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료코홀릭 Sep 20. 2017

#5. 요정들이 사는 호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2)

H코스 트레킹 하류이야기


P2라고 불리는 보트 선착장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북적인다고 해서 도심의 욱적욱적 와글와글의 그런 북적임은 결코 아니다. 플리트비체의 상류구간을 트레킹 하는 1시간 50분이라는 꽤 긴 시간을 통틀어 만난 사람이 총 열 손가락에도 들지 않으니, 이곳 선착장에서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을 만나니 북적거린다는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던 것.



지금 나의 발길이 닿아있는 이곳은 'KOZIAK'이라는 이름의 호수.

참 그림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며 트레킹으로 조금은 거칠어진 나의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는다. 두 팔을 크게 펼치고 가슴을 활짝 편 상태로 열심히 심호흡을 하는 나의 두 눈에 들어온 건너편에 있는 또 하나의 선착장. 내가 출발했던 입구가 아닌(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에는 두 곳의 입구가 있다.) 다른 입구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선택한 여행객들은 아마도 저곳으로 발길이 닿았을 것이다. 아래에서 위로 거슬러 올라가며 보았을 지금 저 선착장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의 이 여행이 끝나면 다시 한번 이곳에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는 저들처럼 나도 오늘과는 반대 코스를 선택하리라. 오늘 내가 보았던 플리트비체의 모습을 떠올리며 처음인 듯 처음이 아닌 것처럼, 한 번쯤 와본 사람인 듯 그렇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그 언젠간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알라딘과 요술램프의 지니요정이 나타나 막연한 바람이 아닌 현실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길 건너편의 선착장에서 내 발 밑의 호수로 시선을 이동해본다.

이곳에서 보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먹이라도 던져주는 걸까? 유독 선착장 주변에 엄청 몰려든 물고기 떼를 만났다. 정말이지 물이 너무나 맑아서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오염이라고는 1도 없을 것만 같은 이곳에서 살고 있는 이 물고기들은 행운을 거머쥔 녀석들이 아닐런지. 본인들도 그걸 알고 있을까, 알고 있겠지, 아마도.



호수 위에 둥둥 떠다니며 한가로운 모습을 보여주던 오리가 있는가 하면, 자신들 바로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겁이 없는 것인지 선착장 바닥 위에서 친구와 정답게 노니는 오리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보트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각각이듯 말이다. 이곳까지 오느라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고, 일행들과 함께 주전부리로 떨어진 당을 채우기도, 마른 목을 축이기도 한다. 카메라를 들고 지금의 이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가는 사람도 있고, 보트가 오면 재빠르게 올라타려고 미리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천천히 그들을 둘러보던 난 이때 무얼 했을까. 우습게도 지도를 살펴보고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늘 공부는 보통이었으나 언제나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 하지 말라는 건 절대로 하지 않는 학생, 흔히들 말하는 모범생. 그렇다고 전교에서 유명하리만큼 빛나던 것도 아니었지만 뒤쳐지지도 않았던 딱 보통의 모범생이었던 것 같다. 사람의 천성은 잘 바뀌지 않는다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나의 모습은 직장에서나 사람과의 관계에서나 똑같이 표현이 되었고, 그래서 여행에서도 난 언제나 모범생이다. 가끔은 일탈을 꿈꿔보아도 좋으련만.



약 5분가량 기다렸을까?

내가 타게 될 보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이곳에서 출발하는 보트의 시간표도 모르고 그냥 온 건데 운이 좋았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현재 내가 있는 P2라는 지점에서 목적지인 P3로 가는 보트는 30분에 한 대씩 있었다. 호수를 건너는 데에는 대략 15분이 걸리니까 사람들을 태운 보트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을 하고, 사람들을 내려준 후에 다시 그 보트가 이 지점으로 돌아온다면 왕복이니까 대략 30분이 걸리는 것이 계산상으로도 딱 떨어진다. 만약 보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 도착을 했더라면 아마도 난 30분을 기다려야만 했을 것이다.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하고 후회의 한 마디를 내뱉었을까, 아니면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는데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을 벌었으니 잘되었다고 말했을까. 후자였기를.



드디어 보트에 올라탔다.

