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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정명원

by 김알옹

법조계에 있는 친구들이 많다. 대부분 변호사인데 검사가 한 명 있다. 얼마 전에 승진해서 꽤 높은 자리에 올라갔지만 항상 겸손하고 차분해서 좋은 친구다.


- xx야 이번에 특검 많이 열리던데 넌 차출 안 되냐?

- 아유 수레에 실려온 사건 서류들 검토하다 죽겠다... 거긴 나보다 실력 좋은 분들이 가겠지~


정치에 관심 많은 검사들만 자꾸 언론에 노출되니 진짜 열심히 묵묵히 일하는 검사들까지 도매금으로 비난받는데, 친구를 보면 다 같은 직장인이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기소권이 있는...)


예전에 김웅의 <검사내전>에서 책 전반부에서 그린 평범한 검사의 생활을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한창 뜨거운 시기여서 책 후반부는 그 내용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런데 저 양반은 빨간 옷을 입고 국회로 가더니 그저 그런 정치인이 됐더라.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다.


이 책도 처음엔 검사가 책으로 인기를 얻어서 정치판이나 기웃거리지 않겠냐는 시선으로 색안경을 끼고 읽었다. (사실 100페이지 넘게 읽을 때까지도 남성 작가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그냥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검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뿐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아등바등 조직 내 정치질을 해서 높은 자리로 가려는 야망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잠깐 생기는 여유를 즐기고 따뜻한 글을 남긴다.


성폭행을 시도하는 남자의 혀를 깨물어 상해를 입혔는데,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한 최말자 씨의 재심에서 담당 검사였던 작가님은 해당 사건에 61년 만에 무죄를 구형했다. 법정에서 사과도 하셨다고 한다. 이런 모습이 우리가 검사에게 기대하는 인간적인 면모다. 불의를 수사해서 처벌하고, 억울한 약자를 돕고, 사회가 법 시스템 안에서 안전하게 유지되도록 돕는 역할. (물론 입법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야겠지만)


형법 교과서에도 나오는 유명한 판례라고 하는데, 참 오래도 걸렸다.


이렇게 따뜻한 마음의 검사님이라면 얼마든지 조사를 받으러 갈 용의가 있… 아니 그러면 안 되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이 쓴 글이라 읽으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그동안 검사 출신 개차반들이 정치판에서 똥을 싸대고 온몸에 똥칠을 하며 굴러다니던 모습을 보느라 피곤했던 탓도 있겠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읽었던 '검사 엄마 2' 부분을 가져와 본다.


검사 3년 차에 첫 아이를 가졌다. 집안의 맏이인 데다 여자 형제가 없어서 임신한 여성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적이 없었던지라 당시의 나는 모든 면에서 무지했다. 옆방에 있던 여성 선배에게 가서 임신 소식을 알리자 선배는 아주 잠깐이지만 말이 없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시작되는지 알지 못한 채 마냥 해맑은 이 후배에게 어디부터 어떻게 조언을 해줘야 할지 잠시 말을 고르는 듯하더니, 잠시 만에 “축하한다.”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배의 환한 웃음 뒤로 어쩐지 근심이 서리는 듯했다.

아이는 내 뱃속에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나와 함께 매일 검찰청으로 출근해야 했다. ‘누가 누구를 속였대. 그가 그녀의 집에 침입했대. 어떤 이는 평생 모은 전 재산을 잃었다. 다른 사람의 신체를 몰래 사진 찍었대. 음주운전을 하다 사람을 쳤대. 사라졌던 그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대. 그녀가 그를 죽였대.…’ 세상의 온갖 끔찍한 이야기들을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보고 들었다.

‘이때는 바르고 예쁜 것만 보아라.’

집안 어른들은 말했지만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다. 하루 종일 인간의 온갖 아픔과 슬픔과 거짓말을 헤집다가 퇴근해서 듣는 클래식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신 이제 귀도 눈도 심장도 생겨 인간의 모습을 오롯이 갖추게 된 뱃속 아이에게 검사 엄마는 조용히 속삭였다.

‘아가야. 엄마는 네가 나올 좋은 세상을 위해서 기꺼이 나쁜 것을 보고 있는 거란다.’

