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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쓱 Jan 31. 2021

책방 주인의 주요 업무:편지

밀린 메일함을 정리하면서 깨달았는데요, 

책방 주인의 주요 업무는 편지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한 달에 4회, 매주 수요일마다 메일로 '수요일의 편지'를 보냅니다. 


이 편지는 책방을 연 첫 주부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책에 대한 이야기와 책방의 소식을 전할 목적이었지만, 책방이 워낙 작고 혼자 일하다보니 책방과 책방지기인 저를 구분짓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느 순간 제 이야기의 비중이 커졌습니다. '이 정도까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도 될까?' 걱정하면서 보내기 전까지 망설입니다. 그래도 기왕 읽어주시는 분들께 좀 더 풍성한 글을 전해드리고 싶어서 내용을 더하다 보면 결국 제 이야기가 들어갑니다. 최근에 본 영화, 즐겨 듣는 음악, 어느 날의 일기 등등 꽉꽉 우겨 넣은 두툼한 편지가 됩니다. 


가끔 '수요일의 편지'에 답장을 받습니다. 답장을 바라고 쓴 편지가 아니지만, 그럴 때에는 정말 행복해져요. 저만 내적 친밀감을 쌓은 것은 아니었는지 꽤나 친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그런 답장을 받으면 손님들과 멀리에서도 소통하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무엇보다 한 주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일요일이 되면 네이버 블로그에 일주일 동안 읽은 책들에서 밑줄 친 부분들을 옮깁니다. 그리고 핸드폰의 갤러리로 들어가 트위터와 유튜브를 보면서 인상 깊어서 캡쳐했던 것들도 업로드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스타그램에서 컬렉션에 저장해 놓은 게시물들까지 모두 한 게시물 안에 넣어서 '비공개'로 글을 올립니다. 이렇게 제가 한 주 동안 받은 '영감(inspiration)'을 정리합니다. 그중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골라내 '수요일의 편지'에서 소개합니다. 편지를 쓰기 위해 했던 정리가 쌓이니 꽤나 괜찮은 기록이 되었습니다. 


제가 보내는 편지 말고 더 중요한 일은 독립출판 작가분들이 보내주시는 입고 메일에 답장하는 것입니다. 독립출판으로 책을 펴내면 작가가 서점에 직접 자신의 책을 팔아달라는 '입고 메일'을 보냅니다. 서점을 열기 전에 저도 독립출판을 해봤기 때문에 많은 서점들에 메일을 보냈었습니다. 첫번째 책 <매일과 내일>의 입고 메일을 보냈을 때는 답장이 안 오는 서점도 있었고, 대부분의 서점으로부터 거절 의사가 담긴 메일을 받았습니다. 두번째 책 <오늘도 손님이 없어서 빵을 굽습니다>는 받아 주신 서점이 많았습니다. 가끔은 서점에서 먼저 메일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메일 하나하나에 기뻐하고 속상해했지만, 점차 '그러려니'하게 됩니다. 


이제 저는 작가의 입장이 아니라 서점의 입장에서 입고 메일에 답장을 쓰게 되었습니다. 거절은 어려워요. 그리고 수락은 더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서점들에서 많이 보이는 책들은 무조건 입고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서점에서는 잘 팔리는 책이 저의 책방에서는 한 권도 안 팔릴 때도 있습니다. 독립서점은 서점마다 공간과 주인의 개성이 강합니다. 우리 책방의 색깔에 맞는 책을 입고해야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너만의 색을 찾아라' 라는 말은 참 어렵습니다. '나만의 색'을 알려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 책방의 색깔은 이렇게 실패를 거듭하며 찾아가겠죠? 


우선 책방 문을 연지 3개월 차인 제가 세운 기준은 '내가 자신있게 소개할 수 있는 책'을 받는 것입니다. 저는 20대 후반이고, 결혼을 안 했고, 아이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입장에서 육아 이야기를 쓴 책은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물론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가능성을 다루는 책은 환영입니다. 그리고 여행 관련 도서는 다른 책들보다 더 오래 고심합니다. 다른 환경에 놓이는 것은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부추깁니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떠났다고 해서 갑자기 좋은 글을 쓰는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만 신나서 쓴 글을 손님들에게 소개하고 싶지는 않아요. 우울감이나 좌절감을 다룬 에세이도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책방의 분위기가 밝은 탓도 있고요, 부적 감정을 다룬 글은 조심스럽게 다루고 싶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는 분명 치유의 경험이 될 수 있지만, 그 경험이 여러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쓰는 것은 쉽지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주제를 가지고 있든 작가의 가치관과 다루는 방식에 따라 책방에 놓고 싶은 책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러 번 메일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고, 최종적으로 또 메일을 읽어본 후에 답을 보냅니다. 


책방에 앉아 있는 시간의 1/3 정도는 메일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메일에 쓸 말을 고민하거나요. 

그래서 요즘은 누가 "책방 주인은 주로 무슨 일을 해?" 라고 물어보면 "메일을 보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혹시 '수요일의 편지' 를 받으실 분들은 아래로 신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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