31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내 인생에서 여태껏 봤던 호수들 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웠다. 호수에 배가 뜰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깊이도 꽤 된다는 말일 텐데, 이렇게 맑을 수가 없다. 보트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정말 느리게 느리게 움직이는 이 탈 것 덕분에 뺨에 스치는 기분 좋은 바람을 마음껏 느껴본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말이다. 트레킹을 할 때와는 또 다른 시선으로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을 즐길 수 있어서 보트를 탔던 15분이 난 정말 좋았다. 앞을 보며 걸어가지 않아도 되니 뭔가 더 여유롭게 그리고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좋으면 좋을수록 시간은 정처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법. 15분이 정말이지 순식간에 지나갔다.



트레킹 후 먹는 치킨과 맥주는 최고의 선물

 P3에 도착했습니다,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안내방송이 아닌 사람의 목소리로 도착을 알려주신다. 그리고는 혹시나 호수에 빠지거나 다치는 등의 위험한 상황을 대비해서인지 내리는 승객들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아주신다. 오늘이 불과 여행 2일 차이지만, 크로아티아인들은 친절함이 몸에 베인 것 같다는 느낌을 이미 받았다. 그것이 의도된 친절이 아니라 가슴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웃음이 묻어나는 친절함이랄까.


주린 배를 움켜쥐고 도착한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내 휴게소.

아마도 레스토랑이라는 말보다는 휴게소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잠깐 쉬어갈 수 있는 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처럼 긴 트레킹 사이에 잠시나마 쉬어가거나 배를 채울 수 있게 마련된 간이휴게소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이곳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바로 입장하지 않고 입구에 마련된 메뉴와 가격이 적힌 목록을 아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아니 굳이 왜 밖에 서서 그렇게들 보고 있지? 안에 들어가서 천천히 보고 주문해도 될 텐데 말이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낯선 장소에서는 긴가민가할 때 주변을 둘러보고 많은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만 해도 중간은 가기 마련이라는 내 나름 살아오면서 터득한 눈치로 나 역시도 메뉴판을 슬쩍 한 번 보는 척하며 대충 훑어본다. 앞서 말했듯이 여행 준비에 있어서도 모범생에 완벽주의자인 나는 이미 이곳에서 치킨을 먹으리라 결심을 하고 왔던 차라 사실 굳이 메뉴판을 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하니까 나도 모르게 따라 할 수밖에.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모두들 그랬던 이유가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서 계신 점원 분께서 무엇을 주문할지 물어보신다. 내가 메뉴를 말하자 쟁반을 하나 주시면서 음식 받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곳에 서있다가 음식이 나오면 받아서 가면 된다고 알려주신다. 그랬다. 이곳은 마치 학창 시절의 일상이었던 학교 식당을 연상케 했다. 순서대로 쭉 줄을 서서 밥, 국, 반찬 등 나는 식판만 들고서 조금씩 이동만 하면 순서대로 하나씩 음식을 받았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는 그런 주문방식의 식당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미리 다들 밖에서 메뉴를 보고 무엇을 먹을지 결정을 하고서 들어와야지 바로 주문을 하고 또 받아가니, 줄이 밀리지 않을 터. 역시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잠시 후, 내가 주문한 로스트 치킨(ROSTED CHICKEN)과 맥주가 나왔다.

나온 음식과 음료를 모두 쟁반에 담고 바로 옆에 비치된 코너에서 칼이나 포크, 티슈 등 필요한 도구들을 챙긴 후 카운터에서 결제를 하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처음 해보는 주문이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따라 하니 아주 자연스러웠다 생각한다. 좋았어.