엄마의 말을 이해했는지 아이는 뱃속에서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뱃속에 아이를 품은 여성 검사의 처우에 대해 여러 가지로 무지하거나 무심했던 시절이었지만, 그 와중에 약간의 혜택이라고 한다면 변사체 검시를 면해준다는 것이었다.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변사 사건이 발생하면 검사가 사체를 직접 확인하는 일이 변사체 검시인데, 돌아가면서 하던 변사체 검시 순번에서 임신한 검사는 빼주었다. 아무리 모성 보호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 인류애는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 나가서 직접 사체를 확인하는 직접 검시만 면제되었을 뿐, 서류를 보고 변사체에 대한 다음 절차를 지휘하는 일까지 면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변사 사건 서류에는 사체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다각도에서 찍은 상세한 사진이 첨부되는데,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는 입장에서 그 사진들을 보는 것이 아무래도 기꺼운 일은 아니었다. 당시 나와 검사실에서 함께 일하던 실무관이 나를 위해 사진이 있는 부분에 미리 클립을 꽂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심결에 기록을 휙 넘기면 꼭 사체 사진이 있는 부분이 덜컥 펼쳐지곤 했다. 사진이 붙어 있는 페이지가 두꺼워 무게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다시 배를 쓰다듬으며 주절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가야, 엄마는 지금 좋은 세상을 위해 기꺼이 무서운 것을 보고 있는….’

태교로 범죄에 대한 조기 교육을 한 탓인지, 지금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는 범죄물을 즐긴다. 또래들에게 인기 있다는 로맨스물 대신 각종 형사물과 추리물, 범죄 추적 탐사물을 좋아한다. “그런 게 재밌나?” 물어보면 “흥미롭잖아.“라고 대답하는 딸아이를 보며, 한없이 거칠었던 태교의 영향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딸아이는 덧붙여 “나는 강력 범죄보다는 사기 범죄 같은 쪽이 좀 더 재밌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아이를 임신했을 당시 나의 전담은 금융 경제 범죄였다.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거짓말을 한다 싶으면 그때까지 잠잠하던 뱃속의 아이가 꿈틀꿈틀 태동을 했다. 살아 있는 거짓말탐지기가 따로 없었다.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에 가깝게 지내는 임신한 여성 검사가 있었다.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강간, 강제추행 등 성범죄와 아동학대 등 아동에 대한 범죄를 다루는 부서다. 불룩 나온 배를 내밀고 하루 종일 강간범을 조사했다는 후배는 조사를 마치고 나면 배가 땡땡하게 굳는다고 했다. 조사하느라 저녁도 못 먹었다며 불룩 나온 배를 덮고 있는 원피스의 양쪽 주머니에서 삼각김밥을 네 개나 꺼냈다.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인간의 추악하고 더러운 욕망들을 가장 내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정신적인 고충이 많은 부서다. 이런 부서에다 임신부를 넣어놓는 게 말이 되느냐고 후배는 투덜거리다가, 하긴 해도 괜찮은 전담이 우리 일 중에 뭐가 있겠냐며 그 자리에서 삼각김밥 네 개를 다 먹고 또다시 야근을 하러 갔다. 그 와중에 대검에서 임신 축하 선물로 전자파 차단 앞치마를 보내줬다고 자랑했다. 우리에게 해롭기로는 전자파가 문제가 아닐 테지만, 그거라도 어디냐고 하면서….

당시 후배는 어떤 성폭력 사건의 수사를 엄청 어렵게 이어가고 있었는데, 출산을 위해 들어가기 전에 그 사건만은 처리하고 가겠다고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 사건을 처리하지 못해서 애 낳으러 못 가는 꿈을 꾼다고도 했다. 나를 만날 때마다 몇 달을 그 사건 얘기만 하더니, 출산 들어가기 며칠 전에야 가까스로 사건을 재판에 넘겼다. 그마저도 결재 과정에서 시간이 걸려 원래 들어가려던 날짜보다 며칠 늦춰서야 출산 휴가에 들어갈 수 있었다. 후배가 아이를 낳고 한참 지난 뒤 그 사건에 유죄가 선고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봤다. 후배에게 연락해 보니, 그때 엄마 뱃속에서 ‘기소냐 불기소냐’ 세기의 고민을 함께했던 아기는 이제 세상에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고 했다. 그 아이가 발 딛는 세상이 아주 조금은 안전해진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딴딴한 배를 안고 애태우던 지난날들이 조금은 뿌듯하다고 후배는 웃었다.

출산의 진통이 극에 달했을 때, 중간에 힘 빼지 말라는 간호사의 거친 고함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하나의 명제만 생각했다.

‘이건 낳아야 끝나는 일이다.’

당장 아무리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중단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일. 마침내 끝을 봐야 끝나는 일이라는 사실이 그 순간 힘이 되었다. 그런 식의 문제 인식과 해결은 나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방식이니까. 마침내 와락, 미끄덩하고 뜨거운 것이 세상으로 쏟아져 나오는 순간,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했다. 내가 성공적으로 하나의 과업을 완수했다는 만족감이 차오르는 것도 잠시, 퉁퉁 부은 얼굴에 머리숱이 유난히 새까만 작은 생명체를 받아 안은 순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명백한 시작이었다.

