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를 걸은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 길에서 길을 묻다
도시 생활에선 존재감 제로지만, 까미노 가면 맞닥뜨리는 두가지 곤경이 있습니다. 베드벅과 물집이죠.
최근에서야 우리나라에도 베드벅이 유입되긴 했지만 먼나라 먼시절 이야기죠. 빈대잡다 초가삼간 태우던 시절정도로요. 하지만 까미노에 베드벅은 흔합니다. 경험자가 공통으로 말하길 일단 물리면 고통이 극심하다고 하죠. 베드벅 때문에 중도 포기한 경우도 있다하니까요.
저희는 까미노 걷기 직전에 베드벅과 만났습니다. 인천에서 빌바오로 들어가 깔끔한 호텔에서 묵은 스페인 첫날이었어요. 아들이 새벽에 침대 맡에 벌레가 기어다니길래 잡았는데 피가 콸콸 쏟아졌다죠. 다행히 저나 아들은 물리지 않았고 그 전 여행자를 포식한듯 합니다. 다행히, 정작 까미노에선 개인실을 주로 써서인지 베드벅을 못봤습니다. 까미노 친구들중에서도 크게 고생했다는 이야기는 못들었어요.
베드벅이 랜덤 변수라면, 물집은 상수입니다. 전 평생 산 오르고 오래 걸어도 물집 한번 잡힌 기억이 없습니다. 아들도 까미노 1주 전까지 복무하던 기동대에서 행군과 갖은 훈련하면서도 물집 잡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집안은 발모양이 물집에 강한가보다 이야기하며 떠났습니다.
왠걸, 저는 첫날, 아들도 둘째날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까미노에서 내내 곤란했던건 베드벅보단 물집이었죠.
걸으면서, 원래 안좋은 무릎이나 허리가 큰 걱정이었습니다. 순례를 포기한다면 그 이유일테니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물집은 단지 고통일뿐 순례를 결정적으로 막지는 못하니 대수롭지 않게 견뎠어요. 하지만 발가락이 하나둘씩 너덜너덜해지니 나중엔 매 걸음마다 유리를 밟듯 아프긴 했습니다. 특히 내리막이 긴 날엔 물집이 더 늘어났지요.
답은 문제 곁에 있는 법.
까미노 경험자들 말로, 딴건 한국에서 필요한거 잘 준비해 가는게 낫지만, 베드벅과 물집 치료제 만큼은 현지에서 구하는게 백번 낫다고 했습니다. 베드벅은 Fenistil, 물집은 Compeed죠. 순례 1주일 쯤 지나 발가락이 많이 상한 어느날, 저희도 약국에서 꼼삐드를 샀습니다.
근데 이게 마법입니다. 생긴건 익숙합니다. 그냥 효과 좋은 습윤밴드인가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꼼삐드가 다른건, 붙여두면 발가락을 감싸고 고형이 된다는 점입니다. 연성 캐스트 같달까요. 이 상태에서 억지로 떼면 살이 뜯어져나갈 정도입니다. 일단 붙여두면 걸을 때 아프지 않아 발이 편해집니다. 신기하게도 며칠 붙이고 걷다가 다 나으면 저절로 떨어져요. 밴드 하나가 1유로 이상이라 현지 물가 치곤 꽤 비싼 편인데, 효과가 확실합니다.
까미노에서 배운 건 이겁니다.
말초적 고통과 본원적 고통은 다르다.
말초적 고통은 스쳐지나갈 뿐이다.
다만, 양이 많아지면 꽤나 성가스럽다.
미리 막기보단 그때 다스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