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기 충전하면서 쓰는 글
2000년대 초반, 주말 오후 음악방송에 '춘자'라는 가수가 나왔다. 우리 고모 이름이네, 트로트 가수인가? 신나는 전주가 흐르면서 조명 아래 마이크를 잡고 있던 여자는 머리를 빡빡 밀었고, 심지어 <가슴이 예뻐야 여자다>라는 충격적인 제목을 단 노래를 불렀다. 잘 그을린 멋진 피부에 보잉 선글라스 그리고 빡빡이 조합은 잊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노래실력이 시원시원했다. 준비된 엔터테이너 같았고, 한동안 '쎈캐'로 방송에 나왔다. 학생 때 어떤 공연장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데,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지만 나도 모르게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좀처럼 나오질 않기에 한참 잊고 살다가.. 며칠 전 인터넷을 유영하다 마주친 <비디오 스타> 클립 안에서 춘자를 보았다. 더 이상 빡빡이는 아니었지만 짧고 멋진 머리에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허스키 보이스와 시원시원한 멘트로 패널들을 또 휘어잡고 있었다.
춘자를 처음 봤을 때는 몰랐지. 내가 20년 후 빡빡 밀게 될 줄이야.
대학교에 진학하며 두발에 자유가 생기자 나는 머리카락에 온갖 고난을 주기 시작했다. 그저 귀밑 30cm 생머리를 고무줄 하나로 질끈 묶고 다닐 수밖에 없었던 고등학생 시절을 비웃기라도 하듯, 머리카락 단백질을 쪽쪽 뽑아먹었다. 펌, 염색은 기본이고 검은 뿌리가 올라오면 집에서 셀프로도 염색을 했다. 초반에는 이제껏 못해본 한을 풀려고 손질을 했었다면, 조금 지나고부터는 일상의 지루함을 머리에 풀었던 것 같다. 숏컷도 해보고, 연반인 재재의 빨간 머리도 했었다. 다시 길러서 또 펌에 염색에.. 지긋지긋해서 다시 투블럭으로 쳐버리고, 회색 염색을 했다가 크루엘라의 백발도 되어보고 거기에 연두색 청록색도 씌웠다가.. 또 가슴께까지 길렀다가 어느 날 툭 잘라버리고, 기르고 다듬고.. 미용실에 들인 돈을 세어본다면 얼마쯤 되려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 돈이 아까웠지만 머리 지랄은 포기할 수 없다며 셀프로 탈염색을 계속했다. 그렇게 카키색 머리, 분홍색 머리를 지속하며 2주에 한 번씩 탈염색을 하던 어느 날, '아 이 짓도 지겹다'. 무대 위의 아이돌은 찰랑찰랑 반짝반짝 멋진 색의 머리를 보여주지만 그것 또한 프로페셔널의 손길이 항상 닿기에 그 정도인 거지, 에센스와 고데기 없는 생머리는 그야말로 개털과 같다. 머리를 감을 때 뚝뚝 끊겨서 두피를 자극하고, 거울 앞에서 말리고 나면 거위털처럼 하늘하늘 흩날리는 분홍색 털을 보며 생각했다. '초기화해야겠다'.
스물한 살, 숏컷에 도전할 때는 후회할지도 모르니 너무 짧지 않게 잘라달라고 했다. 손 많이 가면 귀찮아하는 성격에 손질이 간편해서 좋았고, 잘 어울린다는 얘기까지 들으니 아주 마음에 들어서 미용실에 들를 때마다 점점 짧게 정리를 했다. 자연스럽게 투블럭으로 넘어간다. 옆머리를 밀 때 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서 16mm로 시작했다. 12mm, 9mm, 6mm를 거쳐 마지막엔 3mm로 밀어주세요 했다. 이발기와 아주 친해지니 삭발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사라진 것 같다. 이렇게 상한 머리 길러봐야 계속 잘라주면서 시간만 보내겠다 싶어서 그냥 삭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에 조금씩 말을 흘렸다. 아 머리가 이모냥 이꼬라지니까 그냥 밀어버릴까 봐. 반응이 갈렸지만 어차피 마음은 계속 쏠리고.. 나는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청개구리라서 어느 날 결심하고 동생 방문을 두드렸다.
- 머리 좀 빡빡이로 밀어주라.
- ㅋㅋㅋ술 마셨냐?
- 응. (일이 있어서 마시기도 했음) 근데 밀긴 밀거야.
- 그렇다면... 내가 또 후임들 머리를 기가 막히게 밀어줬지.
