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garettes After Sex
그들의 밴드명처럼, 그리고 흑백의 앨범 커버처럼, 침대 위 아련히 내려앉는 섹스 후 담배연기와도 같이 흐릿하고 몽환적인, 그리고 알싸함과 나른함이 짙게 배어있는 사운드를 선사하는 밴드 Cigarettes After Sex.
그들이 지난 6월, 데뷔 앨범으로 기록될 셀프 타이틀 앨범 <Cigarettes After Sex>를 발표했다. 2016년 발표한 싱글 <K.>를 시작으로 모두 10개의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는 최근 앨범은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고 있는 리더 Greg Gonzalez를 주축으로 2008년 밴드가 결성된 후 9년 만의 첫 정식 스튜디오 앨범의 발표라는 점에서 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밴드 결성 이후 2011년 데모 앨범 격인 <Romans 13:9>을 시작으로 한 장의 EP, 그리고 다섯 장의 싱글을 꾸준히 선보이며 자신들만의 사운드를 서서히 구축해온 뒤 나온 앨범이라는 점에서 밴드의 개성을 온전히 녹여내어 진화시킨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텍사스 엘 파소에서 결성된 후 밴드는 몇 번의 음악적 변화 끝에 2011년 <Romans 13:9>을 선보이지만, ambient pop 혹은 dream pop, shoegaze 등으로도 불리는 현재 그들의 사운드는 그들의 대표곡 중 하나인 Nothing's Gonna Hurt You Baby가 첫 번째 트랙으로 실린 2012년 EP <I.>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공식적인 첫 번째 음반으로 2012년에 발표된 EP를 꼽고 있으며 2011년 음반은 데모 음반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 4곡으로 이루어진 무명 밴드의 EP는 발매 당시 큰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 후 브루클린으로 활동장소를 옮겨 멤버 변경 후 다양한 공연 활동을 하며 2015년 발표한 싱글 Affection이 서서히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새롭게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기교 없이 덤덤하게 울리는 베이스, 몽롱하게 퍼지는 신디사이저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일렉기타, 그위에 오버랩되는 중성적 보이스의 차분한 읊조림으로 시작되는 Greg Gonzalez의 사적 인간관계에 얽힌 가사들까지, 이런 것들이 함께 얽혀 서서히 빌드업되며 완성되는 그들의 음악.
어쩌면 이제 음악의 장르와 분위기를 결정짓는 것은 단순히 화성, 멜로디, 리듬 같은 음악의 고전적 3요소 이외에도 사운드 그 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아진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거기에 아티스트의 이미지 역시 한몫하고 있음은 무시할 수 없다. 만약 이들의 밴드명이 Sunshine in the Morning 같은 류였다면 어땠을까. 확실히 Cigarettes After Sex라는 밴드명은 음악의 전체적 컬러와 이미지를 더욱 구체화시켜 그 느낌을 청자에게 전달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12년에 발표한 EP <I.>의 첫곡 Nothing's Gonna Hurt You Baby를 골라봤다. 개인적으로 그들을 처음 알게 된 곡이라 그런지 다른 곡들보다 한번 더 손이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