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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 Oct 14. 2020

나의 코로나 9월

걱정은 두고 가도 좋겠어요, <카모메 식당>

 어젯밤에는 우울했다. 초조한 마음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2020년을 코로나가 장식했다. 원래도 외향적인 성향은 아니었지만 반강제적으로 밖에 나가지 못하는 생활은 나에게도 큰 무력감을 안겨다 주었다. 그리고 그 무력감이 초조를 낳는다. 빠르게 달려야만 될 것 같은데,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나. 그래서 틀었다. <카모메 식당>. 핀란드 헬싱키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일본인 사치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영화. 사실 이 영화는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뭐할 정도로 소박한 생활을 담아내고 있다.


 대부분 서사를 다루는 창작물이 그렇지만 특히나 영화 이론이나 시나리오 작법에서는 ‘갈등’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그 작업이 잘 되어 있을수록 좋은 영화로 평가한다. 특히나 자본에 크게 영향을 받는 영화예술에서는 많은 관객을 얻기 위해서라도 잘 짜인 갈등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나는 요즘 그런 영화들에 많이도 지쳐버렸다. 코로나로 혼란스럽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오늘에, 여전히 우리는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까지 큰 갈등을 체험해야 한다면? 그건 너무 피로한 일이다.


 과거에 잔잔하고 밋밋하다는 이유로 혹평을 받았던 일본 영화들이 최근 몇 년 전부터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현상이 ‘안정감을 채우는 일’에 대한 필요에서 온 것으로 생각한다. <카모메 식당>에는 걱정이 없고, 그래서 좋다. 영화 내에서 사치에와 일면식도 없던 미도리라는 한 여성이 우연한 기회로 사치에와 만나게 되면서 그녀의 식당 일을 돕게 되는데, 개업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손님 하나 없자 미도리는 진심으로 카모메 식당을 걱정한다. 그러나 사치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매일 열심히 하다 보면 손님도 차츰 늘 거예요.”

 그녀는 걱정이 없다. 그저 매일 식당의 문을 열고, 수영을 하고, 합기도를 하는 일상을 지낼 뿐이다. 우리는 돈도 내지 않고 커피를 잘도 얻어 마시는 토미가 언제쯤 제 값을 하고 음식을 시킬지 궁금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여유 있는 사람이다. 또한 그녀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다. 하루는 가게를 돕던 미도리가 사치에에게 “제가 이곳을 떠나게 되면 사치에가 쓸쓸할까요?”라고 묻자, 사치에는 대답한다. “쓸쓸하지만 늘 똑같은 생활을 할 수는 없죠. 사람은 모두 변해가니까요.” 그녀는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변화도 빠르게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 우리는 인정해야 돼. 짧게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이제는 정말 인정할 때가 온 것이다. 언제까지 무기력하게만 있을 순 없잖아. 빠르게 달릴 수는 없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치에처럼 매일을 걸으면 된다.

 카모메 식당의 ‘카모메’는 갈매기라는 뜻이다. 왔다가 철이 되면 떠나는 갈매기처럼, 그렇게 편안하게 왔다가 가는 곳, 카모메 식당. 나는 잠시 이 영화에 들러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고개를 드니 찬바람이 코를 스치고 가을의 냄새가 풍긴다. ‘따뜻한 커피의 계절이 왔구나’ 생각한다. 내일은 일어나 커피부터 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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