어릴 때 내 동생은 머리를 한 번도 미용실에 맡긴 적이 없었다. 아빠가 항상 집에서 이발기로 정리해 줬기 때문이다. 손재주가 좋아 맥가이버같이 뭔가를 툭툭 만드는데 소질이 있었던 아빠는 헤어 디자이너로도 자주 변신한 셈이다. 그런 손재주를 이어받았는지 군대에서 후임들 머리를 자주 밀어줬다는 동생은 익숙하게 이발기를 집어 들고 내게 마음의 준비를 시켰다. '일단 길게 잘라줄 테니까 나중에 괜찮으면 더 밀어.' 항상 미용사 분들께 내가 하던 요청이 거꾸로 들어온 셈이다. 그렇게 나는 12mm 빡빡이로 시작했다. 화장실 바닥이 온통 분홍색 털 천지가 되니 시츄라도 된 느낌이었다. 옆머리 뒷머리를 좀 더 짧게 정리해준 동생은 날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허허 웃고는 제 방으로 돌아갔다. 샤워와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나와 거울 앞에 섰다. 익숙하지 않은 빡빡이가 있었다. 나는.. 아주 친한 사람들에게 겨울왕국의 올라프 닮았다는 소리를 가끔 듣곤 하는데.. 빡빡이가 되니까 정말 올라프가 된 것 같았다. 올라프의 행복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 같아서 얼굴에 함박웃음을 한껏 머금고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사람들 시선의 한가운데 서게 되었다. 우와 한번 만져봐도 돼? 신기하다 어떻게 이걸 할 생각을 했어? 혹시.. 어디 아파? 질문이 끝이 없었다. 엄마는 빡빡이로 밀었다는 소식에 세상 무너진 듯 놀라면서도, 아기 때 두상 납작하지 않게 만들어 주려고 계속 굴려줬다며 강제로 칭찬을 요구했다.
머릿결이 상해서 빡빡 민 것도 있지만, 그저 살면서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었다. 지금 못 하면 나는 일 년이 됐든 십 년이 됐든 머릿속 한구석에 담아두고 언젠가는 꼭 실행에 옮길 텐데, 그럴 거면 마음이 났을 때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너 어디 아프냐는 질문처럼 삭발은 항암치료와 연결 지어 생각되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아픈 사람만 머리를 미는 거라는 편견도 좀 깨고 싶었다. 이건 그냥 단백질 덩어리 아니냐고.. 잘라내도 아픔을 느끼지 않는 손톱 같은 것. 매번 그냥 잘라내도 될 것을 왜 인간은 손톱과 머리를 미용의 영역으로 전입시켰는지 항상 의문이었다. 몸을 의복으로 가리고 얼굴을 화장으로 덮는 것도 모자라 남는 구석구석을 아름다움으로 포장해야 했는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은.. 당시 조국 전 민정수석 사퇴 요구 등으로 삭발투쟁이 줄을 잇는 중이었기에 예상치 못한 질문도 많이 들었다. 혹시 정치에 뜻이 있는 것이라도..? 그럴 때마다 한바탕 웃어제끼며 그런 건 아니라고 해명해야만 했다.
덕분에 샤워가 빨라진다. 처음에는 이것도 머리카락이라고 샴푸를 써 줬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불필요한 플라스틱도 줄이고 싶었고, 몸에 맞지 않는 화학성분이 들어간 샴푸, 바디워시 등등을 사용하고 싶지 않아 도브 뷰티바로 몸 전체를 씻기 시작하며 지출도 줄었다. 숱이 많아서 여름에도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려면 샤워 후 또 땀을 한바가지 흘려야 했다. 이제는 머리를 말리는 시간이 10초도 되지 않는다.
동생이 처음 잘라준 이후부터는 내가 스스로 이발기를 들기 때문에 미용비도 들지 않는다. 나는 숏컷을 하면서도 '여성 가격'을 받는 미용실에 다녔었다. 내 머리는 기장이 허리까지 오는 것도 아니고, 샴푸와 트리트먼트가 다른 것도 아닐 텐데 약 5천 원~만원 차이가 나는 게 의아했었다. 그땐 불편해하는 목소리들이 적었고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내가 지금 미용실에 들어가 '4mm로 밀어주세요~'라고 하면 얼마를 받을까 궁금하다.
'잘 어울린다, 예쁘네'라는 틀에 박힌 말들을 들으려고 머리를 바꾸는 것도 아니고, '펌이 벌써 풀렸네, 염색하니까 얼굴색이 떠 보이네' 등등 기분 나쁜 말들을 들으려고 머리를 바꾸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언급하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다. 머리가 한결같이 짧으니 이런 원치 않는 소리를 듣지 않아 좋다. 남들에게 신경을 좀 그만 썼으면. 물론 가끔 오지라퍼를 만나면 여기는 덜 깎였네, 한 가닥이 삐져나왔네 소리를 듣기도 한다. 미안하지만 네 머리나 좀 보세요.
