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어린이책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가정에서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저자의 책. 전작인 <어린이라는 세계>가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읽어본다고 빌려놓고 바빠서 읽지 못하고 반납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어린이들은 옛날 어린이보다 공부에 파묻혀서 제대로 놀 시간도 없고 스마트폰을 일찍 접하면서 소셜미디어에 노출되어 어른들의 나쁜 문화에 일찍 물드는 현실이 안타깝다. 하지만 아이 친구들을 가끔씩 만나서 짧은 대화를 나눠보면 그래도 어린이는 어린이다. 어떤 인생의 길을 걸어가서 어떤 어른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대다수의 어린이들은 참 착하고 순수하다.
저자는 많은 어린이들을 접하며 삶의 통찰도 얻고,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은 더 각박해져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결심이 인생의 일생일대의 선택이 되어 점점 어린이들의 수가 줄어가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있어야 주변의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게 되고, 그걸 보고 자라는 어린이들도 좋은 어른이 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물론 신경 안 쓰고 마이웨이를 걸어서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어른들도 많지만.
우리 집 앞 대로변에서 골목길에 진입하는 작은 건널목에 횡단보도가 생기고 신호등이 설치됐다.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골목이고, 차보다 사람이 더 많이 건너는 약 7미터 정도 되는 짧은 건널목이라 사람들은 자주 신호를 무시하고 그냥 건넌다. '대체 이런 곳에 왜 신호등을 만들어서 번거롭게 기다리게 만드는 거야'라는 생각도 자주 한다. 하지만 그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초등학교 정문이 등장한다. 그리고 동네엔 어린이가 꽤 많은 편이고 학원도 많아서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 사이에는 그 길을 지나는 어린이들이 무척 많다.
어린이들은 무조건 그 신호를 지킨다. 친구들과 종알거리며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여자애들도 빨간불 앞에선 멈추고, 학원에 늦은 듯 와다다 달려가는 남자아이도 빨간불 앞에서는 멈춘다. 조용한 성격인 듯 혼자 바닥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 저학년 아이도 멈추고, 스마트폰에서 낄낄거리는 게임 영상을 보며 걷는 고학년 아이도 멈춘다. 그렇게 멈춰있는 아이들을 보고도 많은 어른들은 신호등을 무시하고 빨간불에 길을 건넌다. 그걸 보면서 가끔 생각한다. 신호를 지키는 어린이와 그냥 무시하고 건너는 어른의 간극에는 대체 어떤 수많은 사건들이 벌어져서 저렇게 변하게 되는 걸까. 어린이가 옳고 어른이 잘못된 그 현장에서 나는 어린이들이 있는 시간엔 묵묵히 그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린다. 어린이들은 신호를 지키며 서있는데 어른이 돼서 잠깐 기다리는 게 불편하다고 신호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 내가 신호를 기다리며 서있다고 어린이들이 그걸 배울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 부끄러움은 덜하게 된다.
(종종 밤 10시 넘어 퇴근해서 그 길을 건너게 되는데, 몸이 너무 피곤해서 잠깐 서있기도 힘들 때면 주변을 살피고 어린이가 있는지 한 번 확인하고 없으면 그냥 건너버린다.)
집에서 아이와 저녁을 먹으며 뉴스를 볼 때면 정치부터 시작해서 날씨까지 가는 그 30분 남짓의 시간 동안 끝까지 채널을 유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수많은 끔찍한 뉴스 꼭지를 읽는 앵커의 목소리에 '대체 이걸 어린이에게 보여줘도 되나? 뉴스에 15금 정도는 붙여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며 티비를 꺼버리거나 뉴스보다 해로운 롯데 야구를 본다. 부디 어린이가 짧은 어린이 시기를 오롯이 즐기며 무사히 성장하는 세상이 만들어지길. 어떤 어른이 돼도 어릴 때 배웠던 작은 인생의 진리들을 잊지 않고 살아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