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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기홍 Jul 28. 2017

즐겨라, 쉬어라, 그래야 산다.

카페 사장은 휴식이 필요해. 



 신촌에 있는 E카페 사장은 이런 말을 하곤 해. 

 "카페 사장은 절대 자기 매장에서 반경 200미터 이상을 벗어나면 안 돼. 사장이 늘 자리에 있어야 단골손님이 떨어지지 않자."

 E카페는 장사가 잘 되는 곳이라 그곳 사장의 철학이 옳고 그르다고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어. 하지만 일 년 365일 그렇게 산다는 건 쉽지 않아. 

 그대는 왜 카페를 시작한 거야? 매일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샐러리맨 생활에 지쳐서 그동안 누리지 못한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던 것 아니야? 좋아하는 일조차도 즐겨야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듯이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대가 카페의 문을 열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 '오늘 하루도 또 그렇고 그런 날이 되겠구나'싶다면 처음 카페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곰곰이 생각해 봐. 

 아마도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그럴싸한 자신의 모습을 기대했겠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진한 매출 때문에 카페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지면 또다시 스트레스에 찌들게 돼. 그러면서 '잘 다니던 회사를 왜 관뒀을까, 꼬박꼬박 잘 나오는 급여로 마음 편히 살걸'하는 생각도 할 테지. 

 이런 푸념 섞인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을 때는 쉬어, 쉬면 돼. 가뜩이나 손님이 없어 매출이 바닥인데 어떻게 쉬냐고? 그대가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같이 카페의 문을 연다 해도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뭐가 다른데? 단지 며칠이라도 쉬면서 심신을 다스려 봐. 

 여행을 떠나든지, 카페 투어를 떠나든지, 온종일 영화를 보든지, 가족과 놀이공원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든지 며칠만이라도 카페 매출에 대한 걱정은 털어버리라고. 



사장의 컨디션이 중요한 이유


나도 한때 매출 부진에 시달린 적이 있었지. 주변에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 몇 개씩 들어서던 그때는 매출 경쟁이 엄청 심했어. 단골들도 새로 생긴 매장에 들락거리기 일쑤였고, 간혹 맞은편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나오는 단골과 눈이 마주치는 날이면 속상한 마음에 쓰디쓴 에스프레소 몇 잔씩 들이켜곤 했어. 

 매출이 떨어진다 싶으면 의욕은 온데간데없고 짜증만 나게 돼. 이 때는 손님을 대하는 데도 문제가 생겨. 뒤숭숭한 분위기에 들어오면 손님이 그냥 나가는가 하면, 자리한 손님조차도 오래 있지 못하고 금방 자리를 뜨는 거야. 그러면 또다시 텅 빈 매장만 남지. 반면 매출이 쑥쑥 오르면 새로운 마케팅 기법을 적용해 보고, 음악도 당양하게 선곡해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손님을 대하니 저절로 일이 즐거워지는 선순환이 반복되지. 

 하루는 한 외국인 손님이 내 매장을 찾았어. 이름은 닉인데, 지금은 내 페이스북 친구가 됐지. 그가 매장에 들어오는 순간 왠지 모를 밝은 기운을 받았어. 약간은 히피 같고 과할 정도로 자유분방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어. 게다가 염탐하러 온 것처럼 음료나 한국의 카페 문화에 대해 시시콜콜 물어보더군. 잠시 후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하고 빈자리를 찾아 앉아 있는 그에게 음료를 직접 가져다주며 슬며시 말을 걸었어. 그날따라 손님도 없고, 독특해 보이는 외국인 손님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거든. 한참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의 정체가 밝혀졌어. 닉은 미국 덴버의 한 카페에서 일하는 바리스타였어. 그가 한국을 찾게 된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어. 

 그가 일하던 매장은 엄청 바빴대. 피크 타임 때는 하도 손님이 많아서 마치 자신이 로봇이 된 양 기계적으로 일을 하더라는 거야. 그렇게 2년간 일하다 보니 커피의 매력에 빠져 바리스타가 된 그때의 열정을 잃어버렸대. 직업으로 커피를 대하는 순간 더는 일이 지겹고 힘들기만 하더래. 그래서 당장 일을 관두고 짐을 싸서 한국과 일본을 여행하고 있다는 거야. 다행히 이번 여행을 통해 비슷해 보이지만 각기 독특한 맛을 풍기는 한국과 일본의 카페 문화를 접하면서 커피에 대한 열정이 다시금 피어오르고 있다고 했지. 여행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카페를 열겠다고 했어. 

 닉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어. 전혀 풀릴 것 같지 않은 문제의 해답이 하늘에서 툭하고 떨어진 것 같다고나 할까. 처음엔 갑자기 하던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간다는 게 어디 쉽겠나 싶었는데, 결국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그에 대한 마음가짐과 심리 상태가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의지도 없고 재미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하겠어?


잘 되는 사장들의 자기 관리법


 내 꿈을 이루기 위해 그토록 애써왔는데 인생의 절반도 못 와서 이렇게 지치면 어떻게 하나 싶어 고민 끝에 일주일 동안 직원들에게 매장을 맡기고, 나도 쉬기로 결정했어. 찜질방에서 온종일 빈둥거리기도 하고, 홍대나 강남 일대를 돌면서 카페들을 염탐하기도 하고, 가족과 1박 2일 여행도 가보고, 책도 실컷 읽었지. 그동안 매장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 그런데 닷새쯤 지났나, 갑자기 내 카페는 잘 돌아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때 퍼뜩 깨달은 사실은 그동안 고민해 오던 매출에 대한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카페를 운영할까에 대한 아이디어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더라는 거야. 

 이러저러한 소품과 아이템을 매장에 배치하면 매장 분위기가 살아나겠다 싶은 생각이 드니까 마치 새로 카페를 시작하는 것 같았어. 처음 무언가를 할 때의 그 들뜬 기분 말이야. 매장을 떠나 있으니 내 카페를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지친 마음을 달래고 나니 의욕이 새록새록 솟나났어. 고작 일주일뿐이었지만, 몇 달 동안 푹 쉰 것같이 상쾌했지. 그동안 다른 카페를 찾아다닌 것이 큰 도움이 됐어. 내각 생각해내지도 실천하지도 못한 것들로 가득한 카페들을 보면서 많이 반성했지. 즐기면서 오래도록 일을 하려면 지치지 않게 쉬어가면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여태 내 이야기를 듣고도 매출 때문에 억지로 매장에 붙들여 있는 거야? 당장 문 닫아. 그리고 쉬어 그게 그대의 할 일이자 살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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