로스트 치킨을 한 마리로 주문을 할까 1/2로 주문을 할까 망설이다가, 사이드로 프렌치프라이가 함께 나온다고 적혀있어서 Half로 주문을 했는데 양이 둘이서 먹기에 딱 적절했다. 오븐에서 갓 구워낸 듯 따끈따끈한 로스트 치킨은 뭐 말이 필요 없는 맛이었다. 사실 전 세계 어딜 가나 육류만큼 실패가 적은 음식도 잘 없는 법. 그 조리법이 나라마다 약간씩 다르고, 어떤 곳은 소스에 찍어먹고 또 어떤 곳은 고기 위로 간을 하거나 향신료를 뿌리는 등 조금씩 저마다의 방법이 있지만 웬만하여서는 실패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처음 간 나라에서 그 나라 전통음식만 먹어보기엔 위험부담이 있을 때면 으레 난 고기메뉴를 시키게 된다. 기름이 쫙 빠져 담백하고 쫄깃쫄깃한 것이 참으로 맛있다. 그냥 먹어도 사실 간이 딱 맞았지만 접시에 함께 나온 빨간 소스에 찍어서도 한 입 먹어보았는데, 이건 정말이지 천국의 맛이었다. 이후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면서 꽤 자주 등장하는 이 빨간 소스는 약간 매콤해서(한국의 고추참치 느낌) 타지에서 김치가 그리운 한국인 입에는 정말이지 이보다 더 딱 맞을 순 없다. 지금처럼 치킨을 찍어먹어도 맛있고, 해산물도 괜찮고, 육류에도 잘 어울리니 만능소스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을 정도. 한국에서도 두고두고 먹고 싶어서 하나쯤 사 오고 싶어서 슈퍼마켓을 정말 열심히 찾아다녔건만, 도통 겉포장만 봐서는 알 수가 없어서 결국 한국까지 가져오는 것에는 실패했다. 한국에 있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에게도 맛 보여주고 싶었는데, 두고두고 아쉽다. 한국의 패스트푸드점에서 많이 보던 익숙한 비주얼이지만 훨씬 더 맛있는 감자튀김과 함께 오주스코(크로아티아의 유명 맥주) 한 모금. 열심히 땀 흘리며 운동한 후에 마시는 맥주의 첫 한 모금은 진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생한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인 듯하다. 사실 2시간 가까이 트레킹을 했으니, 그 어떤 음식이라도 맛있을 테지만.



배를 채우고 나니 이제 좀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내가 앉았던 테이블 바로 옆으로는 큰 창이 있었는데, 바깥 경치가 어떠한가 감상도 할 겸 고개를 돌리던 그 순간, 거짓말처럼 후드득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 체크했던 일기예보에서 오후 12시부터 플리트비체에 비 소식이 있었다. 에이, 설마 진짜로 비가 오겠어? 라며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우산도 없이 길을 나섰던 나의 자만을 자책할 여유도 없이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에 아직 반이나 남은 트레킹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서둘러 식당을 나와 다시금 길을 나선다. 정말 거짓말처럼 지금 시각은 오후 12시 20분이었다. 크로아티아 기상청의 정확성에 박수를.



빗방울이 거침없이 굵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샌가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고 있다.

우산도 우비도 없는 난 그냥 플리트비체에 떨어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 풍경을 둘러볼 경황도 없이 빠르게 빠르게 표지판만 확인하며 끝을 향해 내려가는 길.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폭포의 물 양이 더욱 많아진 느낌이다. 불어난 폭포때문에 곧 물에 잠기거나 혹은 떠내려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나무들도 보이지만 지금은 그들보다 내 앞길이 더 걱정. 중간중간 잠깐 쉬어갈 수 있는 나무 벤치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있어 그런 여유도 느끼지 못했다. 이 벤치에 앉아 멋들어진 플리트비체 호수를 병풍 삼아 사진을 찍는다면 분명 흔히들 말하는 인생샷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생각되리만큼 멋진 풍경도 지금의 나에겐 그냥 스쳐 지나가는 한 폭의 그림일 뿐. 아쉽다.



비록 비는 내리지만 그 비에 감춰질 리 없는 플리트비체의 멋진 풍경들.

비록 카메라가 젖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셔터를 멈출 수가 없는 순간순간들. 비록 조금이라도 비를 피해보고자 상의에 붙어있던 뒤집어쓴 모자가 의미가 없을 만큼 머리카락에선 물이 뚝뚝 떨어지지만 자꾸만 웃음이 나던 그때. 비록 비에 젖은 운동화에 건조되지 않은 세탁기에서 막 꺼낸듯한 느낌의 양말을 신고 있어도 그것마저도 싫지 않았던 그때 그 순간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비록 최악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내 눈 앞의 풍경만큼은 최고였으니.



뚜벅뚜벅 열심히 걷다 보니 드디어 마지막이 보인다.

