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으로 과거 모습의 빈 껍데기에 이른 그들에게 위로의 노래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인간의 정신 및 심리를 깊게 파헤치는 영화들을 모아 다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대런 아르노프스키의 레퀴엠을 시작으로 블랙스완&위플래쉬, 피아니스트 순으로 리뷰를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그 첫 영화 시작하겠습니다.
Psychological Film Special ①
Requiem for a dream, 꿈을 위한 진혼곡. 꿈 때문에 버려진 것, 죽어간 것들을 생각한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나요, 그리고 무엇에 중독되어 있나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만큼 그것에 탐닉하게 되면서 중독되기 쉽다. 그리고 그 중독은 우리에게 잠깐의 성취를 주기도 하겠지만, 중독이 왜 중독이겠는가. 중독은 본래 부정적인 단어로, 결국 우리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또 중독은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이기 때문에 중독이라는 이름을 가진다. 영화는 어떻게 중독에 빠진 인물들을 그려냈는지 살펴보자.
Director
Darren Aronofsky
Sara Goldfarb
Ellen Burstyn
Harry Goldfarb
Jared Leto
해리는 텔레비전을 보는 엄마(사라 골드팝)를 뒤로하고 무참히 전원 코드를 뽑아버린다. 그다음 그가 하는 일은, 전당포에 티비를 팔아버리는 일, 그리고 그 돈으로 헤로인을 사는 일.
사라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곧 전당포를 찾아가 해리가 팔아버린 텔레비전을 다시 구매한다. 그다음 그녀가 하는 일은, 텔레비전을 켜고, 초콜릿 상자를 여는 일. 그리고, 그 둘 모두를 즐기는 일.
그런 이들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들은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욕구를 충
족시킨다. 그들은 이미 중독되어 있다.
감독은 영화 속 등장하는 네 인물의 욕망을 매우 뚜렷하게 제시한다. 영화 시작 10분 후, 사라에게 텔레비전 출연 소식을 알리는 한 통의 전화가 오면서 그녀의 욕구는 좀 더 구체화된다. 그녀는 쇼 프로에 입고 나갈 빨간 원피스를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그녀의 아들 해리는 여자 친구 마리온과 함께 그녀의 의상실을 차리고, 사라의 텔레비전을 새 걸로 사주고 싶다. 해리의 친구 타이론은 슬럼가에서 벗어나 엄마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영화 내에서 타이론의 욕구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고 어렴풋하게만 드러난 점이 아쉽다) 그들은 그렇게 욕망을 향하면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중독의 길로 빠진다.
그들의 이 모든 욕망은 약을 통해 구체화된다. 암페타민을 복용하는 사라는 점점 살이 빠지기 시작하고, 해리와 친구들은 마약 거래를 통해 돈을 벌어 꿈을 이룬다. 더 큰 욕망은 중독으로 이어진다. 암페타민을 복용한 사라는 중독성으로 인해 자의적으로 복용량을 늘려 온갖 환각 및 망상에 빠지게 된다. 마약을 팔면서 동시에 마약을 복용해 온 해리와 친구들 역시 마약을 구하기 힘들어지는 때가 오자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빠트리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꿈에 가까워지고자 시작한 일이 점점 커지고,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순간에 이르자 중독은 그들을 파멸로 이끈다.
영화 초반 감독은 사라와 해리를 분할 화면으로 나눠 보여주고, 이러한 시도는 그녀와 그의 거리감을 드러내는 효과를 가진다. 또한 이후 해리가 사라의 텔레비전을 다시 구매해 주고, 사라는 해리와 함께 티비쇼에 출연하는 꿈을 꾼다는 점에서 우리는 두 관계에 대한 드라마가 구성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두 관계에 대한 드라마를 만들다 만다. 결말부에서, 사라의 상상 속에서 해리와 함께 티비쇼에 출연하는 그녀의 꿈을 이루고 그것이 현실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중독이 낳는 폐허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영화 중반부에서 몽땅 빠져버린 그들의 드라마를 메꿔주진 못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드러나는 중독에 탐닉하는 인물들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시청각적 묘사가 이 영화를 보게 하는 하나의 큰 이유가 된다.
중독의 한 형태는 반복이다. 애러노프스키 감독은 그가 힙합 몽타주 라고 명명한, 극도로 짧은 숏을 이용해 그들의 투약 행위를 빠르게 묘사하며, 그 숏들은 반복된다. 또한 타임랩스 촬영을 이용해 인물들이 약에 취한 상태를 묘사하고, 어안렌즈를 사용해 시야를 왜곡하며 불안한 시점을 유지한다. 바디마운트 카메라를 이용해 인물 외의 모든 배경이 움직이는 듯한 롱 트래킹 샷 역시 이러한 불안한 시점을 보여주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카메라 장치와 편집을 이용한 쇼트 구성은 인물들의 주관적인 시점과 그들의 고립된 상태를 매우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인물들은 여름, 가을을 거쳐 겨울로 이어지는 계절을 지나오면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점점 아래로 떨어지는 길만을 걷게 된다. 마침내 겨울의 그들은 모두 식은땀을 흘리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도심을 배회하고 결국은 정신 병동에 갇혀 끔찍한 전기치료를 받거나, 떨어진 약을 구하기 위해 원치 않는 섹스 혹은 성매매를 하거나, 약을 주사한 팔이 문드러져 팔을 도려내거나, 마약 중독으로 교도소에 갇혀 금단 증상과 싸우며 노동력에 투입된다. 그들의 여름은 그렇게 겨울이 되어 각각 태아의 모습으로 저물고, 그들의 죽음을 위로하는 음악과 함께 영화도 막을 내린다. 영화는 그들을 약물 중독자로 제시하며 스토리를 전개했지만, 모두 아시다시피 중독은 비단 약 중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 했던 질문을 다시 떠올려보자. 당신은 지금 무엇에 중독되어 있는가. 과함(over)은 언제나 대가를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이 죽음을 가져올 것인지 또한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판단은 알아서. 다음에 다룰 영화를 통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네 인물에게 또는, 탐닉하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 그리고 아주 가까이의 나에게까지. 위로의 인사를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