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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Jan 11. 2023

햇살은 매일매일 찾아오지만, 손님은 아니잖아요

안녕하세요, 일러스트 스튜디오 포카입니다.




내부순환로 콘크리트 그늘이 눌은 자국처럼 붙어있는 유진 상가에 다다르면 아이는 자다가도 일어나 나직한 목소리로 "엄마, 이제 우리 동네야?"라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운전석에서 "응, 이제 우리 동네야." 하며 교차로 신호를 살핀다. 유진 상가 육교 아래, 묘하게 각이 드센 것 같은 코너를 돌면 바로 보이는 인왕산. 산세를 따라 시선을 아래로 옮기면 가래떡이 맛있어서 우리 부부가 자주 들리던 떡집이 보인다. 떡집을 지나면 생선과 과일과 신발을 잔뜩 모아놓고 파는 거리 잡화상과 은행이 있고, 그다음 골목 안쪽에 내 작업실이 있다. 공동작업실에서 독립한 후, 세 번째로 얻은 나만의 작업실이다.




작업실엔 큰 창이 서쪽을 향해 나 있어서 해 질 무렵에는 햇살이 폭발적으로 들어온다. 모니터에 집중하다가 잠시 벽 쪽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빛이 서서히 움직이는 것도 볼 수 있다. 영양가가 풍부한 노른자 같이, 노랗게 지는 해의 따스한 빛을 받을 때 느껴지는 그 나른한 기분이 참 좋다.

작업실을 1층 상가 자리로 결정하기까지 큰 결심이 필요했다. 햇살은 매일매일 찾아오지만, 손님은 그렇지 않을 테니까. 그것보다 내가 어떤 걸 팔 수 있을까. 얼떨결에 임대차 계약서에 사인은 했지만, 나날이 고민은 깊어졌다.



'삼십 대 후반이면 실패하기에 아직 괜찮은 나이 같아. 더 지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긴 어려 울 테니까...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해.'라며 든든하게 응원을 해주던 남편은 며칠 동안 앓는 소리를 하는 나를 지켜보다가 "가게를 열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작업실에서 물건을 판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현명한 답을 내려주었다. 그 말은 마치 미지의 해안가로 인도해 주는 파도처럼 용기를 꿈꾸게 했다.



오랜만에 출근해 작업실 문을 열었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팔지 못했다. 하지만 동네 고양이가 어제 퇴근할 때 주고 간 밥을 먹은 흔적이 있고, 세 명의 단체 손님이 구경을 하고 갔고(강아지 그림이 너무 귀엽다며 또 오겠다고 말하고 가셨다), 아이와 함께 오신 손님이 수업 문의를 하고 돌아갔으니까. 아무도 찾아오진 않은 건 아니라며 마음을 달래 본다.

다행히 아이가 앓던 감기도 낫고, 오랜만에 등원을 하게 돼서 이번 주는 SNS에 공지했던 일정대로 출근할 수 있다. 아무리 작업실이 메인이라지만, 개인 사정에 따라 미적지근한 태도로 운영하는 것 같아서 스스로 위기감을 느낄 때도 있다. 아직 아이가 어리기도 하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분주함 속에서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공간에 들러주시는 손님 한 분 한 분 모두가 나에게는 햇살과도 같다. 매일매일 찾아오지 않는 소중한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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