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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료코홀릭 Nov 28. 2017

우연히 떠난 여행에서 인생의 길을 찾다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준 후쿠오카



 스물두 살의 2월, 내 인생 첫 여권이 생겼다.

여행을 좋아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여행을 참 많이도 다녔다. 내 고향 부산이 있는 경상도를 시작으로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서울과 경기도에 이어 바다 건너 제주도 그리고 가슴 뭉클한 반드시 지켜야 할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까지. 그렇게 팔도유람을 다녀서일까?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어른으로 자라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겠지. 여행이라는 것이, 그 어떤 낯선 장소에 간다는 것이 국내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용기가 필요한 것임에는 분명하지 싶다. 여행이라는 것을 통해 부모님께서 나에게 가르쳐주고자 하신 것들이 무엇이었을까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가만히 생각해보면, 감히 그 가치를 표현할 길이 없다.


길 위에서 하는 공부


 어디로 여행을 갈 것이며, 어디에서 잠을 잘 것이고,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 여행에 관한 모든 것은 우리 집의 장녀인 내가 도맡아 했었다. 그래서 난 지금도 무슨 일이든 기획을 하는 것 그리고 결정을 함에 있어 큰 두려움이 없다. 잘한다 못한다로 나누기보단 스스로 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고, 내가 정한 코스대로 무사히 여행이 끝나고 가족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 그만큼 뿌듯한 경험이 또 없었으니까. 스스로 내린 결정에 따른 책임을 지는 방법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추진력도 그렇게 키워진 것이 아닐까.

운전을 하시는 아버지의 옆좌석은 늘 내 차지였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는 커다란 지도를 펼쳐 들고서, 두 골목 직진 후 좌회전, 유턴 후 우회전 등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짧은 길을 나 스스로 모색하며 그때부터 지도를 보는 눈이 생긴 것 같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는 일, 예상치 못하게 현장에서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지혜롭게 해결해나갈 수 있는 유연성과 순발력, 무엇이든 궁금해하는 호기심과 상상력,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 등 그렇게 길 위에서 하나씩 깨달으며 책이 가르쳐주지 않는 또 다른 공부를, 진짜 인생공부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 것이 바로 여행이었다.


큐슈 최대의 도시 후쿠오카의 공항


부산에서 가장 가깝다는 귀엽고 단순한 이유로 선택했던 일본 후쿠오카.

대학시절 내내 동거 동락했던 벗들과 내 인생 첫 여권에 첫 도장을 찍었던 그때는 매화꽃이 만발하던 시기였다.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나는 그래도 나름 한두 번의 외국 땅을 밟아본 경험이 있는 친구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 바빴다. 늘 가족여행에 있어서는 앞장서던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 등 뒤에 숨을 수밖에 없던 건 아마도 처음 가보는 외국이라는 산이 너무나도 컸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큰 산 뒤에 우뚝하고 서 있는 더 큰 산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언어였다.

그렇다. 난 중학교 시절부터 공교육으로 영어를 접한 세대이다. 하지만 주입식 교육의 폐단을 고스란히 습득해버린 종이와 펜으로 하는 영어는 곧잘 하지만, 정작 외국인 앞에서는 벙어리가 되어버리는 일종의 영어울렁증이 고질병인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니 더더욱 친구들에게 의존하는 나답지 않은 첫 해외여행일 수밖에 없었을 터.



 학문의 신을 모시는 곳으로 유명한 다자이후 텐만구.


 매년 700만 명 이상의 사람이 몰려든다는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에 있는 유명 신사인 다자이후 텐만구.

곧 대학 4학년에 진학을 앞두었던 우리들은 학점, 영어성적, 각종 자격증 그리고 그와 연결된 취업이라는 바늘구멍까지 첩첩산중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자욱한 길 위에 서있었던 때였다. 그래서였을까, 뿔을 만지면 학업성취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소 동상 앞에서 우린 유독 진지했다. 서로가 입 밖으로 내밀진 않았지만 각자 마음속으로 열심히 기도하며 소의 뿔을 간절하게 만졌던 것 같다. 분홍빛 자태를 아름답게 뽐내는 매화가 아주 예쁘게 핀 나무를 바라보며 각자 빈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약속했다.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그때 다자이후 텐만구에서 함께 소 뿔을 만졌던 나를 포함한 여대생 4명은 모두 일본이라는 나라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어떤 친구는 워킹홀리데이로, 또 어떤 친구는 유학으로, 도쿄로 오사카로 각자 다른 이유와 시기였지만 결국 우린 모두 일본땅 위에 지어진 집이라는 곳에 거주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살아남기 위해서 일본어에 능통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고, 현지인들과 부딪히며 울고 웃으며 뭘 해도 좋을 20대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완성했다. 지금은 물론 아무도 일본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지 않는다. 일본 여행을 어마 무시하게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한 평범한 여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 우습지만 아이러니다. 그런 게 인생이고, 그런 게 여행이지 뭐.


