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가리 K계장님이 얼마 전 올린 포스팅을 읽고 말았다. 갑자기 전화가 와서 계장님 특유의 하이톤으로 “넌 천재야!!!” 라고 말해주셨다. 그리고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어!”라고 하셨다. 계장님다운 기승전자기애였다.
계장님과 나는 나이도, 계급도 차이가 많이 난다. 이 관계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과 관계가 깊어질수록 내가 받는 에너지도 다양해진다는 거다.
공무원 조직은 사기업에 비해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한 직원들이 같이 근무한다. 그 환경 속에서 그동안 느낀 나이 차이가 나는 동료, 상사와 친해지면 좋은 점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또래보다 40대 왕언니 주임님들 중에 친한 직원이 더 많다고 하니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와 너의 다름을 이해해주는 연륜이 있어서 더 편할 수 있을 거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20대 또래가 사생활에 대해 꼬치꼬치 묻지 않는 게 선을 지키는 매너라고 배웠기 때문이라면 40대 왕언니들은 “살다보면 말 못할 것들이 있다.”며 자기가 살아온 인생에서 체득한 배려를 보여준다.
회사 밖의 당장 신경써야 하는 문제들은 조금 다를 수 있어도 그거대로 듣는 재미가 있고 내가 하는 고민들도 이미 다 언니들이 겪어본 것들이라 편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만난 언니들이 특히 성격이 좋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기는 하다. 이 언니들이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거라는 안전감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열 수 있던 거니까. 운이 좋았던 덕분에 나와 다른 시대를 살아온 분들을 이해하는 힘을 길렀다.
내가 참 존경하는 상사 한 분은 기계치다. 카카오톡에 친구 추가하는 방법을 잘 모르신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는 직원에게 조용히 케이크를 선물하며 안아주는 다정한 분이시다. 카카오톡 이용법을 모르는 것 쯤은 이 분을 좋아하는 데 아무런 장벽이 되지 않는다.
또 한 분은 뼛속까지 ‘옛날 사람’이다. 아직도 직원들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신다. 이렇게만 보면 시대의 흐름을 거침없이 거스르는 분 같다. 동시에 “이번에도 정말 놀랐다. ㅇㅇ주임이기 때문에 이렇게 한 거야. 정말 대단해. 고생했어.”라는 직진 칭찬도 아낌없이 할 줄 아는 분이시다.
처음부터 이 분들의 장점이 보였던 건 아니다. 시대가 만들어낸 MZ세대 이미지처럼 나도 팔짱 끼고 어르신들을 답답하게 보기도 했다.
이 분들 옆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조금씩 다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편견이 깨지는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마음으로 전형적인 꼰대 패턴을 보여주는 상사라도 섣불리 ‘ㅇㅇ한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판단이 빠를수록 내 손해다. 어차피 매일 봐야 하는 얼굴인데 마음에 안 드는 모습만 자꾸 건져내는 것보다 의외의 면모, 배울 점을 찾아보는 게 나에게 이득이다.
이상한 사람은 나이, 성별, 학력을 불문하고 이상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돌이켜 생각하면 늘 이상한 사람 한 명 쯤은 항상 있지 않았나.
나를 괴롭힌 직원은 40대 아이 엄마였다.(결혼까지 성공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애인을 괴롭힌 건 20대 여자 직원이었고(이분도 결혼에 성공했다), 어떤 동료는 30대에 소년 급제한 남자 직원(심지어 이분도 결혼을 했다) 때문에 괴로워했다.
‘요즘 애들’이라고 다 저만 알고 예의 없고 책임감과 끈기가 없는 게 아니듯 40대, 50대, 60대 안에서도 캐릭터가 다양하게 나뉜다. 여자 직원이라고 까칠하거나 연약한 척 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고 남자 직원이라고 대범하고 술 잘 마시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듯 특정 요소에 갇혀 상대를 쉽게 평가하는 태도는 좋은 관계를 얻는 기회를 앗아간다.
상대가 살아온 삶을 상상해보는 노력으로 가장 편해질 사람은 나 자신이다. 기다릴 만큼 기다려보고 상상할 만큼 상상하고 받아들이거나 선 밖으로 밀어내도 늦지 않다.
MZ세대니 X세대니 세대 간 특징은 잘 모르겠고, 1인분을 해내려고 노력하는 다정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 알게 된 사람이 바로 그런 다정한 사람,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나에게 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