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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나 Oct 25. 2024

무유정법

이것이 진리라고 정해진 것은 없다. 

경전을 공부하다 보니 인간은 끊임없이 상을 짓는다. 

상을 짓는다는 것은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주장과도 이어진다. 

경전을 공부하면서 '내가 과연 부처님처럼 깨달을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할 거 같은데'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그냥 알고나 가자'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다른 것은 모두 제처 두고 무유정법만이라도 깨닫는 다면 인생을 훨씬 더 가볍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아들 녀석의 요구를 거절하다 최종적으로 타협을 보게 된 물고기 키우기, 처음 물고기를 키워보는 것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낯설다. 

일단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을 갖추고 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히터기가 말썽이다. 


어항 히터기를 처음 샀을 때는 여름이라 히터기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히터기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 날이 추워지니 히터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히터기를 구매했을 때 어항의 물이 설정된 온도보다 낮은 데 기계가 작동하지 않아 전화를 하였는데, 원래 온도가 정확하게 맞는 것은 아니란다. 계속 지켜보고 이상하면 다음 날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런데 설정온도를 높이면 기계가 작동을 하기는 해서 원래 2도 정도 차이가 나는구나 생각하고 판매한 분의 말을 신뢰하고 그냥 믿고 사용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져 물의 온도가 많이 내려갔고 설정한 온도보다 4도나 차이가 나는데도 히터기가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처음에 구매할 때 설정된 온도에 맞추어 작동하지 않는다고 전화 문의를 했었고, 온도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작동하지 않는다고 전화를 했는데, 나보고 한 달이나 지나서 연락을 하는 경우가 어디 있냐며 진상손님 취급을 한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판매자의 말을 신뢰하고 그냥 사용한 내가 잘못인 건가? 애초부터 자기네가 잘못된 물건을 팔아놓고 왜 나를 진상손님 취급하는 거지?' 하는 마음이 들고,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하니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지 하면서 마음속으로 분노를 퍼부었다. 


그러다 경전공부를 하는 학생으로서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그 판매자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이상이 있으면 다음 날 물건을 가지고 오라고 이야기를 했고, 연락이 없어서 별 문제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문제가 있다고 하니 황당하게 생각될 수 도 있겠구나.


 나를 진상손님 취급하니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한 마음이 들고 판매자의 장사 수준을 비난하고 마음속으로 악담을 퍼부었지만, 한 생각 돌이키니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겠구나 어렴풋이 이해는 간다. 


말 그대로 어렴풋이....


아직 수행이 부족해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나를 진상손님 취급하려던 게 아니라 자신의 억울한 마음을 표현한 것인데, '내가 저 사람이 나를 진상손님 취급한다는 생각을 일으켰구나' 하고 마음을 내니 최소한 화나고 억울하고 분노하는 마음은 좀 사그라든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그 물건을 바꾸러 가는 일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다시 그 사람을 마주 대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분노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고, 비난하는 마음을 내니 내 마음속이 아우성을 친다, 물건을 교환하러 가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마음속에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써본다. 


그렇지만 화나고 억울한 마음이 좀 가라앉으니 화내거나 분노하지 않고 상대방을 대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썼던 시나리오들이 모두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냥 가서 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용기가 난다. 


분노가 사그라드니 막상 바꾸러 가기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귀찮은 마음이 있어서 처음에 물건에 이상이 있다고 의심이 들었지만 물건을 바로 바꾸러 가지 않고 그냥 판매자가 괜찮다고 하니 괜찮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문제가 생기니 나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상대의 잘못만을 탓하며 화내고 있었구나 하고 반성해 본다. 

고장난 히터기는 마음공부 수업료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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