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무엇을 선택할 거야?
어젯밤엔 방에 있는 나를 엄마가 거실로 불렀다. TV홈쇼핑에 50만 원짜리 다이슨 헤어드라이기가 올라왔다는 거였다. “드라이기 주제에 무슨 50만 원이야” 했지만, 그러고는 바로 엄마에게 “이것보다 다이슨 에어랩이 그렇게 좋다더라, 난 그거 갖고 싶다.”라고 말했다.
오늘 아침엔 가족들과 밥을 먹으면서 월드비전에서 제작한 우간다 아이들 방송을 봤다. 6-7살 남짓되어 보이는 어떤 아이는 엄마 아빠가 갑자기 모두 돌아가신 후 소녀가장이 되어버렸고,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 동생들이 울 때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어떤 아이는 먹을 게 없어 이틀 만에 밥을 먹는다고 했고, 또 다른 아이는 흙이 잔뜩 묻은 풀떼기를 잔뜩 주워 모아 먹고 있었다. 엄마가 엊그제 끓이고 딱 한 그릇 남은 올갱이국을 아빠에게 줬고, 아빠는 “나는 이틀 이상 지난 국은 먹기 싫어.”라고 말하며 도로 엄마에게 주었다.
오늘 밤 ‘그것이 알고 싶다’ 에는 정인이 사건에 대해 나왔다. 아무 잘못 없는 16개월 된 아이의 죽음 앞에 세상은 분노했다. 첫 재판 날, 양모가 타고 있는 버스를 향해 어떤 이는 오열을, 어떤 이는 욕설을, 어떤 이는 계란을 던지고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만약 저 자리에 예수님이 있었다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아?”. 성경 속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서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 죄가 없는 자가 먼저 여인을 치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근데 만약 예수님이 그때 하셨던 말을 저 자리에서 똑같이 해도, 분명 돌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사실 정말 잘 모르겠다. 예수님을 믿는 나조차도, 스스로가 처절한 죄인임을 아는 나조차도 저 양모의 죄가 너무 더럽고 끔찍해 보이며 내 것보다 비교도 안될 정도로 커 보이는데. 예수님이 저 자리에 계셨다면 무슨 말을 하셨을지 더욱 궁금해졌다.
방송을 보면 볼수록 마음이 너무 우울해져 방에 들어왔다. 마침 기도시간이 다 되었었다. 기도를 하며 생각했다, 이 세상은 도대체 뭘까? 지구 반대편에는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아이들이 저렇게나 많은데, 나는 50만 원짜리 다이슨 에어랩을 갖고 싶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지구 반대편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가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거리는데, 정인이는 부모를 만나서 세상을 떠났다. 부모가 필요했던 건 둘 다 같았는데, 한 아이는 엄마가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한 아이는 엄마를 떠나서야 비로소 자유해졌다.
우리는 모두 아프다. TV에 나오는 모든 것들은 사실 전부 다 아픈 모습이다. 행복해 보이는 것들도 결국 다 아픈 것의 이면이다.
엄마는 박보영 목사님을 좋아한다. 정말 존경한다고 했다. 나는 그분 설교를 딱 한 개밖에 들어보지 않았지만, 엄마가 가정예배시간에 해준 이야기들로 그분 삶의 아주 작은 일부를 알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이거다.
목사님은 소위 비행청소년이라 불리는 10대들과 함께 사시며 2년 동안 매일 같이 입고 자고 하던 오리털 패딩이 있으셨다. 2년 내내 이불처럼 사용했으니 당연히 낡고 허름할 수밖에 없는데, 그걸 본 여동생이 안타까운 마음에 어느 날 목사님 거처 문 앞에 좋은 캐시미어 코트를 한벌 두고 가셨다고 했다. 목사님은 그 옷을 처음 입고 잠깐 외출을 하셨는데, 얼마 되지 않아 한 골목길에서 추운 겨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벤치에 누워있는 노숙자를 한 명 보신 거다. 목사님은 고민 끝에 입고 계셨던 캐시미어 코트를 노숙자에게 덮어주며 ‘나는 집에 가면 오리털 패딩이 있으니까’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목사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게 너무 어려웠다, 사실 지금도 어렵다. 예수님이 있다는 건 이젠 너무 잘 알겠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처럼 사는 게 너무 어려우니까. 나는 캐시미어 코트도, 다이슨 에어랩도 너무 갖고 싶은 사람인데, 예수님을 믿으면 왠지 목사님처럼 해야 할 것만 같고, 그리고 목사님처럼 하는 게 예수님이 기뻐하실 것 같으니까.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고, 내가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게 맞는 건데, 지금의 나는 그렇게 살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썩 그리 살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 찔림이 너무 괴로워서 더 이상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싶다는 생각도 정말 많이 한 것 같다. 차라리 죽기 직전에 믿을걸, 왜 지금부터 믿어서 이런 마음고생을 해야 하나 싶었다.
하나님을 진짜 만나고, 내 비전에 대해 하나님에게 처음으로 이야기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 날 나는 수단 난민 여성들에게 바느질과 재봉을 가르쳐 가방을 만드는 기술을 알려주고, 그것을 판매해서 그들을 도우는 어떤 작은 사업의 pt를 접했다. 그것은 나에게 너무 충격적인 일이었다. 사회의 최약자이며 나라를 떠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들에게 바느질과 재봉이란, 단순히 가방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을 육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도 살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가방을 만드는 일은,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밥줄이 되었고, 무엇보다 세상적으로 쓸모없게 여겨졌던 스스로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끔 해주었다. 그들은 살아났다.
그때 나는 이런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는 사람을 살리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그냥 예쁜 디자인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제 디자인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렇게 꼭 되게 해 주세요.’
그 기도가 오늘 다시 생각이 났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네가 나에게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 것 기억나니? 너에게 사람을 살린다는 건 뭘까? 그것이 네가 정말 원하는 삶의 방향이라면, 너의 것을 기꺼이 포기하더라도 그 삶에 다가갈 수 있겠니?’
일단 먼저, 하나님 정정할게요. 전 세상도, 사람도 살릴 수 없어요. 그건 제 능력 밖의 일이에요. 저도 결국 아픈 사람 중 하나인데 제가 감히 누굴 바꾸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어쩌면 한 사람이, 그리고 세상이 다시 살 수 있도록 아주 작은 통로를 제공하는 것뿐이에요. 그걸 택하는 건 오롯이 제 몫이라는 것도 알아요. 하나님마저도 강요하시지 않을 거라는 것도요.
근데 하나님, 전 아직은 다이슨 에어랩도 가지고 싶고, 우간다 아이들도 도와주고 싶어요. 둘 다 하고 싶어요. 근데 만약 저의 내려놓음으로 인해 누군가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그것을 선택하고 싶어요. 그 마음을 잃지 않게 해 주시고, 점점 더 커지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