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
국내 제약사 연매출 40조 원, 다국적 제약사 연매출 10조 원, 국민건강보험 약품비 25조 원. 제약사 매출의 50%를 우리가 준조세 성격으로 납부하는 건강보험료가 책임지고 있는 이상한 나라.
정부가 투자를 장려하고 신약개발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심지어 이번 정부에서도 K-바이오가 중점사업에 포함되어 있다) 수십 년간 지원하고 있지만 국내 제약사들은 여전히 특허가 만료된 다국적 제약사 오리지널 약의 복제약만 팔고 있다. 한국 제약사가 개발한 신약이 전 세계에 팔린다는 뉴스는 셀트리온의 램시마, 유한양행의 렉라자 말고 들어본 적 없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 그냥 글로벌 제약사 외주 받아서 내가 다니는 회사의 한 약품은 전 세계 매출액 10위 안에 드는 소위 블록버스터 약인데, 이 약이 한국에서 특허가 만료되자 무려 50여 개의 국내 제약사에서 복제약을 출시했다.
보통은 특허가 만료되면 복제약이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확 퍼지면서 오리지널 약들은 판매하지 않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졌어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복제약의 가격을 정부가 보장해 주면서 오리지널약도 계속 시장에 남아있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비등비등한 가격에 동일 성분인 복제약들은 병원의 처방이 간절하고 이는 리베이트로 이어진다.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료가 의사와 제약사 배만 불리는 셈이다.
왜 바이러스 때문에 생긴 가벼운 감기에 다음 약들을 처방하는 것인가.
- 항생제: 세균과 싸우라는 약인데 상대는 바이러스다. 세균 감염이 없어도 일단 처방하며, 5일 뒤에 아래 약들까지 다 먹으니 오히려 증상이 개선되지 않아 다시 병원에 가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른 항생제를 처방한다. 그렇게 항생제 내성이 증가한다.
- 항히스타민제: 콧물을 멈추라는 약인데 먹으면 졸리고 코-목의 수분이 모두 사라져 건조해진다. 가습기 틀어놓으라며 이래서 그런 거야?
- 진해거담제: 기침과 가래로 자연스레 몸에 나쁜 물질이 있으면 뱉어내야 하는데 다 막아버린다.
- NSAID 진통소염제: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 위장관 출혈의 부작용이 있다. 감기 때문에 어디가 아프지... 머리? 가슴? 마음?
- 위산억제제와 진경제: 저 약들을 때려박으니 위가 멀쩡하겠어? 위산도 덜 나오게 하고 경련도 멈추게 해야 하니 얘네들도 추가.
- 정장제: 항생제 먹으면 대장 내 균총의 균형이 무너져 설사가 나오니 장을 달래는 유산균 성분을 넣어준다.
며칠 따뜻한 차 마시면서 잠을 평소보다 많이 자고 코-목 점막을 촉촉하게 하면 며칠 안 지나 낫는 게 감기인데, 저렇게 많은 약을 먹을 필요가 있는지 우리는 궁금해야 한다. 제약사들이 동네 의원들을 돌면서 우리 약 처방 좀 많이 해달라고 리베이트를 주니까 처방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거 다 우리가 낸 의료보험료로 감당하는 거다. 내가 낸 세금이(세금이라 치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아야지.
성분명처방을 하면 개선될 거라고? 그럼 리베이트의 방향이 약사로 바뀌겠지..
그리고 의약 언론사 출신인 저자는 중구난방 난립한 의약 언론(대부분이 10명 이하의 소규모 언론사)들도 가차 없이 비판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복지부(+의료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식약처) - 의료보험료 내주는 물주인 국민 - 엄청난 돈을 써서 신약을 만드는 다국적 제약사 - 이를 받아와서 복제약을 찍어내는 국내 제약사 - 이런 구조에 기름칠을 해주며 돈을 받아먹는 의약 언론은 '언론'의 기능을 전혀 못하고 있는 기생충과 같다고 한다. '국내 제약사와 우리 언론은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동료야!'라는 말을 지껄이는 언론인이라니... 그냥 홍보팀 아닌가?
저자는 복제약 가격을 확 낮추고 영세 제약사들이 자연스럽게 통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심지어 같은 공장에서 제조하고 라벨갈이만 해서 여러 제약사에서 팔리는 약품들도 있는 현실이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점점 약제비 비중이 커질 텐데, 의료보험재정 건전화를 위해 정부나 정치인이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의대 정원 문제에서 봤듯이, 이익집단의 강력한 힘 앞에서 우리 정부는 고개를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