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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료코홀릭 Sep 14. 2017

#4. 요정들이 사는 호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1)

H코스 트레킹 상류이야기


크로아티아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아침이 밝았다.

7시에 맞춰둔 알람시계가 울리기 한참 전임에도 피로감이란 1도 없이 두 눈이 깔끔하게 떠졌다. 늘 아침이 힘든 내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는 건 단순히 아직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서인지, 선선한 바람과 너무나 맑은 공기 그리고 새들의 지저귐까지 노래처럼 들릴 수밖에 없는 마음까지 고요해지는 그런 풍경 속에서 잠을 청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후자에 속하지 않을까.


호텔 플리트비체(Hotel Plitvice)에서 맞이한 아침풍경


한국에서도 수도권에 살고 있는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미세먼지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는 것부터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미세먼지의 정도에 따라서 창문을 열어야 할지 공기청정기를 실행해야 할지를 결정하니 말이다.


하지만 플리트비체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조금 달랐다.

삐걱거리는 나무침대에서 내려와 곧바로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가슴을 열고 아주 천천히,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켜본다. 최근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기가 맛있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렇게 창문을 열어둔 채 최대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오늘의 여행을 위한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며 외출 준비를 해본다. 평소 음악 감상이 취미인 나는 집안일을 하거나, 티타임을 가질 때나, 지금처럼 외출 준비를 할 때면 언제나 음악을 틀어놓는 것이 당연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러나, 플리트비체의 아침에는 인위적인 음악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소리도 새들의 노랫소리도 하물며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여행객들의 대화마저도 모든 것이 음악이 되니까 말이다. 불과 17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을 뿐인데 이렇게나 다른 아침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도심 속에서 살아가는 평소의 나는 상상하지 못했던 오늘의 이 아침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니 이 맛있는 공기를 더 많이 더 가득 마셔둬야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트레킹의 시작

호텔 조식을 든든하게 먹고,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트레킹을 위하여 미리 준비해 간 작은 물통에 물도 가득 채우고서 요정들이 사는 호수라 불리는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에 가기 위하여 길을 나선다.

우선, 1인당 110쿠나(약 19,000원)에 입장권부터 구입하였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의 입장권 앞면에는 전체적인 국립공원의 지도와 더불어 화장실, 카페테리아, 인포메이션 정보가 나와있는 위치까지 표시가 되어있다. 그리고 배 혹은 기차를 탈 수 있는 지점 및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지 등 상세한 안내까지 나와있어서 무거운 여행책이나 지도없이 입장권 만으로도 충분히 길 찾기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여행객들을 위한 이런 센스 있는 배려에 박수를.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의 입장권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 추천하는 루트는 A, B, C, E, F, H, K1, K2 코스로 모두 8개가 있다.

8개의 코스는 트레킹을 시작하는 입구부터 소요시간까지 각기 다르다. 각자의 체력과 스케줄에 맞추어 선택을 하면 되는데, 나는 8개의 코스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으며 기차 및 보트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는 H코스를 선택하였다. 사실 전체적인 코스는 똑같은데 순서만 다른 C코스와 H코스를 두고 엄청 고민을 하긴 했었다. 각기 장단점이 있는 두 코스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호수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어 트레킹 내내 뛰어난 경관을 감상할 수 있지만 하류에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므로 체력을 요하는 C코스. 그리고 호수를 등지며 봐야 하는 단점은 있지만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오는 코스라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H코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는 입구가 두 곳이 있는데, 내가 머물렀던 호텔이 입구 2(E, F, H, K 코스의 출발지점)에서 가깝기도 했고 나의 저질체력을 믿지 못하는 관계로 H코스를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H코스 트레킹의 시작점


내가 선택한 H코스는 스테이션(Station)의 줄임말인 St 2라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 H코스 상세 설명 >

1. St 2에서 St 3까지 파노라마 기차를 타고 이동 (소요시간 : 약 20분)

2. St 3부터 P2까지 도보로 트레킹 (소요시간 : 약 2시간)

3. P2에서 P3까지 보트로 이동 (소요시간 : 약 15분)

4. P3에서 휴식 및 식사 (소요시간 : 자유)

5. P3에서 St 1까지 도보로 트레킹 (소요시간 : 약 1시간 20분)

6. St 1에서 St 2 까지 파노라마 기차로 돌아옴 (소요시간 : 10분)


파노라마 기차

9시 정각.

