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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ergist Feb 18. 2021

<윤스테이>에 없는 두 가지

일주일을 기다리게 하는 묘한 힘


일각에서는 '또 여행하고 음식 차리고 먹는 얘기다' 라며 소재의 돌려막기를 비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영석 PD가 연출하는 예능은 줄줄이 히트를 친다.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 윤식당, 신서유기, 알쓸신잡 그리고 각 시리즈의 스핀오프 격인 스페인 하숙이나 강식당, 여름방학 등. 나PD의 신작이 발표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금요일 밤 채널을 tvN에 맞추고, 다음날 아침 이례적인 시청률을 또 한 번 기록했다는 기사를 통해 '돌려 막는다던' 소재는 여전히 힘이 강력하다는 것이 입증된다. 익숙한 소재 몇 가지를 이리저리 붙이거나 과감히 빼 가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니, 시청자들은 새롭지만 아주 낯설지도 않고 친숙하지만 또 너무 뻔하지도 않은 나PD의 예능을 찾아본다. 줄줄이 나열한 저 제목들을 바라보자니 그 묘한 힘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이번 주 6회 차 방송을 앞두고 있는 <윤스테이>도 이와 맥을 함께 한다. 발리와 스페인을 잇는 윤식당의 시즌3 격이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 19 팬데믹에 진행이 어려워지자, '외국의 작은 한식당' 이 아니라 '한국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한식당+게스트하우스' 컨셉을 내보인 것이다. 스페인 하숙과 윤식당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본인들이 가진 리소스를 다양한 형태로 여기저기 적용해보며 구상했을 제작진의 영리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 시국에 적절치 못한 구성이라는 비판과 시청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제작진은 진심을 담은 사과 자막을 띄우며 시리즈를 시작했고, 논란이 무색하도록 연이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 중이다. 여기에 추가로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사용할 있는 어메니티 용품들을 친환경 소재로 제작하고, 종교적 신념이나 동물 보호 등을 위한 목적으로 채식을 하는 손님들을 위한 메뉴를 준비하는 등,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겪도록 하는 착한 예능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면서 인기가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지난주 결방을 맞아 나는 오랜만에 예능프로그램 없이 조용한 주말을 보냈다. 일주일을 기다리는 낙이 되고 있던 참이었는데.. 허전한 한 주를 보내는 동안 마치 머릿속에 그리운 님이 떠오르는 것처럼 재밌었던 장면, 마음에 와 닿았던 장면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왜 이 프로그램을 좋아할까?







모난 사람이 없다


다섯 배우가 가진 고유한 성향과 특기를 바탕으로 업이 정해졌다. 윤스테이의 사장이자 모든 호스피탈리티를 총괄하는 윤여정, 경영 및 접객과 음료부를 맡고 있는 부사장 이서진, 보조에서 벗어나 이제는 주방을 총괄하는 메인 셰프가 된 정유미, 스페인에서의 활약으로 승진을 거머쥔 셰프 박서준, 그리고 시리즈에 처음 합류한 막내 인턴 최우식까지. 게다가 이 다섯 명의 합 또한 아주 좋다. 이전 시리즈에서 쭉 같이 해 온 멤버들이야 이제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쿵짝이 잘 맞는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최우식의 합류가 이미 친분이 있는 정유미와 박서준에게는 든든한 백업이 되고, 사장 부사장님과는 싹싹과 주접을 넘나들며 흐뭇한 케미를 만들어낸다. 


최근 영화 '미나리'와 관련해 진행한 씨네 21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배우 윤여정은 '나는 늙은 여우, 소문을 들어서 알겠지만 나는 짜증이 나면 그냥 짜증을 낸다' 라며 본인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대중들 앞에 나서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본인을 예쁘게 포장하기보다는 오히려 단점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잘못된 행동을 하고도 나이를 들먹이며 라떼를 외치는 기성세대들의 모습이 머리 한편에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실수가 생겨도 '나 여기 진짜 주인 아니라서 몰라요' 라며 웃음을 주는 동시에 끝까지 제대로 대처하려 노력하는 모습. 시즌에 걸쳐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배우는 주어진 일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모든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봤을 존경할만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 이서진의 예능 캐릭터인 '까칠함'은 귀찮음을 바탕으로 나PD에게 던지는 타박과 뭐든 열심히 하기 싫다는 본인의 강력한 주장이 만들어 낸 모습이다. 하지만 그저 까칠한 사람이라면 시청자들이 몇 년째 이 캐릭터를 좋아했을까? 젊은 배우였다면 인성 논란 기사로 도배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제작진이 자막으로 놀리기 좋아하는 '뉴욕대 경영학과' 졸업장은 그가 극대화된 효율성과 표현의 부재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귀찮지만 어쨌든 열심히 하고, 빨리 쉬려고 더 열심히 한다. 최근에는 그의 언행불일치 덕분에 다정함을 함께 가진 '이서윗' 캐릭터로 진화하기도 했고. 


