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일, 류한욱
나는 40년 넘게 아직까지 큰 좌절을 겪어본 적이 없다. 10대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에 잘 진학했고, 20대엔 지겨울 만큼 놀다가 준비하던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어찌어찌 취업에도 성공했고, 30대엔 결혼해서 토끼 같은 처자식을 부양하며 직장에서도 무탈하게 따박따박 월급 잘 받으며 살았고, 40대엔 잔병치레 없이(아내가 많이 아프긴 했지...) 여전히 회사 잘 다니며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평범한 삶을 사는데 아직 양가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도 건강한 편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기가 겪어본 삶의 경계만큼만 허용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걸 넘어가면 미지의 세계가 등장하니까 내 소중한 자식을 거기까지 나아가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나 또한 아이가 나보다 더 행복하고 풍족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에 작은 좌절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선산에 성묘하러 가서 아이가 모기에 물릴까 봐 온갖 기피제를 다 뿌려주고 계속 모기를 쫓아주는 나를 보고 "넌 너무 애를 과보호해"라고 일갈하시는 아버지의 말이 사실 맞다. 오냐오냐 키우지 말아야 하는데 나도 친구가 별로 없고 하는 일이라곤 퇴근 후 책을 읽고 밤에 따릉이를 타는 게 전부인 생활을 하는지라 아이와 친구처럼 지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게 아니라고 한다. 나도 안다. 인생이 항상 탄탄대로일 수 없지 않나. 적절히 좌절해 봐야 그놈의 회복탄력성이 생긴다는 거, 머리로는 다 안다. 그런데 마음이... 통 그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도 안다. 이렇게 계속 보호하는 건 애를 망치는 길이다. 몇 년째 고민하고 있는 주제인데 계속 고민만 하고 있어서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