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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필 Apr 18. 2024

글을 쓰는 이유

글을 쓰려면 세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1.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

2. 그것에 대해 알고 있을 것

3. 그것을 객관적으로 볼 것


여기서 그것이란 주제, 소재다.

소재는 재료다. 재료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것이 주제다. 소재는 도구고, 주제는 목적이며 결과다.

여기 석고돌이 있다. 그리고 정과 망치, 끌이 있다.

석고를 쪼아내서 뭐가를 만들고 싶다.

그런데 무엇을 만들지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잘못된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아차…. 이걸 쪼아내면 안되는데.. 하고 후회한다.

후회할 것 같으니까, 함부로 망치질을 하지 못한다.

망설이기만 한다.

뭔가 대단한 글을 쓰고 싶은데, 쓰지는 않고, 생각만 하고 고민을 하는 상태다.

어떤 사람은 그런 상태로 10년 넘게 보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금방 자신의 문제를 자각하고 함정에서 빠져나오지만, 어떤 사람은 평생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기도 한다.

글쓰기뿐만 아니다. 인생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뭔가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의욕도 없고, 구체성도 없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설레지 않는다. 멋진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현실속 무기력이 큰 법이다.

글쓰기도 인생과 같다. 다른 일도 그렇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글이 시시하다 여기는 것은 글보다 자기 해석이 강하기 때문이다.

자기해석이 강한 글은 위험하다. 여기서 말하는 글이란 문자로 표현된 모든 것이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자신의 글을 끝없이 해석한다. 의미가 있다 없다. 재미가 있다 없다.

잘 썼다. 못 썼다. 해석이 디폴트값이 되면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다.

스스로 작가라고 여기는 사람은 어떤 글이 좋은 글이고, 쓰려는 글에 대한 막연한 목표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막연함이다. 막연한 목표 때문에 결과물로 나오는 구체적인 자신의 글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목표와 내용의 섬세함이 구현된 구체적인 생각이 있으면 글로 비슷하게 구현이 된다.

100%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목표 달성이 된다.

하지만 구체성이 결여된 막연한 목표인 경우에는 자신의 글에 대한 끝없는 자기해석만 줄줄이 이어진다.

자기 해석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좋다와 그렇지 않다.

막연함으로 좋은 글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오랜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을 많이 하면 막연함은 구체성으로 바뀐다.

그 어떤 글도 구체성 없이 드러나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의 경우는 막연함의 옷을 입고 깜깜한 거리를 돌아다닌다.

생각하고 애를 쓰지만, 보고 듣고 배우고 성장하고 달라지는 것이 없는 상태다.

이런 상태로 글을 쓰고, 이런 상태로 공부를 하고, 이런 상태로 일을 하고, 이런 상태로 삶을 산다.

스스로 답답하니까 스트레스가 쌓인다.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길은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무기력으로 연결된다.

글을 쓰려면 무언가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관심이 점점 옅어지니 글을 쓸 수가 없다. 억지로 글을 써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객관성으로 위장한 자기비하, 근거 없는 자기만족 사이에서 춤을 춘다.

일기는 관심만 있다면 어떤 글이든 상관없다. 남에게 읽힐 글은 그렇지 않다. 남에게 읽힐 글은 무언가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해서 그 무언가에 대한 앎으로 이어져야 한다. 앎을 세계로 나를 이끄는 것은 객관성이다. 내가 아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 더 다양한 관점으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태도가 객관성이다.

객관성이란 시지푸스의 돌과 같다. 결코 달성할 수 없는 상태다. 달성하려는 노력의 과정만이 있다.

결과가 없다고 불행하거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의미나 가치는 과정에 있다. 결과 중심의 접근은 모든 존재, 모든 삶을 파멸시킨다.

주제 중심의 글, 결과 중심의 글도 마찬가지다.

삶을 결과 중심으로만 보면 스스로 삶을 마감할 가능성이 커진다.

삶은 결과와 상관없는 과정 그 자체다.

결과를 알지만, 결과를 꿈꾸지만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상태, 그런 태도로 삶을 살아야 한다.

글도 그렇다.

글에서 결과란 주제다. 주제만 말하면 좋은 글이 아니다.

작가는 먼저, 주제에 대해 알고, 관심을 갖고, 객관적 자세로 주제에 대해 더 알아 나가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글로 옮기는 것만큼 작가에게 지루한 일도 없다.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글이라는 뜻이다.

작가는 글쓰는 행위를 통해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그것이 글쓰는 의미다.

또 하나 더 있다.

글을 쓰면 막연한 앎이 구체화된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글이 더욱 더 구체적이 되도록 노력하고 노력해야 한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

막연함을 갖추었으니 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글로 구현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행위다.

스스로 발견하고 배우면서 자신만의 구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

그것이 글쓰기다.

글을 쓰는 이유는 배우고 성장하고 깨닫는 재미다.

기억해야 한다.

재미는 디테일에 있다는 사실을.

디테일은 관심, 배움, 객관이라는 먹이를 먹고 자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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