기기로 했지만 그럼에도 잘 기억에 안 남는 장면들이 가득할 때가 있다. 분명 이 책을 읽고 기록도 남긴 것 같은데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 생각을 되짚어 보지만 빠르게 지워버리는 머릿속 지우개는 그런 생각마저 지워버릴 때가 많았다.
그럼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책 속에서 한 가지는 꼭 실천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났고, 이 책을 읽자마자 5년 일기장을 구입했다.
벌써, 5년 일기장을 쓴 날이 15일을 지나 달려가고 있다.
기억에 잘 남는 책도 있지만 모든 책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어서 한 가지를 실천해보려고 해도 실천한 것으로 끝나버릴 때도 많다. 그래도 무언가를 계속 꾸준히 해보려고 하는 중인데, 유독 오늘 책에서 적은 이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라는 문장이.
아직 오늘 하루가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는 장면들이 없었다. 몰아치는 일을 해결하고 들어와서 그런 걸까, 오늘은 유독 무언가를 하는 게 귀찮아진 날이었다.
사진처럼 오늘 해야 할 일이 쌓였다. 읽어야 할 책이 있었고, 영어 원서도 읽어야 하고, 글도 써야 했다.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어서 그걸 정리할 겸 기록해야 하는 노트도 있었고, 과제로 주어진 글쓰기도 따로 있었다.
순간 턱 막혀오는 조급함을 가라앉혀주는 건, 지브리 음악 정도랄까. (이래서 지브리 음악을 못 끊어..).
퇴근을 하면서 펼쳐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세워놨던 계획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자연스럽게 소파로 직행해 누워서 드라마를 보는 순간 퇴근하면서 세워놨던 계획들이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사라져 버렸으니까. 멍하니 드라마만 보다가 아차 싶은 마음에 정신을 차린 건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였다.
해야 할 일들을 되짚어보면서 남은 시간을 가늠하면서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퇴근하면서 사 왔던 따뜻한 유자민트티와 동생이 먹으라고 어제 사다 준 달달한 케이크는 계획했던 일을 하면서 먹으려고 했었는데 이미 드라마와 함께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조급한 마음에 해야 할 일들만 펼쳐놓고 하다가 멈추고 다른 걸 하고, 그것도 하다가 멈추기만 했다.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니 집중하는 시간이 빠르게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부터 써야겠다는 생각에 글을 쓰는데, 안 써진 것도 잠시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마음이 점점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조급했던 마음뿐만 아니라, 슬금슬금 공간을 넓혀가던 자책하는 마음마저 흐려지기 시작했다. 매일 해야 하는 일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유독 자책하는 날이 많아질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글을 쓰면서 그 마음이 사라졌다.
이래서 글을 먼저 쓰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의 하루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다시 되짚어본 하루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길게라도 아니라면, 아주 짧게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일을 한다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계속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5년 일기에는 오늘도 글을 쓴 하루였다-라고 적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