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서 못 썼어요, 반성합니다
브런치 알림을 받았다.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네에, 네, 안다고요. 일주일에 한 편은 쓰자는 게 목표. 작년 가을에 꾸렸던 책의 작가 소개엔 이런 글이 쓰여있다. ‘글 쓸 주말만 기다린다’ 그럭저럭 지켜오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의 일정을 소화하느라 조금 바빴더니 뭘 써야 할지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지난 토요일에는 큰아이 안과, 피부과에 안경점을 들르느라 분주했고, 일요일에는 어쩌다 일정이 세 개나 있었다. 결혼식이 있었고, 신랑 신부를 모두 아는 독서모임도 그날로 잡았더랬다. 꼭 가고 싶은 북토크가 있어서 독서모임을 오전으로 옮기고, 결혼식 다녀와서 오후에는 북토크에 참석했다. 기쁜 하루를 보냈으나 월요일 아침 거울을 보니 입술에 물집 세 개가 잡혀 있었다.
다시 일요일인 오늘 오랜만에 교보문고엘 다녀왔다. 그곳의 매대와 서가는 연신 나를 홀렸다. (핫트랙스 또한.) 큰아이 숙제로 과학 서가를 서성이다가 남편에게 선택을 맡기고 자기 계발 코너에서 발을 멈췄다. 몰입에 대한 책을 들었다가(내게 꼭 필요한 책 같아 보였지만), 제자리에 두고 이승희의 <질문 있는 사람>을 골랐다. 올해 독서동아리 책 쓰기 테마가 ‘세상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고, 질문할 줄 모르는 나를 성찰하고 질문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고 싶기도 해서다. ‘낯가림 극복하는 법’이란 소제목에는 이런 내용이 나왔다.
“I와 E를 오가는 사람으로서 당부할 것도 있다. 사람들에게 질문도 많이 하고 이야기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에는 꼭 집에서 혼자 충전하는 시간을 갖자는 것.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거기서 얻는 것도 많지만, 유일하게 에너지만은 못 얻는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더더욱. 내향적인 사람은 에너지만큼은 스스로 충전해야 한다. 다음에도 또 좋은 시간을 갖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알아서 틈틈이 에너지 충전해 놓기. 낯가림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것만큼이나 나에게도 관심을 가져주자. 맛있는 거 먹이면서. "
스스로 충전했어야 했는데! 입술에 아시클로버 연고를 바르고 보낸 일주일 동안에도 스스로를 돌보는 데에 인색했다. 두 번의 출장이 있었고, 요가도 못 했고, 저녁 산책은 두 번이나 했을까? 충전과는 거리가 먼 일주일을 보냈다. 그런데 저 글은 글쓰기하고도 관련 있는 것 같았다. 자기 시간을 필수적으로 사수해야 글 쓸 힘도 나오는 것이 아니겠나! 사실 아들들이 중1, 고1이 되면서 내 시간이 많아졌다. 특히 주말이면 학원으로 축구장으로 집 떠나는 아들들을 배웅하고 나는 집에서 고요한 시간을 지낼 수 있다. 그 덕에 일주일에 한 편은 쓰고 발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려면 물리적인 시간만 필요한 게 아니다.
팟캐스트 ‘책읽아웃’ 오은의 옹기종기에 허연 시인님이 출연했을 때였다. 동시집 <내가 고생이 많네> 관련 방송이었는데, 시인들의 대화라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허연 시인님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장기가 없다며 당신은 골프도, 바둑도 못한다고 했다. 심지어는 점심시간에도 혼밥을 하신다고. 그렇게 혼자 보내는 시간이 있어야 시를 쓸 수 있는 ‘시 쓰는 몸’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그러자 오은 시인님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회사 다니며 퇴근 후에는 시를 쓰려고 했다가, 야근이 많은 바람에 주말에는 시를 쓰자며 시 쓰는 일요일을 사수했단다. 일요일이 되자마자 시를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고 한다. 온종일 시를 생각하며 앉아있던 일요일을 몇 번이나 보낸 후에야 시 쓰는 몸이 되었다는 경험. 팟캐스트를 들을 때에는 그런가 보다, 시라는 건 참 어려운 거지, 했다. 그런데 근 열흘 글 쓰는 창 앞에 앉질 못한 나는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시에 접근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하고 필사적일 테지만 글 쓰려는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시간적인 여유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내 마음의 공간에 우선순위로 두어야 뭐라도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지난 일요일의 북토크는 바로 저 오은 시인님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시인을 만난 것도 반가웠고, 이야기를 듣는 것도 달가웠다. 난다 출판사의 시의적절 시리즈 <초록을 입고>에는 시, 동시, 수필, 인터뷰 등의 다양한 종류의 글과 함께 ‘적바림’이라고 해서, ‘나중에 참고하기 위하여 글로 간단히 적어둠. 또는 그런 기록’이 있었다. 시인의 사유를 엿볼 수 있어서 귀한 독서경험을 했다 싶었는데, 직접 만난 시인님은 자신의 핸드폰 메모장을 보여줘 가며 낯선 단어들을 소개해주었다. '제가 작년에 이런 메모를 썼었네요, 이 책에 나온 기역의 힘 메모가 여기 있네요.' 등등. 언제나 글 쓸 준비가 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이라는 그의 글처럼.
나는 어떤가. 글쓰기에 대해 언제나 준비된 사람인지 자문해 본다. 바빴다고 쓰지 못한 변명이라도 하려고 보니, 글쓰기에 대한 애정의 색채가 여리디 연하게 느껴진다. 시인을 만난 이야기로, 지난주에 글을 못 쓴 반성문을 이렇게 쓴다. 지난 일요일의 경험은 내 안에 행복한 기억으로 쌓여있다. 내가 감동하며 읽었던 책을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누며 공감하는 기쁨. 결혼식장에서 만난 신랑 신부의 상기된 얼굴과 축사, 축가를 듣는 황홀감,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과의 인사. 오은 시인님 북토크는 그 자체로도 신났지만 글쓰기 모임 멤버들과 함께라서 더 뿌듯했다. 그 좋은 시간들이 입술 물집을 남겼다니 배신감이 들어도, 나를 돌보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깨달음의 값이었다고 여기련다. 좋은 이들과의 교류가 내 안에 남아 언제 어떤 글로 쓰일지도 모르겠다. 시인이 들려준 이야기처럼.
나를 충전하는 데에는 글쓰기에 대한 애정도 한 사발 새로 들이부어야지. 날짜가 지나고 쓰는 일기여도, 쓰고 나면 흐릿한 기억들을 분명하게 붙들어 둘 수 있다. 쓰기를 통해 내 삶의 윤곽선을 그리고 선명한 색으로 그 안을 채워 나가겠다. 그러려면 언제나 글 쓸 준비 태세를 갖추어야지. 브런치 알람은 그만 받게. 글쓰기 근육은 매일 단련해야 하니까요. 내일은 또 어떤 경험을 할까? 혼자 충전하는 시간도 잊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