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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형 물고기자리 Dec 16. 2020

북 리뷰 : 명랑한 은둔자

내 마음속 이야기를 써 놓은 듯한 에세이 집

다양한 책을 읽기 위해서 나는 주기적으로 알라딘 사이트에서 베스트셀러를 확인한다. 지난 늦여름 알라딘에서 발견한 이 책이 내 눈을 사로잡은 이유는 제목과 표지 사진이다. “명랑한 은둔자”라니.. 은둔자라는 표현도 생소하였고, 심지어 Karen Offutt의 표지 그림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화사한 여성을 그렸다. 명랑, 은둔, 화사함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감정들인가? 


[책 기본 정보] 

제목 : 명랑한 은둔자 (The Merry Recluse) 

지은이 : 캐럴라인 냅 (Caroline Knapp) 

옮김이: 김명남 

바다출판사 2020-09-04 (원작 출판 2004년)


 

     캐롤라인 냅은 2002년에 42세의 나이로 사망한 미국 작가다. 1959년 정신분석학자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위성도시 케임브리지에서 자랐고, 브라운 대학교를 졸업한 뒤 그 도시에서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고,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가서 전업작가로 살다가 폐암으로 죽었다. 20대와 30대에 겪었던 극심한 거식증과 알코올 의존증 경험을 바탕으로 총 3권의 에세이를 펴낸 그녀가 30세부터 42세까지 (1990년대가 주로이다) 썼던 글을 모은 유고 에세이 집이 “명랑한 은둔자”이다. (알라딘 소개 참조)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기록한 것의 책의 목차이다. 책은 총 5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홀로 (고독, 수줍음, 외로움) /함께(우정, 가족, 사랑, 루실)/떠나보냄(상실, 애도, 금주)/바깥(세상)/안(생각들) 

가장 공감이 된 챕터는 첫 장인 “홀로”이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아이비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로 일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녀가 스스로 고독한 삶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차분하게 적어 내려갔다. 타인의 평가, 경쟁 속에서 떨어져 나가 혼자서 글을 쓰고, 자신의 고독을 이해하는 친구와 만나고, 가족과 교류하고, 개를 키우는 삶을 선택하면서 평화로운 일상을 가지게 된 그녀의 고백은 마치 내가 지나온 삶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대필하는 듯했다. 너무나도 평범하게 때로는 비범하게 일상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했던 내가 점점 집에서 홀로 있는 순간에 비로소 평안을 느꼈던 이유를 캐롤라인 냅이 담담하게 적어간 듯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32살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새로운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매주 임원회의에 참석해서 발표해야 하는 주간 업무 보고를 준비하기 위해서, 일요일 저녁에 종이 한가득 발표 스크립트를 써 내려가던 작고 연약했던 나의 모습이. 


           “홀로” 챕터 중, 작가는 고독과 고립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또한 제목인 명랑한 은둔자에 대해서 작가는 마술적이고 변혁적인 재구성이라고 한다.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이 말을 다시 들어보라. 산뜻하고 멋지게 들리지 않는가? 만약 누군가가 어제 – 한 시간 전, 10분 전이라도 마찬가지이다 – 내게 내 존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보라고 말했다면, 나는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았을 것이다. 나는 독시 여성이에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서른여덟 살이고, 좀 외톨이처럼 살아요. 

캐롤라인 냅과 루실

           얼마 전 본 영화 “beautiful boy”에서, 약에 중독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 출신의 주인공은 중독된 이유를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약함, 어두음이라고 말한다. 현시대에서 중독의 이유는 단순한 사회적/계급적 요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작가 캐롤라인 냅도 거식증과 알코올에 중독된 삶을 스스로 인정하고 극복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삶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1990년대에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2020년 현재에도 공감이 가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들을 솔직하고, 지적이고 또한 위트 있게 썼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을 때 같이 들을 만한 음악을 추천한다면, 몇 년 전 겨울 크리스마스 즈음의 애플 광고 음악으로 나왔던, Billie Eilish의 “Come out and Play”이다. 유튜브에서 그 당시의 애니메이션 TV CF를 틀어놓고, 이 책을 읽은 다면 지금 혼자 있는 당신의 외로움이 아프게만 느껴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친구가  “왜 혼자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해”라고 물어본다면, 이 책을 친구에게 선물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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