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 일기 2편
경주 지진은 느슨해진 일과에 팽팽한 긴장감을 가져왔다. 우리집은 경주 바로 옆 포항이라 그 진동을 고스란히 느꼈다. 그 때 느낀 위협과 공포는 내가 아는 단어들로 표현이 안 된다.
2016년 9월 12일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으로 1978년 기상청이 계기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후 한반도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 지진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공부하기 싫어서 집에 일찍 온 날이었던 것 같다. 집에 혼자 있었다.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온 세상이 휘청휘청 흔들렸다. 난생 처음 겪는 일이라 내가 착각을 한 줄 알았지만 착각이라기엔 온세상 움직임이 멈추고나서도 창문에 달린 블라인드가 아직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우리집은 아파트 5층이다. 포항 지진 때는 건물 출입이 통제되기도 했다.)
2분 정도 가만히 멈춰 서서 이게 무슨 상황인지 생각했다.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던가, 검색을 하려고 했는데 통신이 안 터졌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지진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나서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중요한 거 뭐 챙겨야 되지, 난 돈도 없는데. 속옷도 챙겨야지. 어라, 속옷을 담고 싶은데 왜 자꾸 양말을 집지. 내 손이 왜 이러나. 손이 그만 좀 떨리면 좋겠는데. 옷가지를 좀 챙기자. 아니, 그보다 중요한 거. 수험서. 공무원 수험서 너무 비싸서 또 살 수가 없다. 다 챙기자.
현관 앞에 있는 자전거 헬멧을 챙겨서 집밖으로 나왔다. 학교에서 지진이 나면 책상 아래에 머리를 감싸고 숨으라고 했는데, 지진을 직접 겪어보니 자칫 판단을 잘못하면 건물 안에서 머리 감싸고 죽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참 이성적으로 판단 잘 한 청년인데, 등에 업보처럼 실려있는 공무원 수험서가 알쏭달쏭했다. 이 극적인 순간에 내 손에 들려있어야 할 물건이 공무원 수험서 인 게… 맞나?
큰 지진이 난 다음 몇 날 며칠동안 여진이 계속 됐다. 지진을 알려주는 어플을 설치해 매일 켜놓고 잠들었고 언제든 대피할 수 있도록 온가족이 피난 가방을 싸두었다.
내 하루는 지진이 나기 전처럼 단조롭고 평화로울 수 없게 됐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공무원 시험을 치는 게 맞는가?’와 ‘당장 내일 안 죽을 수도 있는데 하던 거 마저 하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치고 박고 난리가 났다. 자기 전에는 “내일부터 당장 공부를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떠나겠어!”라고 했다가 다음 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이 (길가에 지진 때문에 떨어진 간판들을 무시하고) 독서실로 가는 날도 있었다.
S파처럼 널뛰는 마음을 붙잡고 독서실에서 꾸역꾸역 공부를 하던 어느 날 밤 9시 40분쯤, 땅이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가드레일에 아주 커다란 차가 들이받치는 정도의 굉음이 울렸다. 큰 여진이었다. 나는 곧장 책을 챙겨 뛰쳐나왔다. 이제 곧 다른 사람들도 뛰쳐나오겠지?… 5분…10분… 아무도 안 나왔다. 나만 나왔다. 아, 이렇게 해서는 시험에 못 붙겠구나. 목숨 걸고 공부한다는 게 저런 거구나. 그 날 참 싱숭생숭하게 잠들었다. 세계 여행을 떠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입장 정리를 확실하게 해야했다. 나는 세계 여행을 혼자 갈 수 있을 정도로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 공무원 시험이라도 합격해야 한다.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다.
목표달성이 간절해지니까 슬슬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살이 찌고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하도 이를 악물고 있어서 턱 관절에 문제가 생겼다. 나중에 병원을 가니까 턱 디스크가 밀렸다고 한다. 글씨를 많이 쓰다보니 손목에 힘줄염이 생겨 시험을 칠 무렵 쯤에는 팔을 내리고 길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 다른 손으로 아픈 손을 받치고 걸어야 할 정도가 됐다.
긴 겨울을 지나 4월, 국가직 시험을 쳤다. 대구로 시험을 치러 갔던 것 같다. 합격선에 많이 모자란 점수가 나왔다. 워낙 국가직은 합격컷이 높기 때문에 목표로 삼지도 못했지만 심장이 철렁했다. 이대로라면 지방직 시험도 합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남아있는 멀쩡한 관절들도 마저 내어줄 각오를 가져야 6월에 있는 지방직 시험에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하필 그때 집에 큰 문제들이 생겼다. 멘탈도 몸 상태도 어느 곳 하나 성한 구석이 없었다.
그래도 어쩌나, 가야 할 길이 남아있었다. 머릿속에는 전한길 선생님 자아(ego)가 자리를 잡고 “언니! 정신 차려!”를 외치고 있었고 찾아보는 합격수기마다 사연이 어찌나 기구하던지 나는 힘든 축에 낄 수도 없었다. 더 힘든 환경에 있는 사람들도 공부를 한다, 지진을 겪었든 말든 지금 살아있으면 뜻한 바를 이루자, 아니, 그냥 생각을 하지 말자… 정신을 열심히 붙잡았다.
무릎과 골반이 죽여달라고 말하기 직전 지방직 시험을 쳤다. 합격권 점수가 나왔다. 아, 나도 하면 되는구나. 이렇게 장기간 무언가에 도전해 본 적이 처음이라 성취감이 대단했다. 필기 합격 결과는 복학을 한 다음 나왔는데 기숙사에서 합격을 확인하고 혼자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찔끔 흘렸다. 엄마, 나 합격했어!
방황하던 휴학생은 턱이며 손목이며 성한 곳이 없고 지진으로 공포스러운 날들을 겪었으면서도 끝끝내 목표를 이루어 살아가는 내내 그 성공의 경험으로 잘 먹고 잘살았다는 결말이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생그럽지 않았다. 용기를 주는 레퍼런스를 가지게 된 건 맞지만 세상은 용기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았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니 그간 고생했던 것들이 모두 눈녹듯 사라졌다는 말을 기대한 분이 계신다면 너무 죄송하다.
취업준비나 수험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 긴 시간을 지나온 것만으로도 가치있었어요.”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저 나의 부족함 또는 운 없음 정도로 종결하고 빠르게 재정비해야 하는 바닥인데. 직장 생활도 매일이 기쁨과 행복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얼마 없을 거다.
지진으로 당장 오늘 밤 자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했지만 그냥 다음 날 원래대로 독서실을 간 사람도 있다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다. 인생의 드라마틱한 순간에 반응하지 못하면 시청률은 좀 안 나올 수 있지만 인생은 진짜 드라마도 아니고,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인생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데굴데굴 잘만 굴러간다. 그래서 나는 아무튼... 일단은... 출근길에 글을 써본다. 다음 지진 때는 적어도 공무원 수험서가 들려있지는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