배우 정유미에게는 '사랑스러움'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낮에 뜬 달을 보며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음식이 잘 되었어도 너무 자만하면 큰코다치게 된다고 조심스레 자신을 다독인다. 메인 셰프라는 직함을 달며 어깨가 무거워져 낮잠을 자는 순간까지 레시피북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와중에도, 위아래로 사람을 챙기고 중간에서 차분하게 팀을 이끌어간다. 이 배우는 방송이 아니어도 모든 것에 진심으로 임할 것이라는 믿음이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MBTI 플로우에 맞추어 감정형인 정유미와 사고형인 윤여정/이서진의 대응이 코믹한 대비를 이끌어내는 모습이 방송되기도 했다. 나는 사고형에 가까운 사람이라 감정형들을 이해하기 힘들어했지만, 저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면 정말 친해지며 알아가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떡갈비 때문에 끊임없이 고기를 다지느라 눈빛에선 영혼이 빠져나갔어도 다음 작품엔 백정 역할을 하겠다며 자연스럽게 대사를 내뱉는 배우 박서준은 묵묵함과 위트를 동시에 보여준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 밑 작업들을 가리지 않고 먼저 해 메인 셰프 정유미의 수고를 덜어주고, 첫날 저녁이라 정신없고 힘든 와중에도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여유가 있다. 본인이 통제하기 힘든 상황들이 이어지면 사람은 허둥지둥 대기 마련이다. 하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숯이 떨어지는 비상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 방안을 찾는 등 노련한 모습도 겸비했다.


티저 예고편부터 인턴의 수난기가 예상된 배우 최우식. 예전에 소방대원으로 참여했던 예능 클립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이 배우의 배려심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손님들에게 싹싹한 모습으로 다가가 말을 건네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 알러지를 비롯한 불편사항을 계속 체크하는 등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주려는 노력이 보인다. (어느 조직에나 막내 인턴의 역할이 그러하듯)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자잘한 업무들을 맡아하느라 하루 종일 숨을 헥헥 거리며 뛰어다니는 걸 보고 나면,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초이(Choi)의 고단함으로부터 온 자신들의 편안함에 감사를 표하게 된다.






내 삶의 스트레스가 없다


알쓸신잡 시리즈에서 김영하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호텔에는 일상의 근심이 없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빨랫감, 설거지가 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일에 집중이 잘 되지 않으니 조용한 호텔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이 많다'. 적절한 시기에 떠나는 여행은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일상의 환기가 되어준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며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 나의 시야를 넓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 윤스테이를 방문하는 외국인 손님들은 삶의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을 느끼고 각기 다른 이유로 (이 코로나 시국에) 체류하게 된 한국이라는 나라를 즐겨보고자 한다. 


배우들도 마찬가지이다. 극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상황을 바꾸고 대사를 암기하고 카메라 앞에 서는 연기라는 본업에서 잠시 벗어나,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함께 사업을 일궈나가는 한 축으로 자리한다. 게다가 이 사업은 모든 것을 손님의 편의와 경험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면 되는 편리한 방식이다. 나의 자본금이나 월 수익, 품질은 좋지만 가격이 저렴한 원재료를 발품 팔아가며 구입하기,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마케팅, 단골손님 유치 등 끝없이 이어지는 자잘한 사업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샤워를 하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손님에게 비용의 1/3을 깎아주는 것, 콜라를 요청하는 아이 손님에게 준비되지는 않았어도 어떻게든 구해다 주겠다고 약속하는 모습 등은 남겨야 할 것이 돈이 아니라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도 모든 사람들이 이 다섯 명의 수고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한다. 접객업이나 요식업 등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그 흔한 진상 손님이 없다. 온 마음으로 전달하는 정성을 감사하게 즐길 줄 아는 손님들이 방문해서 어찌나 다행인지. 






윤식당 시즌2의 미니어처 촬영기법 연출의도가 이런 것이었을까?



물론 어디나 모난 사람, 삶에 대한 스트레스가 왜 없을까. <윤스테이>는 실시간 유튜브 중계가 아니다. 방송을 위해 손님들을 무작정 받지도 않았을 테고, 현실에서처럼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수십 개의 스마트폰에서는 카드대금 납부 요청이나 일터에서의 급한 회의 소집 등 다양한 알림이 화면을 가득 채웠을지도 모른다. 수십 개의 촬영본을 보고 추려내고 편집해낸 결과물에 피드백을 거쳐 이 정도면 모두가 재미있게 보겠다- 라는 선에서 합격한 에피소드를 접한다는 것은.. 삶의 여러 부분에서 예쁜 것만 선별해서 담은 미니어처 같다. 그래서 이걸 보며 일상의 고단함을 잊고 깔깔 웃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덧붙임.

논란을 일으킨 연예인이 없다는 것도 편안한 시청에 한몫했다. 범죄나 크고 작은 논란으로 자숙 중이던 연예인들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예능에 출연해, 자신의 과거를 천연덕스럽게 언급하며 바보처럼 껄껄 웃고 나면 시청자들이 모든 걸 잊고 다시 받아들여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써 주는 사람들 때문에 자연스럽게 TV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게 되었는데.. 윤스테이에는 그런 불편한 사람들이 없다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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