그런데 난 또 하이라이트에서 발목이 잡히고야 말았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가장 큰 폭포이자 가장 유명한 포토스팟이기도 한 78m 높이의 벨리키 폭포(VELIKI SLAP)로 가는 길이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탓에 구간 통제가 되어있다. 잘 모르는 내가 언뜻 보아도 지금 상태로 계속 비가 내린다면 트레킹을 위해 나무로 만들어놓은 길도 곧 덮여 아예 길이 없어질 것만 같았다. 꽃보다 누나에서 출연진들이 엄청나게 거대한 폭포를 배경 삼아 벤치에 앉아 멋진 사진을 찍었던 바로 그 장소가 바로 벨리키 폭포였고, 나 역시도 폭포 아래에 앉아 멋지게 독사진을 찍겠노라 다짐을 하고 이곳에 왔는데... 역시, 여행이란 인생처럼 뜻대로 다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렇게 또 실감한다.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한참을 그렇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통제구간 앞에서 서성거렸다. 이 나무만 없다면, 이길로 곧장 조금만 더 걸어간다면 꿈에 그리던 벨리키 폭포를 마주할 수 있을 텐데... 정말 아쉬웠다. 하지만,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져 왔고 행여나 미련한 미련 때문에 감기라도 걸렸다가는 아직 많이 남아있는 나머지 여행까지 모조리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벨리키 폭포를 가까이에서 볼 수 없는 아쉬움보다 그쪽이 훨씬 더 아찔하기에, 이건 내가 고집을 피운다고 해결되는 상황이 아님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곧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난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역시 신은 날 버리지 않았다.

하나를 포기하면 또 다른 하나가 얻어지는 법. 벨리키 폭포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출구를 향해 걸어가던 내 시야에 들어온 믿기지 않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 영화 '아바타'의 모티브가 되었을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법한 정말이지 기가 막힌 절경이다. 물 색깔이 어쩜 이렇게 신비로울 수 있을까. 일부러는 절대 만들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오묘하면서도 독특하면서도 신기한 호수의 색과 사이사이를 흐르는 작은 폭포들의 향연.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서있는 이곳이 지구인지 천국인지 그 순간 분간이 흐려졌다. 아름답다, 멋지다, 예쁘다, 감동적이다 등 이런 상투적인 단어만으로는 이때의 감동을 다 표현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 내가 알고 있는 단어가 이 정도밖이라는 현실이 안타까울 만큼.


감동의 여운을 느끼며 출구에 거의 다다를 무렵, 영화처럼 만나게 된 벨리키 폭포.

폭포로부터 튀는 물을 감수해가며 찍는 리얼 사진은 남길 수 없었지만 멀리서나마 그토록 꿈에 그리던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에서 가장 큰 폭포를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모든 것이 꼭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아야지만 예쁜 것은 아닐 테니. 때로는 이렇게 멀리서 바라봄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에서 가장 거대한 높이 78m의 벨리키 폭포(VELIKI SLAP)


4시간 30분간의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트레킹이 끝이 났다.

등산도 싫어하는 내가 만약 한국이었다면 우비도 우산도 없이 맨몸으로 이렇게 긴 시간 비 맞으며 트레킹을 할 수 있었을까? 크로아티아니까, 플리트비체니까, 난 지금 여행 중이니까 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게다가 내 옆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던 나의 여행 동반자가 함께해주었기에 끝까지 무사히 올 수 있지 않았을까. 오늘의 트레킹이 나에겐 단순히 골인지점에 도착하였다는 의미만이 전부는 아니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나에게 선사해주었던 플리트비체로부터의 멋진 선물에 감동을 받았고, 비와 추위를 견디고 참는 법을 배웠고, 그렇게 나는 오늘 또 한 뼘 성장했다.

 


기대했던 벨리키 폭포를 눈앞에서 보지도 못했고, 비로 인하여 통제된 구간이 많았지만 그 덕분에 다음 일정으로 조금 더 빨리 이동할 수 있게 되어 황금같은 시간을 벌었으니, 역시 우리들 인생에서 무조건 손해 보는 일이란 없는 것 같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그때의 내가 행복하다 느끼면 그것이 최고인 것을.

쨍하고 맑아서 그림 같았던 상류 구간과 어마어마한 비가 쏟아져 운치 있었던 하류구간, 그 모든 게 좋았다. 플리트비체에서 들었던 물소리도, 뺨에 스치는 신선한 바람의 느낌도, 향긋한 풀내음과 새들의 지저귐까지 그 모든 것들이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임을 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장소>라는 말에 200% 가슴 깊이 공감 또 공감하며, 나의 크로아티아 여행의 두 번째 목적지로 부푼 가슴을 안고 나는 떠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4. 요정들이 사는 호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