하지만 의도치 않게 질문과 시선의 중심이 돼서 불편하기도 하다. 나는 거울 앞에 서지 않는 한 내 머리가 보이지 않고 이제 1년이 넘었으니 익숙해져서 잘 모르는데, 남들은 아직까지 좀 신기해한다. 한국인들이야 젊은 여자가 빡빡이라니까 더욱 의아해하며 질문을 던지고, 여기 사람들은 아주 가끔이지만 어르신들이 조금 쳐다보긴 한다. 지금 같은 겨울엔 추우니까 모자를 뒤집어쓰고 다녀서 조금 낫지만, 여름에 마스크 쓰고 공원을 걸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이 쳐다보기도 했다. 심지어 처음엔 질겁하던 엄마도 내가 매번 빡빡이의 장점을 설파하자 좋아 보인다며 짧게 밀어버리고 보라색으로 염색했는데,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더욱 설명할 것이 많아 불편해진 엄마는 곧 머리를 다시 길러야만 했다.
게다가 나는 패션에 관심이 없어서 옷도 좀 아무거나 주워 입고 다니고, 화장도 안 하니까 좀 볼품없어 보이긴 한다. (ㅋㅋㅋㅋ) 비니만 써도 스타일리시하다는 건 거짓말이다. 이스트 런던에 비니 없이도 스타일리시한 여자 빡빡이들 많다. 나는 그냥 기묘한 빡빡이다. 이렇게 짧은 머리를 하면 좀 오해를 많이 받기도 한다. 옷이라도 좀 신경 써서 입고 다니거나 몸에 볼륨이 있거나 하면 오해를 덜 받는데.. 한 번은 쉐어룸을 보러 갔다가 근데 여자분 맞으시죠?라는 질문을 들었다. 나는 목소리도 남들보다 낮아서 오해할 만했을 것이다.
최근에 라이프코칭을 받았다. 흐르고 흐르던 대화는 내 입에서 정상성(Normality를 뜻하고 이야기한 것인데 적절한 단어인지는 모르겠다)이라는 말을 끄집어내었다.
- 나는 남들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받고 싶지 않아요.
- 그렇다면 이상한 사람이 뭘까요?
- 특이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지 이상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요.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 틀에서 벗어난 사람 중에 결함을 가진 사람들을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아요.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이게 정상이야!라고 말하는 성격이나 모습이 있다. 세상에는 70억 인구가 있고 지역마다 문화권마다 그 정상성이라는 것은 다 달라지게 마련인데, 그럼 답답해하면서 그 안에 갇혀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가 만약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성 정체성이나 지향성이 남들과 달랐다면 처음부터 정상성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없고. 외향적인 성격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잡고 > 안정적으로 가족을 만들어 살아가는 정형화된 틀 안에 있고 싶은 생각은 쌀 한 톨만큼의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동시에 그 틀을 완전히 벗어나면 사회에서 내 자리를 잃는다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 싫다고 반항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주입된 것들 때문에 그 안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또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내면이 단단했다면 가치관이 흔들리지 않게 나를 붙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갑각류처럼 안에 감춘 살을 보호하기 위해 나는 외형적으로라도 특이한 사람이 되어볼 거야! 라며 머리카락의 단백질을 희생시킨 것이 아닐까? 없는 것을 꾸며내고 나를 속인 것일지도 모른다.
서른이 넘은 지금 가끔씩 불안함을 느낀다. 열정을 바탕으로 달리는 20대, 덕분에 얻게 되는 30대의 안정된 커리어, 조금씩 모이는 통장잔고, 결혼과 노후에 대한 준비 등..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떻게든 원 밖으로 삐져나가고 싶다. 빡빡이의 선인장 가시머리로 억지로 뚫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을 다듬어서 준비가 되었을 때 자신 있게 발을 내디뎌서 나가고 싶다.
그래서 가끔은 머리를 다시 길러볼까도 싶다. 샴푸 모델 같은 사람들이 지나가면 눈길이 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저 사람은 머릿결만큼 내면도 윤기가 흐를까? 빡빡이 생활 1년이 지났으니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고, 가끔 예전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머리카락이 있는 나를 보면 (젊기도 하지만) 지금보다 좋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외형은 내면을 반영한다고, 팬데믹과 이런저런 고민들이 겹쳐 말라가는 나의 내면이 얼굴에 드러난 것뿐이다. 머리카락이 있다고 해서 내면의 고민이 채워지진 않는다. 그저 또 휘황찬란한 색깔과, 에센스 부스터의 힘을 받아 얼굴 반을 가리면서 나를 속이게 될 수도 있다.
아, 영국의 지독한 미용실 가격을 생각 못했다.
오늘 밤에도 그냥 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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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머리보다는... 조금 더 짧다. 4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