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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끝 Jul 14. 2022

밥상 앞에서 궁상 떨기

인터뷰에 앞서 할 말을 가다듬다가 작년에 읽었던 황현산 선생님의 글이 떠올랐다.     


"축제의 음식을 먹는 자는 마땅히 두 손을 적셔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을 우리와 하나 되게 하는 것이며, 우리가 거둔 곡식과 소채, 우리가 잡은 짐승들에게 속죄하는 길이다. … 오리는 내놓고 죽어 우리 손에 있는데 어찌 우리가 옷이 젖는 걸 관계하랴. 어찌 속죄가 없이 행복하랴.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자신이 살해한 생명들과 자기가 먹는 음식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려는 우리가 두렵다. … 희생된 생명들은 거기서 생명이기를 그치지만 그것들과 하나가 되려는 사람들 속에서 어떤 행복의 형식으로 다시 피어난다고 말해도 무정한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식사 예법은 프랑스에서 귀족들이 자신과 서민을 구별하기 위한 단절의 도구였다. 귀족들이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를 과시함으로 생체권력을 쌓고 차별성을 드러냈다. “너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면, 네가 무엇을 먹는지를 말해주면 내가 가르쳐주마!”라는 브리야사바랭의 풍자적인 경구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현대인들은 식탁에 두 손 뻗고 음식을 먹는 사람을 보면 뭐라고 할까. 아마 궁상떨지 말고 차분히 먹으라고 하지 않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 궁한 사람은 부족하고 어렵기에 한 끼에 식사에도 행복하고 그걸 축제로 여기는 사람일 것이다. 또 음식을 귀하게 먹고 그뿐 아니라 그 음식이 나에게 하루의 생명을 주었음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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