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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Jul 26. 2022

돌아보면 아득한 것이 그곳에 있다 2

 2

 뜻밖에 경상도 사투리의 아주머니가 우리는 맞는다. 나 포함, 일행 중에 경상도가 고향인 가족이 있어서였는지 뜻밖에 일가를 만난 듯 모처럼 유난히 반가운가 보다. 그렇지 않더라도 충청도에서 듣는 경상도 사투리가 모두에게 반가웠던 것은 이질감에서 오는 또 다른 느낌이 있어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닭집이라는데 의외로 수수부꾸미를 판매하고 있다. 잔치국수까지 취급하고 있는 것에 이유가 궁금해 물었더니 장사가 통 되지 않아서란다. 이나마 시에서 도움을 줘서 먹고 살만은 하다는 대답이 질문자를 무안하게 만든다. 고객들이 자유롭게 다녀야 할 곳에 오일장을 임시 매장으로 시가 허용해준 것을 말하나 보다. 정작 수수부꾸미를 맛있게 굽고는 있는데 그다지 판매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어쩐지 우리라도 담뿍 매상을 올려야 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아직 개시도 못 한 분위기인데 제법 값이 나갈 수수부꾸미를 따끈하게 부쳐 선뜻 대접을 한다. 우리 일행은 기꺼이 포장을 주문했다.

 34년 동안 닭집을 운영하였다는 아주머니는 웃는 얼굴에 조용한 모습이다. 처음 장사는 단순하게 시작을 했다며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시어머니가 세를 놓은 닭집이 나가는 바람에 우연하지 않게 장사라는 것을 하게 되었단다.

 요즘은 도계장도 있고 기업에서 납품도 받지만, 그때는 편히 팔기 어려웠다며 직접 닭을 잡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조용하고 얌전해 보이는데 어디에 그런 모습이 숨어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한창 부끄럼 많고 고왔을 새댁이 직접 닭을 잡았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문득 그 마음이 되어 아주머니를 바라보니 남매를 장성시켜 출가를 시킨 엄마의 마음이 보인다. 결국 궁금하던 질문을 했다. 닭을 취급해야 할 곳에서 수수부꾸미와 잔치국수를 판매하는 구체적 이유를. 

 닭 판매율이 창피할 만큼 저조해 어쩔 수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부끄러워 주변에 닭 팔아 얼마 번다고 말도 못 한다며, 시에서 지원이 없었다면 닭만으로는 먹고살 수가 없다고 했다. 이곳 경제는 바닥이다, 예전보다 90%는 하락했다, 그나마 오래된 거래처에서 구입해 주는 것이 고맙다며, 계속 말이 이어진다.    

 그만 내 탓만 같아 송구스러워졌다. 안쓰럽기까지 하여 무어라 말을 전하기도 어려웠다. 이미 상권을 대형마트에 잃었다는 의미이다. 시에서 이렇게 신경 써주는 것이 무척 고맙기만 한가 보다. 몇 번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순수한 모습에 가슴이 아리 하다. 그러니 이제 얼른 화제를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수수부꾸미 만드는 법을 알려 달라 했다. 아주머니 표정을 환하게 바꿔 놓고 싶어서다. 우선 익반죽으로 준비를 하고. 그런 다음 달콤한 팥소를 만들어 들기름에 지지면 되다며 무안한 표정이다. 좀 더 긴 이야기를 원했는데 숙기 없는 아주머니는 매일 그냥 그렇게 하는 방법으로 별 것 아니라는 듯 한 번에 말을 다 하고 만다. 그래서 얼른 가족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랬더니 비로소 환한 얼굴이다. 

 배달 일은 주로 남편이 하는데 잘 도와주고 있다며 일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자식이 있어 힘든지 몰랐다고 말하는 표정이 밝다. 의외로 이야기가 길어지며 남매를 두었고. 누나가 서른넷, 동생이 서른둘인데 동생이 먼저 결혼을 했으며. 두 아이를 키우면서 고생도 많이 시켰는데 모두 잘 자라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며 진심을 전하는데 뭉클함이 내 두 아이를 그립게 했다. 세상의 모든 모정은 무서울 게 없지 않던가.

 문득 지나온 세월이 아주머니에게 새삼 돌이켜 지나가나 보다. 듣고 있으니 엄마를 자랑스러워할 두 자녀가 내 핏줄처럼 살가워진다. 

 내내 조용하고 웃는 모습에 변화가 크게 없더니 갑자기 왁자지껄 한 소리가 아주머니를 기쁘게 했다. 70대 어르신 여럿이 소주와 함께 수수부꾸미를 주문하며 바짝 구워 달라 주문한다. 바짝 구우면 고소한 것이 더 하다며 아주머니가 어르신들 말을 거들어 준다. 아주머니 손놀림이 급해졌다. 손님에 밀려 돌아서는데 오일장만 기다려진다는 아주머니 말씀이 머리에서 맴돈다. 

 엄마 손을 잡고, 혹은 내 아이 손을 잡고 동네 사장을 마실 삼아 갔을 때 얼마나 행복했던가. 지금도 신도시 어느 곳에나 있는 오일장에 날짜를 주목하며 자주 찾는다. 고향 같은 재래시장이 없다면 오감을 만족하고도 두 손 가득 들고 오는 소소한 재미와 행복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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