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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 Mar 01. 2021

상상의 과소비

2021년 3월 1일 월요일

2021년의 첫 두 달이 지나고, 3월의 첫날. 2020년은 이미 지나갔으니 제쳐두고 생각한다 해도, 나의 근 몇 개월은 낭비 그 자체였다.


내가 낭비하는 것은 돈도 무엇도 아닌 '상상'이다. 써놓고 보니 낯설지만, 역시 나는 상상을 과소비하는 게 맞다. 일어나지 않은 일 혹은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상상한다. 평생을 가도 알 수 없을 타인의 마음과 생각을 상상한다. 결코 볼 수 없는 뒷 이야기를, 다른 공간 속 이야기를 상상한다. 지나쳤거나 놓쳤던 선택이 낳았을 또 다른 결말을 상상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에 빠지는 시간이 단타로는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상상을 통해 도리어 말도 안 되는 용기를 내보기도 했다. 새로운 기회로 뛰어드는 원동력을 얻은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상상력을 소비했을 때 느끼는 행복보다, 지나고 나서야 떠올리는 그 상상들의 무용함 그리고 시간을 낭비했다는 깨달음이 더 아프게 꽂힌다.


나이를 먹을수록 실감하는 것들이 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결국 선택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것. 우연히 찾아오는 기회나 깨달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매일 매 순간 단단하게 다진 정신력에 기대는 편이 낫다는 것. 하루를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떠올린 것들이 내게 필요한 처방이리라는 것. (일기 쓰기라든가, 계획과 습관, 규칙 같은 것들.)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건들이 있었고,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를 관계가 생기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것들을 억지로 보지 않고 옆으로 치워두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한다. 상상의 과소비를 멈추는 순간, 한 곳에 쏠린 나의 신경도 다시 갈 곳을 찾지 않을까?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 말이다. 상상이 아닌 현실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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