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토리와 책 만들기 1
우리 학교 독서토론 동아리 '독토리'는 해마다 책을 만든다. 나는 작년부터 그 동아리 지도교사로 기획부터 편집, 교정, 디자인, 배포, 홍보 등 모든 일을 한다. 올해로 두 번째 책을 낸 자랑을 하고 싶다. 여러 명의 학생들이 한 권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면 중구난방식의 잡다한 책이 될 것 같아서 하나의 테마로 책 한 권을 만들기로 했다.
재작년 책은 <생중계>라는 제목으로 '생생한 중딩들의 계절'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그래서 작년 책은 계절이라는 시간의 테마와 이어지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공간'을 큰 주제로 삼았다. 덕분에 아이들은 실질적인 공간-학교나 집 등-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서부터 내면의 공간과 상상의 공간까지를 두루 아우르는 글을 써냈다. 어떤 제목을 붙일까 고심하다가 2학년 학생의 제안으로 <스페이스>라는 제목을 붙였다. 공간의 의미이면서 우주를 뜻하기도 하는, 우리 내면의 무한한 세계를 담을 수 있었다. 표지에는 키보드를 넣어 스페이스바처럼 빈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는 다양한 의미를 표현해 뿌듯한 작업물을 만들어냈다.
2024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기도 전에 올해 책은 어떤 걸 테마로 할까 고민했다. 시간과 공간을 다루었으니 사람으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동아리 졸업생(훌륭한 작가님이다!)의 제안이 있었다. 그것도 좋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올해에는 '질문'이라는 단어에 끌렸다. 내 삶을 이끌어가는 질문은 무엇인가. 우리가 세상에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세상에 질문할 수 있을까. 3월 첫 만남 때 그 테마에 대해 알리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시간마다 글을 쓰라고 부추겼다.
올해 만난 아이들은 미리 신청을 받고 면접을 통해(다 통과시켰지만 계속 쓸 거라는 게 엄포로 느껴지는 학생은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 차원이었다.) 구성했다. 그래서인지 매시간 글을 쓰자고 할 때마다 기꺼이 그리고 열심히 글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게 너무 기특해 나도 함께 글을 쓰고 시간마다 아이들을 칭찬했다. 동아리 시간마다 한 편의 글을 쓰는 것도 흐뭇하고, 여름방학 맞이 과제를 제출한 것도 아름다웠다. 컴퓨터실 사용이 어려워서 우린 거의 대부분의 글을 직접 손으로 원고지에 썼는데, 이렇게 꼬박꼬박 글을 잘 써주어서 원고가 쌓여가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저걸 다 언제 한글 작업을 하나 하고 말이다. 몇몇 학생들의 노고를 상점과 바꾸어 주고 내가 직접 키보드를 치기도 하면서 문서 작업을 완료했다.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는데 함께하니 할 수 있었다.
그다음 마음먹기 힘든 일은 바로 편집이었다. 작년에 해봤지만 또 두려운 일임은 분명해 언제까지고 미뤄두고 싶었다. 저걸 언제 하나 마음에 부채감만 쌓여가다가 우리 책의 크기, A5에 맞춘 한글 문서를 여러 번 열었다 닫았다. (화면을 노려보다가 충혈된 눈 때문에 안과에 다녀오는 것도 책 만드는 일에 포함된다.) 한글 파일 하나에 글을 갖다 붙이기 전 전체적인 틀을 잡고 순서를 손 보았다. 글을 하나씩 복사해 붙이고 편집을 시작한 게 9월. 그즈음 학교에서 해야 할 업무 중 하나가 교과서 선정 업무였는데 편집을 시작하고부터는 다른 업무를 하는 것도 싫고,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것도 싫을 만큼 편집 일에 빠져들었다. 우리 반 학생들이 사고 치고 오면 편집을 못 해서 속상했다. 맞다, 나 이런 거 좋아했지. 옆 선생님한테 '저희 책 만듭니다.', '저 이제 책 편집해요.' 하고 자랑 겸 투정을 부렸는데, 그다음엔 '이거 재밌어요, 다른 거 안 하고 이것만 하고 싶어요.'하고 고백하고 말았다.
가을부터 동아리 시간에는 여전히 글도 썼지만 저자 소개가 빠진 학생들을 불러다가 받아 적고, 한 명씩 불러다가 글을 펼쳐놓고 대화했다. 이 글의 의도가 이거 맞지? 이 부분 어때? 여기 좀 고쳐볼까? 제목을 바꿔보면 어때? 자기 글에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수정해 오는 학생도 있었고, 이 글 빼고 다른 글로 넣어주세요, 하는 학생도 있었다. 여러 번 글을 읽는 과정에서 학생들에 대한 내적 친밀감은 높아져만 갔다. 너도 글쓰기의 즐거움을 아는구나.
어느덧 활동 소감을 쓰는 날이 오고, 그 시간에 디자인을 맡기로 한 학생들은 책 표지를 만들었다. 올해 표지는 학생들끼리 했으면 했는데,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숫자 계산을 결국 내가 했다. 우리 책이 268쪽이나 되어서 그에 맞게 책등 너비와 여백 등을 계산해 틀을 만들어 주었더니 아이들은 표지를 뚝딱 만들었다, 그것도 아주 근사하게.
인쇄를 맡기고 이번엔 수월하게 통과될 줄 알았더니 또 파일에 문제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작년에는 수록한 사진들을 흑백으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올해엔 사진을 넣지 않았다.) 아, 글꼴! PDF 저장하면 글꼴이 이상하게 바뀌더니만. 이상했던 걸 그냥 넘겼더니 꼭 이렇게 문제가 되는구나. 업체에서 수정해 준 걸 확인하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책 상자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내 손에 받아본 우리들의 책.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