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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옳은 Jun 30. 2023

자영업자가 되면서 포기한 의외의 것

사실 이건 자영업자의 배부른 고민일 거에요

직장인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영업자가 된 지 이제 3개월이 지났다. 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공단이 "너의 신분이 달라졌다"는 것을 콕 집어 말해주었다. 공방에만 갇혀 있는 날은 1000걸음도 걷지 않게 되어 애플워치가 좀더 신경써서 움직여보라는 알림을 울릴 때도 내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그밖에도 월요일이 다가오는 게 두렵지 않다거나 사람으로 빽빽한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은 삶의 질을 꽤 높여주었다. 직장인이었을 때와 다르게 밤늦게 오는 업무적 연락도 매출과 연결된다는 생각에 반갑고 자기 계발 정도로 생각했던 운동도 좀더 오래 잘 일하고 싶은 마음에 더 열심히 하게 된다. 비록 한 달에 버는 돈은 아직 작고 귀엽지만 성장하기 위해 시도해 볼 여러 가지 방법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암담하기보다는 전투 의지가 샘솟는 중이다. 


아직까지는 직업을 바꾼 것에 대한 후회나 미련이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을지 미래에 대한 고민만 할 뿐이었는데... 얼마 전에 아쉬운 부분을 찾아냈다. 이제는 내가 많이 노력하지 않으면 일에 있어서 본받을 점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2년 마다 한번씩 부서를 옮기는 공무원 특성 상 내가 부서를 옮기는 때가 아니더라도 6개월마다 한번씩 근처의 누군가가 바뀌었다. 예상할 수 없는 다양한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별로인 직원도 많았지만 옆에 계속 맴돌고 싶게 배울 점이 자꾸 보이는 선배들도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1인 공방 형태의 사업장을 운영하게 되니 네트워킹은커녕 사람하고 말 할 일이 없다.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 기사님께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라는 말이라도 할텐데 지하철을 타니까 이동하는 20분 내내 침묵의 공공칠빵이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주변에 업무 진행 상황을 공유하지 않고 멋대로 진행시키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혼자 고립되는 건 좋지 못한 상황을 초래하기 쉽다는 건데 1인 공방 사장님은 대체 누구와 상황을 공유해야할까. 판매하는 물건이나 마케팅 방식 등 직접적인 운영 방식에 대한 논의 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 태도나 사업체를 끌고 가는 큰 방향에 대한 인사이트 같은 부분도 누가 좀 같이 고민해주면 좋겠다. 가족, 친구, 남편처럼 가까이서 고민해주는 사람들 말고 상사, 동료처럼 고민의 형태가 가까운 사람들이 알아서 쑥쑥 옆에서 말을 걸어주면 좋겠다. 


고민이 여기까지 이어졌을 때 오프라인 독서 모임을 하게 됐다. 원래 대학 동문들과 온라인으로 느슨하게 이어오던 독서 모임이었는데 한번은 얼굴을 보고 모임을 해보자는 제안에 내 공방에서 모였다. 이번 모임에서 내가 갖고 있던 고민의 꼬리가 좀더 길어지게 됐다. 내가 좋은 선배를 찾기 어려운 것도 맞지만 내가 좋은 선배가 되어줄 기회도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른 나이에 직장인이 되면서 젊은 사람이나 여성이 겪어야 하는 짜증나고 부조리한 경우들을 보고 듣고, 직접 경험했다. 내가 선배가 되거든 다른 후배들은 그런 일을 겪지 않게 하는 멋진 선배가 되고 싶었는데 회사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는 지금으로서는 누군가의 선배가 될 일도 앞으로 없을 터였다. 무슨 무슨 멘토링 같은 데에 무슨 무슨 멘토로 참여한다면 이 부분은 어느 정도 해소가 될 것도 같지만, 내가 상상하던 그림과는 조금 다르다. 이제는 그 낭만을 구체적으로 이루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열심히 일할 동기가 하나 사라졌다는 생각에 살짝 아쉽다.


좋은 선배를 찾기 어려워졌다는 것, 좋은 선배가 되어주기 어렵다는 것 두 가지 모두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민이라는 게 우습기도 하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인간 관계가 너무 많고 복잡하다고, 이것만 아니어도 좀 살 만하겠다고 퇴사까지 해놓고는 또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자연인이 되어 산 속에 들어가 속세와 연을 다 끊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고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연인 분들도 주기적으로 반찬을 가져다 주는 가족이 있는 분들이 좀더 자연생활을 잘 누리시는 것 같던데...


한 일 년 정도 지난 다음에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여전히 좋은 인사이트를 주는 선배나 동료를 찾지 못했는지, 혹은 찾았다고 생각했다가 타격을 입지는 않았는지, 그런 관계가 없어도 여러 모로 충만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성공담이든 실패담이든 브런치에 적을 만한 꽤 괜찮은 글감이 있는 상태면 참 좋겠다. 일단 본업의 매출이 좀 괜찮은 사람이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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