나를 St 3까지 데려다 줄 파노라마 기차에 탑승하는 것을 시작으로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H코스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사실 기차라고 해서 철로를 달리는 일반적인 기차와는 그 모양새가 달라서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었다. 버스처럼 생겼는데 말이지. 아무튼 기차를 타고 달리는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나의 기대감을 점점 상승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사이로 호수가 힐끗힐끗 보인다. 그렇게 20분가량을 달려 St 3에 도착을 했고, 지금 이 지점부터가 도보로 걷게 되는 H코스의 진정한 시작 지점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 위에 파란 점퍼를 입고 서있는 직원분께 표를 제시하고서 드디어 플리트비체 호수에 첫 발을 내딛는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Nacionalni Park Plitvicka Jezera)은 아름다운 호수들, 동굴 그리고 폭포로 이루어진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은 카르스트(karst) 지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석회암과 백악(chalk) 위로 흐르는 물은 수천 년 이상에 걸쳐 침전물을 쌓아 천연의 댐을 만들었으며 그들은 그들대로 또 다른 호수, 동굴, 폭포를 만드는 지질학적 과정을 오늘날까지도 무한으로 반복하며 계속되고 있다. 이 국립공원은 곰, 늑대 등 수많은 희귀종 조류들의 서식지가 되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中)


장엄하고 고요한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들어가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들.

꿈에서나 볼법한 풍경에 난 그만 넋을 잃고 미친 듯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그 깊이도 넓이도 알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거대하고 고요한 호수가 정말이지 아름답다. 호수에 비친 나무들의 모습이 그림 같다. 아니, 그 어떤 훌륭한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 할지라도 자연만큼 아름답지는 않으리. 플리트비체는 인공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기 때문에 나무가 쓰러지거나 휘어져도 굳이 사람의 손길을 들여 바로 세우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는 그래서 더 아름다운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폭포가 보인다.

어제 갔던 라스토케에서도 폭포를 보았었는데, 진짜 라스토케는 플리트비체의 미니어처 수준이었구나! 거침없이 내려오는 시원한 물줄기의 폭포를 보고 있노라니, 내 가슴까지 다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다.



플리트비체를 트레킹 하다 보면 특히 비수기 혹은 비가 오는 날이면 구간별로 막혀있는 곳들이 많다고 한다.

나 역시도 그런 하루에 걸렸나 보다. 원래는 H코스에 해당하는 길이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길이 막혀있다는 안내 표지판과 함께 우회하는 길을 알려주는 표시까지 함께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이 길을 따라 들어가면 300m 즈음되는 곳까지 갔다가 돌아 나와야 하는 상황에서 난 잠시 발길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되돌아 나와야 하는 이 길을 굳이 가야 할까? 하지만 원래 사람이란 청개구리 습성이 있는 법. 과연 출구가 없는 이 길 위로 펼쳐진 풍경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체력도 아직은 충분하니까 다시 돌아 나오더라도 우선은 들어가 보기로 했다. 난 모험주의보다는 안전제일주의이다. 그래서 이곳이 위험지역이거나 출입이 금지된 상황이라면 당연히 포기했을 테지만, 그냥 단순히 들어갔다 나오는 정도라면 가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체력과 시간을 조금 더 들일지라도 해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에 STOP이 아닌 GO를 선택했다.



정말 멋진 풍경이었다.