다음 스테이지에 어떤 괴수가 숨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눈앞에 있는 스테이지 하나를 깼다고 의기양양한 초보 게이머처럼 무방비한 채로 다음 단계가 시작되었다. 출산이라는 단계를 비로소 완결하고 다음 단계를 마주하자마자, 이건 전혀 다른 차원의 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테이지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분명히 내 몸인데, 이전과는 다른 몸으로 물성 변화한 것 같았다.

첫 아이를 낳고는 출산 휴가가 끝나자마자 바로 복직했다. 왜 육아휴직을 하지 않고 바로 나왔냐고 훗날의 후배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는데,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그나마 출산 휴가 90일을 오롯이 쓸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할 뿐, 육아휴직은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다. 얼굴에 붓기가 빠지지 않은 채로 업무에 복귀했다.

문제는 젖이었다. 출산 직후부터 집에 있는 동안 오롯이 모유를 먹였다. 그전에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나는 의외로 모유 수유에 재능이 있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젖몸살을 앓거나 젖이 안 나온다고 우는 엄마들 사이에서 거뜬히 완모를 해내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 인간의 몸에서 다른 인간을 먹여 살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실로 경이로웠다. 내가 만들어낸 것을 빨아먹고 이 작은 인간의 팔목이 오동통해졌다.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그가 가진 모든 힘을 짜내어 쪽쪽 젖을 빨다가 어느 순간 픽 잠들어버리는 작은 생명체를 안고 있는 동안에는, 이 막막한 우주에서도 아기와 나만은 연결되어 있다는 유대감이 벅차게 차올랐다. 그런 이유로 업무에 복귀할 때까지 아기도 나도 젖을 떼지 못했다.

처음에는 유축을 했다. 당시 근무하던 검찰청에는 사무실에 조그마한 개인 집무실이 있어서, 그곳에다 유축기를 설치해 놓고 유축을 했다. 검사 일도 해야 하고 엄마 노릇도 해야 하는 이중적 과업을 가진 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집무실 작은 테이블에 앉아 한 손으로는 유축기를 가슴에 가져다 대고, 나머지 한 손은 골무를 끼고 사건 기록을 읽으며 젖을 짰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귀는 얇은 칸막이 옆 사무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향해 열려 있어야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유축기를 끄고 뛰어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푸쉬푸쉬 반복적인 유축기 소리에 맞춰 사기 사건이나 살인 사건 기록을 넘기다 보면 우리 아기의 뺨을 살찌울 뽀얀 맘마가 보관팩에 모였다. 어떤 농장에서는 좋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젖을 짜는 동안 소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기도 한다는데, 범죄 기록을 읽으며 짜는 젖이라니… 이것 참 싶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하고 계속하던 유축을 그만두기로 한 것은 어느 선배의 경험담을 듣고 나서다. 선배도 몇 년 전에 나처럼 출산 직후 사무실에서 유축을 했다고 한다. 그날은 당직 날이었다. 당직인 날에 보통 검사들은 자기 사무실에서 밀린 일들을 하고 있으면 당직실에 접수된 서류를 당직실 담당자가 가져다준다. 선배가 집무실 안에서 유축을 하고 있는데, 직원이 서류를 들고 왔다. 당직에 접수되는 서류는 보통 시급을 다투는 경우가 많으므로 빠르게 검토하고 결재해 주어야 한다. 선배는 유축을 중단하고 서둘러 집무실에서 나와 사건을 검토하고 결재한 서류를 직원에게 건네주었는데, 그러는 동안 어쩐지 직원은 눈을 못 들고 몸을 옆으로 꼬며 있다가 황급히 서류를 받아 떠나더라는 것이다. 직원이 가고 나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선배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는데, 급히 나오느라 미처 풀어헤친 옷섶을 여미지 않은 채 그냥 나온 것이었다. 그 와중에 아기 먹일 모유 보관팩은 잘 여며놨더라며 선배는 웃었지만,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웃을 수가 없었다. 그 일은 필시 머지않아 나에게도 닥칠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유축을 중단했다.

유축을 중단하고 나니 불어나는 것이 문제였다. 흡수포를 대봐도 잠시 방심하면 셔츠 앞섶이 젖어 있기 마련이었다. 무엇보다 땡땡하게 부어오른 가슴이 너무 아팠다. 이 고통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문제도 점점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젖이 차오르는 시간이 점점 늦춰지더니, 언제부턴가는 저녁 6시가 되어야 젖이 차올랐다. 일과 중에는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괜찮다가, 6시가 되면 급격히 가슴이 땡땡해졌다. 공무원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정확히 차오르는 젖이라니… 나는 젖조차 공무 수행에 적합한 인간이구나.