일본의 포장마차 '야타이'


야타이에서 결심한 내 인생의 길


 여행 마지막 밤이었다.

후쿠오카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쇼핑센터인 캐널시티 구경을 마치고, 이 여행의 마지막 밤을 호텔에서 평범하게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나카스(中洲) 강변을 따라 형성된 일본식 포장마차라고 볼 수 있는 '야타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카스 강변의 로맨틱함과 일본 현지인들로 바글바글한 포장마차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니, 생각만으로도 흥분된다. 일본에서도 특히 후쿠오카는 야타이로 유명하다. 후쿠오카의 명물로 자리 잡은 포장마차에서는 라멘 및 술과 함께 다양한 음식들을 판매한다. 일본의 포장마차는 위생과 경관 문제로 법적 제재를 받으며 대부분 폐업하였으나, 후쿠오카만큼은 시의 정책으로 유지되고 있을 만큼 후쿠오카에서는 야타이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최근에 다시 방문했던 야타이의 직원분들은 어디서 한국어 교육이라도 받는 듯 매우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시고 한글 및 영어 메뉴판이 기본으로 구비가 되어있었지만, 내가 처음 방문했던 10년 전의 후쿠오카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즐비하게 늘어선 붉은빛 조명 아래에는 알 수 없는 글자들만 난무했고, 여기저기에서 "이랏샤이마세"를 외쳐대는 일본인들이 그저 무섭게만 느껴졌다. 사실 그때는 그 단어가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십시요)라는 것도 몰랐지만. 겨우 일본어로 몇 단어 정도 아는 친구 한 명만 믿고 야타이를 즐기기엔 주문은 어떻게 하며, 바가지를 쓰면 어쩌나 등 온통 겁에 질린 우리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나카스 강에 비친 슬프게도 너무 예쁜 네온사인 불빛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30분가량을 고민했다. 결국 우리들은 부딪힘을 선택했고 아무 가게나 들어가 빈자리에 털썩하고 앉았다.


언제나 맛있는 일본라멘


나의 나침반이 되어준 라멘 한 그릇


 야타이의 점원분께서 활짝 웃으며 우리 앞에 메뉴판을 내미셨다.

일어를 1도 모르는 우리는 어차피 본다고 읽지도 못할 것이니 당연히 받지 않았다. 그러고는 아는 단어를 총동원하여 주문을 하였다.


"나마비루 욧쯔, 라멘 욧쯔 쿠다사이"


일본 야타이의 꽃은 라멘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친구의 의견으로 주저 없이 라멘 4그릇을 시켰고, 지인이 일본에 가면 꼭 생맥주를 마셔보라고 말해줬다는 또 다른 친구의 의견으로 우린 역시나 주저 없이 생맥주 4잔을 시킨 것이다. 주문 후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들에게 폭풍 질문이 쏟아졌다. 물론 일본어로 말이다. 일본어도 못하면서 당당하게 여행을 떠나 온 눈 앞에 쪼롬히 앉아 멀뚱 거리는 눈과 맑은 얼굴을 한 한국인 관광객인 우리들이 꽤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지금 같았으면 현지인들과 언제 또 이렇게 대화를 해보겠냐며 신나서 덤벼들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빨리 맥주랑 라면 먹고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다행스럽게도 금세 따끈따끈한 라멘이 내 눈앞에 등장하였고, 그래서였을까 손에 받아 든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일본 라멘이 어찌나 그렇게 맛있던지. 눈물이 날 만큼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쑥쑥한 분위기를 모면할 수 있게 해 준 라멘이라 더욱 맛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때의 난 이렇게 맛있는 라멘을 매일매일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일본이 점점 더 좋아졌고, 오늘 밤이 가는 게 아쉽다 생각되었다.

마침 그때, 코가 그릇에 들어갈 듯 고개를 숙인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친구들과는 달리 그나마 몇 개의 일본어를 알고 있던 그 친구는 도무지 나는 알 수 없는 대화 내용으로 하하하 웃었다가, 박수를 쳤다가, 다양한 제스처를 해가며 미소를 띤 얼굴로 점원분들과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친구가 내 눈에 들어왔다. 부러웠다. 그 친구가 그 순간 너무너무 부러웠다. 스스럼없이 외국인과 그 나라말로 대화를 이어나가다니... 너무나 멋져 보이던 친구를 바라보며 하필이면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마음이 더 센치해졌던게지. 그때 난 결심하게 되었다.


"지금은 비록 두 귀가 막힌 상태에서 이렇게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신세지만, 기필코 내가 일본어를 공부해서 반드시 이곳에 다시 와야겠다"


로맨틱한 분위기였던 후쿠오카 나카스 강변 야타이에서의 그날 밤이 나에게는 결코 로맨틱하지 않았다.

간질간질 로맨틱이라는 단어보다는 무언가 큰 깨달음이 내 머릿속을 쾅~하고 내려치며,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밤이었을 뿐. 우연히 떠나온 친구들과의 여행길에서 내 인생의 기로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10년째 일본과 사랑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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