막혀있다고 안 들어왔었으면 백만 번 후회했을 정도로. 표지판에 적혀있던 안내처럼 약 10분쯤 걸어 들어갔더니 정말 길이 막혀있었다. 아쉽지만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 길에 만난 너무나 예쁜 하늘이 아쉬움마저 훨훨 날려버려 주는 듯한 기분이다. 멍하니 파란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만큼 여유 없이 바쁘게 바쁘게 살아왔던 내 짧은 인생을 잠시나마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여행은 참으로 신기한 녀석이다. 파란 하늘이 뭐라고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에도 반성을 하게 만들질 않나,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곳에 있을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함까지 가질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다시 돌아 나와 표지판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걷는다.

오늘 내 눈들 진짜 호강하는구나. 이 웅장한 플리트비체 호수의 풍경을 사진 한 장에 담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대한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 정성스럽게 카메라에 그리고 내 마음에 담아보려 노력을 한다.


트레킹을 처음 시작했을 때, 눈에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비슷비슷한데 도대체 길을 어떻게 찾아갈까? 하고 사실 생각했었는데 중간중간 표지판이 나와있어서 길 찾기가 아주 쉽다. 혹여나 처음에 내가 트레킹을 시작했던 코스가 너무 힘이 들면 다른 좀 더 쉬운 코스로 중간에 갈아타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구간 통제로 좀 더 굽이굽이 돌아돌아 걷는 길이지만 그래도 눈이 띠용하고 튀어나올 만큼 멋진 풍경들을 보았으니까 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아니, 오히려 구간 통제가 되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모습들을 본 셈이니까 감사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방을 둘러보며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트레킹에 집중한다.

그러던 순간, 어디에선가 엄청나게 강한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걸으면 걸을수록 그 거대한 소리가 가까이에 더욱더 크게 다가온다. 그 순간 나는 '꽃보다 누나'라는 프로그램에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방문했던 여배우들이 "여기는 폭포의 나라인가 봐~"라는 말을 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네, 저도 정말이지 공감하옵니다. 그것도 인위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엄청난 스케일까지...

사실 폭포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물을 엄청 맞는 것은 사실이다. 머리도 옷도 곱게 한 화장도 다 젖어도 그저 즐겁다. 왜냐하면 나는 여행 중이니까.



쓰러져 물속에 잠겨있는 나무 한 그루까지도 그림이 되는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하는 100개의 여행지' 중에 뽑혔다고 하던데 진짜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 같다. 물론 세상은 넓고 볼거리는 많아서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장소가 정말이지 한두 군데가 아닌지만 말이다. 하하하


발을 한 걸음씩 디딜 때마다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멋진 풍경에 정말 한 번도 쉬지 않고 2시간을 넘게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겠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등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이런 느낌일까? 사실 산보다는 바다 취향 쪽인 나에게 등산은 그저 어차피 내려올 텐데 왜 올라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나도 그들을 10분의 1쯤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트레킹은 등산과 비교할 만큼 힘들지도 않거니와, 워낙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제주도의 오름 정도로 비교하는 편이 훨씬 더 맞는 것 같다. 게다가 눈길이 닿는 곳마다 탄성을 자아낼 만큼 멋진 풍경이 줄곧 나와 함께하니 힘들지 않을 수밖에.



드디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넌다는 P2에 도착하였다.

St 2에서 파노라마 기차를 탔던 시간부터 지금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의 예상 소요시간은 2시간 반 가량이었으나, 사진도 엄청나게 많이 찍고 중간중간 물도 마셔가며 열심히 구경하며 걸었는데도 정확하게 1시간 50분이 소요되었으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상보다 체력도 아직 거뜬하고 두 다리도 멀쩡하지만 든든하게 먹었던 조식은 이미 소화가 다 되었는지 자꾸만 울려대는 배꼽시계는 수명을 다한듯하다. 보트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서 만나게 될 점심식사가 무진장 기대되는 순간이다.


그나저나 오후부터 플리트비체에 비 소식이 있다는 일기예보가 있던데...

우산도 우비도 없이 무작정 시작한 플리트비체 국입공원 트레킹인데, 설마 정말 비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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