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배우고 있다. 시작한 지 한달 가까이 되었고 5번 레슨을 받았다. 처음에는 빙판에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땅과 얼음. 조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달라진 조건에서 몸을 가눈다. 펭귄처럼 걷는 연습을 충분히 한 탓인지 아직 넘어지지 않았다.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넘어지려고 하면 넘어져야 한다. 강사샘은 단호하게 말한다. 넘어질 것 같으면 넘어져야 한다고. 넘어질 것 같을 때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 용을 쓰다 많이 다친단다. 삶도 비슷한 것 같다. 살다보면 넘어질 것 같을 때가 있다. 삶의 문제 대부분은 넘어진 후에 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기 전에 하는 것이다.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예감, 두려움, 걱정에 몸과 마음이 긴장되고 뒤틀린다. 스케이트를 배우며 몇 번 넘어질 것 같은 때가 있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 넘어질때와 넘어지지 않을때의 선택이다. 넘어지려고 할때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본능이다. 그런 본능에 따르다 보면 사고가 난다.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중심이 흔들리면 사정없이 넘어지는 것도 문제다. 무조건 넘어지는 선택을 하면 중심 잡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스케이트를 배우다 보니 현재까지 가장 어려운 것은 넘어질때와 버텨야 할때를 구분하는 일이다. 상황판단이다. 수많은 사업 계획서, 기획서, 보고서의 시작이 현황과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유다. 상황 판단이 먼저다. 그런데 실제 상황에서 상황 판단은 어렵다. 정보와 자료의 치밀한 분석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힌다. 무엇보다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는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경험을 통해서 판단의 감을 키워야 한다. 판단의 감을 키우려면 많이 넘어져봐야 한다. 넘어지지 말아야 할 때도 넘어져보고, 넘어져야 하는데 버티다가 아찔한 상황을 경험해 보기도 해야 한다. 스케이트도 삶도 경험을 통해서 보정된다. 보정의 목적은 빠르고 현명한 판단이다.
넘어질때와 넘어지지 말아야 할 때를 적절히 판단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상상이다. 넘어지려고 할때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의 상상을 한다. 넘어지는 모습과 다시 중심을 잡고 다시 멋지게 나아가는 모습이다. 상상은 미래의 모습이다. 뇌에서 빚어내는 미래의 모습이 현재의 모습과 곧 닥칠 미래를 만들어낸다. 스케이트를 배울 때는 배운대로 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넘어질때는 넘어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넘어진다. 수많은 보정과 반복으로 머리 속 상상과 실제 모습이 일치하면 상상 없이도 멋지게 나갈 수 있고, 넘어질 수도 있다. 무념무상의 세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익숙해져도 자신이 하려는 행동을 찰나적으로 상상한다. 코너를 돌 때는 코너를 도는 모습을 생각한다. 넘어질 때는 찰나적으로 넘어지는 자신을 상상한다. 이런 관점으로보면 뇌에서 만드는 이미지는 인간의 정신과 행동을 인도하는 신호와 같다. 스케이트를 탈 때 문제는 넘어져야 할 때 넘어지지 않는 상상을 하는 것, 넘어지지 말아야 할 때 넘어지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몸이 상상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배운대로 잘 나아가다도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내 모습 상상 동작, 즉 0.1초 뒤의 나의 동작에 대한 이미지가 살짝 어긋나면 몸의 균형이 이내 깨지고 찾은 것 같은 감을 잃어버리고 허둥지둥 넘어질 것 같다. 반대로 안정적으로 탈 때는 머리 속에 안정적으로 스케이트를 타는 내 모습이 안정적 지속적으로 그려질때다. 즉 몸의 균형과 동작은 머리속 상상에서 비롯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속 상상과 실제 행동을 일치시키는 일을 ‘집중‘, ’몰입‘ 등의 단어로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삶은 생각대로 펼쳐진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그 생각은 현재와 연속성을 지녀야 할 것 같다. 연속성을 지닌다는 말은 스케이트를 탈 때처럼 현재 모습 기준 0.1초, 1초 뒤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흐름이다. 미하이 칙센트의 몰입의 즐거움의 원제가 Flow.인 이유를 알 것 같다.
스케이트를 배우며 아직 넘어진 적이 없으니 나는 넘어지는 상상을 할 수 없다. 그러니 몸의 균형이 심하게 깨져 꼭 넘어져야 할 때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악을 한다. 넘어지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케이트의 목적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멋지게 앞으로 나아가고 원하는대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넘어져본 자, 넘어지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일어나는 법을 아는 사람만이 스케이트에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스케이트가 빨리 늘지 않는 사람은 넘어지는 상상도 멋지게 달리는 상상도 하지 않는 경우다. 모든 상상은 목적성을 지닌다. 넘어지는 상상의 목적은 잘 넘어짐을 통해 넘어지지 않음이다. 넘어지지 않는 상상의 목적은 . 지금 나의 상상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상이라는 단어를 생각, 사유, 신념, 습관, 가치 등으로 바꾸어도 되겠다. 스케이트에서 삶을 배운다.
내일을 꼭 넘어져봐야겠다 생각해 본다. 상상해 보니 그게 쉽지 않겠다. 상상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러 넘어지기도 어렵고, 꼭 넘어져야 할 때를 판단하는 것도 어렵다. 아직 넘어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유도를 배울 때 넘어지는 법부터 배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강사샘이 넘어지는 법부터 가르쳐주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텐데. 훌륭한 강사샘인데 넘어지는 법부터 가르쳐주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진짜 넘어졌을 때 스스로 터득하라는 깊은 뜻이 있는지. 이쯤 생각하니 스케이트는 진짜로 삶과 닮았다. 요즘 스케이트 배우는 재미에 홀딱 빠진 이유다.
내가 쓰러지는 이유는 상상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