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을 그만두고 화과자 공방을 운영합니다.
요새 뜨거운 키워드를 모조리 집어넣은 제목을 만들었다. 20대 후반 잘 다니(는 것 같아 보이)던 공무원으로서의 직장 생활을 접고 조용히 퇴사를 했다. 몇 달 간 휴직을 하다가 한 퇴사였기 때문에 정말 조용히 회사를 나오게 됐다. 4년 가까이 하루에 끄집어낼 수 있는 열정의 대부분을 쏟아부은 직장 생활이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빠르고 단조롭게 마무리됐다.
사기업 시장에서 용기를 잃기 아주 쉬운 포지션이었다. 30대를 눈앞에 두고 있고 결혼을 한 데다가 경력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공무원 생활이 커리어의 전부인 여자. 전공도 인문 계열이고 그 흔한 컴활 자격증도 없는 사람. 휴직을 하고 쉬는 내내 했던 생각은 직업을 바꾸지 않는 한 안 맞는 갑옷을 입고 있는 느낌은 절대 끝나지 않을 거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먹고 살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면 내가 사기업의 채용 담당자라고 해도 뽑고 싶지 않은 조건을 잔뜩 갖고 있었기 때문에 복직을 해야 한다는 악몽을 꾸면서도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연말을 앞두고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내가 잘 해낼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분야 중에서도 돈과 경력을 보장해주는 것에만 몰두하며 살아왔다. 그 몰두에 방해가 될 만한 낭만이나 취향 같은 부수적인 것들은 일부러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 결과가 숨 차는 기분으로 허우적대며 아침마다 눈을 떠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라면 인생이 단단히 잘못 굴러가고 있는 것이었다. '울면서 조수석에 샤넬 클러치를 집어던지며 벤츠 클락션을 치는' 정도의 대단한 결과물을 얻은 거면 또 모르겠는데 현실은 4년을 일해도 실수령하는 월급이 너무 작고 작고 작을 뿐이었다.
식견이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의 신분일 때는 할 줄 아는 게 많아질수록 불행했다. 일을 잘 한다는 평가는 업무량이 늘어나게 할 뿐이었고 업무 외적인 재능은 취미 이상으로 키울 수가 없었다. 이게 아무리 현실이라고 해도 '나는 너무 불행해'라고 염불을 외는 내가 너무 꼴보기 싫어서 나중에 어떻게 써먹게 되든 식견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인 것 같아 보이는 원데이 클래스를 들으러 다녔다. 그저 즐기러 다닌 게 아니라 그때의 나에게는 그런 배움들이 너무 간절했다. 제발 어떤 모습의 길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 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화과자 클래스를 신청했던 건 지하철 파업으로 쿠키 클래스에 지각하는 바람에 듣지 못하고 수강료만 날려 완전히 낙담했을 때였다. 나는 시간에 맞춰 제때 가야할 곳에 가지도 못하는 사람이야, 엉엉... 하고 울다가 이 순간에도 진로를 고민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흘러간다는 생각에 정신을 번뜩 차렸다. 서양 디저트를 못 들었으면.... 오케이. 동양 디저트로 가자. 그렇게 우연히 화과자 클래스를 듣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쿠키 클래스를 듣지 못한 게 신의 한수다. 화과자 원데이 클래스가 너무 재미있었고 손재주가 좋다는 칭찬에 자존감도 채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 처음 먹어보는 화과자는 정말 맛있었다. 선생님은 손재주가 좋다는 말을 나 말고도 많은 수강생들에게 이미 해오셨겠지만 나한테는 거의 하늘의 계시 수준이었다. 너, 손재주가 좋구나. 손을 쓰는 일을 해봐라. 수업을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처럼 손재주 없고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무슨 인사이트를 얻어올 수 있을까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단 몇 시간 만에 마음이 바뀌었다. 클래스를 듣고 그 날 저녁에 바로 화과자를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몇 달 뒤에는 화과자 공방을 오픈한 사람이 됐다. 순서는 간단했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배웠고, 배워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걸 만들어 팔았다. 너무 복잡하지 않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촘촘히 계획대로 살아온 결과가 늘 좋을 수만은 없다는 걸 20대 내내 느낀 덕에 공방으로 사용할 공간을 계약하고 상호명을 정하고 사업자를 내는 건 순식간에 해치웠다.
내 브런치는 공무원이 너무나 안 맞는 공무원 분들이 많이 보시기 때문에 "MZ 공무원 퇴사하고 결국 자영업을 하게 됐습니다"가 그리 반갑게 느껴지지는 않으실 것 같다. 사기업으로 안전하게 이직한 결말,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프리랜서로 진로를 바꾼 결말을 나도 참 열심히 찾아봤던 것 같다. 공무원을 그만둬도 공무원이 누리는 장점을 분명히 다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을 누군가 주기를 바라면서. 그래서 우연히 손재주가 좋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공직 생활을 그만둔다 해도 지지해주는 남편과 가족들이 있는 이 운 좋은 전 공무원의 결말에 김이 빠지셨을 수도 있다.
자영업자가 된 지 이제 겨우 3달밖에 되지 않아서 '그래도 공무원일 적이 나았다'거나 '자영업 만세'라는 등의 뚜렷한 한 마디를 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일단 안전하고 튼튼하지만 숨통이 조이는 갑옷을 빠져나오는 큰 결단을 해내며 자신을 지켜냈고, 나와보니 꽤 쾌적하고 숨통이 트인다는 것이 일년 전의 나와 비교하면 사람 사는 것 같아보이기는 한다는 거다. 덜컥 시작한 이 자영업자의 삶이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그때의 나는 또 적절한 선택을 해낼 경험치가 생겼다고 믿는다. 이 믿음이 무모해보인다고 해도 상관없다. 이런 믿음을 가지는 것밖에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