6시 퇴근 종이 울리는 것을 신호로 맹렬히 차오르기 시작하는 가슴을 안고 정신없이 퇴근해 아기를 안으면, 아기도 허겁지겁 젖가슴을 파고들었다. 아기의 조그마한 입이 오물거려 터질 듯한 압박감이 마침내 풀리는 순간, 그 시원함과 안도감은 역시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런 걸 알 리 없는 남자 상사들이 종종 회식을 잡았다. 친목이고 뭐고 해결되지 않는 압박감으로 정신이 혼미해지기 일쑤였다. 이성을 잃은 내가 상을 뒤엎거나 부장을 향해 주먹을 날리게 되는 미래가 자꾸 그려졌다. 지금이라면 부장이건 누구한테 건 사정을 설명하고 회식에 빠지겠다고 했을 텐데, 그때만 해도 햇병아리였던 나는 그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어느 날 맞은편에 앉아 간신히 버티고 있던 나에게 상사가 말했다.

“아니 정 검사, 왜 그렇게 입술을 꽉 깨물고 있어?”

도저히 참지 못한 어떤 날은 회식 중간에 몰래 나와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젖을 물리고 다시 나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옛날 엄마들은 김매다가 집에 와서 애 젖 물리고 다시 김매고 했다던데, 회식하다 젖 물리고 뛰어나와 다시 회식하는 삶.

그렇게 힘들게 젖 먹고 자란 첫째는 어려서부터 어딘가 쿨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엄마가 출근한다고 가방을 들고 나서도 울지 않고 선뜻 손을 흔들어주었다. 엄마가 직장에서 험한 꼴 보이지 않기 위해 유축을 중단한 이후 별 저항 없이 분유를 받아들였다. 엄마가 공무를 수행 중인 9시부터 6시까지는 분유를 군말 없이 먹다가 6시 땡 퇴근에 맞춰 가방을 집어던지며 달려드는 엄마를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 젖을 꿀꺽꿀꺽 삼켰다. 진정, 검사의 딸로 타고난 것이 아닌가 대견하면서도, 뱃속에서부터 탑재했을 그 쿨함이 한편으로는 짠하기도 했다.

초등학생 둘째는 자기 방이 있는데도 아직 엄마와 한 침대에서 자는데, 이제 슬슬 잠자리 독립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둘째에게 쿨한 누나가 슬쩍 조언한다.

“야, 즐길 수 있을 때 엄마를 충분히 즐겨. 흔히 있는 엄마가 아니잖아.”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고, 또 수없이 다른 엄마들이 있다. 엄마는 한 가지 종류가 아니다.

어느 날엔가 아이가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같이 있어 주지 않느냐”라고 묻는다면 해줄 대답으로 미리 만들어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한 번도 그렇게 묻지 않았다. 아이들은 ‘우리 엄마는 왜 그래?’ 묻는 대신 흔치 않은 형태로 출몰하는 엄마를 꽉 차게 즐길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묻지 않아서 쓸 기회가 없었던 대답을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들려준다. 잠든 아이의 발을 한 번 꼭 쥐었다가 놓고는 새벽 출근길이나 저녁 식사 배달 주문을 해주겠다고 하고 까맣게 잊은 어느 날의 늦은 퇴근길에. 그리고 고민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종류의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까.

우리 집에는 ‘엄마표 소금 씹히는 볶음밥’이라는 요리가 있다. 말 그대로 엄마가 만드는 볶음밥인데 급하게 만들다 보니 소금 입자가 채 녹지 않아 바스락 씹히는 볶음밥이다.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다른 지역에 있는 근무지로 출근하기 위해 새벽길을 나서기 전에, 월요일 아침 다급히 만들던 볶음밥을 아들은 그렇게 불렀다. 이름을 붙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요리를 좋아하기까지 해서 다급하지 않은 날에도 그 스타일로 볶음밥을 해달라고 청하기도 한다. 무심코 먹다 보면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바스락 소금 입자가 씹히면서 짠맛이 확 퍼지는 엄마표 볶음밥. 그런 게 왜 좋으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빙긋 웃으며 답했다.

“팍 터지는 게 재밌잖아.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에 있는 슈팅스타 같은 거야.”

아··· 그러니까 나는 볶음밥을 슈팅스타로 만드는 엄마였군. 소금이 오도독 씹히는 볶음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엄지 척을 해주는 아들은 이런 종류의 엄마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결국 엄마란 엄마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과 반응하면서 규정된다는 걸 깨닫는다. 굳은살처럼 달라붙은 엄마의 미안함과 망설임 앞에 언제나 한 발 앞서 현명한 답을 찾아내는 아이들이 있어 검사 엄마는 오늘도 조금 어깨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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