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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Mar 26. 2020

오카다 다카시 <애착 수업><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독서노트

사람들이 심리학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지식을 알고 싶다는 욕망도 있겠지만 대개는 자신의 문제점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대중교양서로 출간된 심리학 책들은 대부분 가볍게 쓰인다. 전문적인 용어와 해설보다는 심리학 개념과 원인, 실제 사례, 해결 방법 등으로 나누어져 원인과 결과를 알기 수월하다. 또, 이런 구조는 요즘 심리학 서적뿐만 아니라 과학서 혹은 자기 계발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전문적인 정보(전문 지식이라곤 못하겠다) 위주의 책들을 소비하는 독자의 자세는 아마도 '발췌'가 아닐지. 자기가 원하는 정보에 밑줄을 긋고 쓸데없는 대목은 넘어가는 것. 특히나 연구 결과나 실제 사례가 알만한 것들이라면 굳이 정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이런 책들에 회의적인 것도 어쩌면 비슷한 이유다. 피상적인 건 둘째치고 적은 분량에 설명된 강력한 개념에 독자들의 사고를 일렬로 세우고 '알았다'는 착각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복잡한 내면세계가 연구자가 주장하는 하나의 개념으로 깔끔하게 설명된다면 그 책을 과연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창의적이고 풍부하며 '고심의 흔적'이 보이는 책이다. 연구자로서 자신의 개념을 이론화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했는지, 특히 자신의 주장이 독자가 오해할 소지(결정적 혹은 환원적 사고를 하도록 부추기진 않을까 하는)를 고려하고 반론과 회의의 과정을 겪은 책은 독서 내내 한 글자로 허투루 읽을 수 없는 긴장감을 준다.


오카다 다카시는 일본의 정신과 전문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는 20년 넘게 환자들을 치료한 실질적 경험과 자신의 연구 경력을 바탕으로 '애착 장애 이론'에 대한 책들을 집필했다. 애착 장애 이론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어릴 적에 아이와 부모 사이에서 형성되는 관계의 모양을 몇 가지 애착 유형(크게는 안정형, 회피형, 불안형)으로 나눌 수 있고, 이러한 유형별 문제점은 자발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이상 평생 안고 가야 할 성격 장애로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까지는 그리 신선한 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으로 태어나 처음 맺는 사회적 관계인 부모는 자녀의 성향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애착'이라는 개념을 유형화한 뒤 새로운 문제 해결 관점을 제시한 게 독자들이 매력적으로 느낀 특별한 지점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은 (내 기준에서) 좋은 책은 아니다. 며칠 동안 그의 저서를 세 권을 읽었는데 그가 자신의 주장 안에서 맴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애착 장애 유형별 설명은 좀 더 섬세하게 다루어졌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안정형의 지수가 가장 높았고 그다음은 불안형-회피형은 동등했다. 그러나 안정형에 공감하다가 회피형 혹은 불안형에서 나의 모습을 찾을 때도 있었다. 유형별 특징을 반복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복합적 유형의 사례를 소개했다면 어땠을지 아쉬움이 남는다. 애착 유형의 예시로 거론된 실제 환자 사례와 솔루션은 동어 반복처럼 지루하게 느껴질 뿐 새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어렵다면 애착 유형 관련된 다양한 연구 사례를 소개했다면 (반론하는 연구라도) 내용이 조금 더 풍부하지 않았을까?


물론 관점이 없는 책은 아니다. 저자는 애착 장애는 '안전 기지'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안전 기지란 대상이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있는 피난처 같은 공간으로, 비정상적인 애착 유형으로 성장하더라도 차후에 누군가 안전 기지 역할을 한다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형별로 안전 기지 역할 방법도 상세히 제시되어 있는데, 핵심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같은 자리에서 변치 않고 기다려주는 태도다. 문제 애착 유형을 지닌 사람도 굳건한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면 자연스레 신뢰를 쌓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타인에게 정성을 쏟는 일은 성실함과 인내심이 필요한 일종의 정신노동이지만, 누군가에게 안전 기지가 되어줌으로써 자신의 안전기지도 생긴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는 새겨둘 만하다. 저자는 특히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다.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양육과정에서 엄격한 규율도, 방임도, 과도한 관심도 자녀에게 모두 독이다. 옳은 부모의 모습이란 아이의 실수를 곧바로 교정하지 않고 한 발자국 뒤에 서서 지켜봐 주는 것, 작은 목소리에도 반응하고 응답해주고 중대한 잘못은 꾸짖음으로 대응하되 아이도 부모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이 모든 게 사랑해서임을 '느끼게'하는 것이다.


"가정마다 옷장 속에 다른 모양의 해골바가지를 숨기고 있다"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오싹한 말인데,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가족도 저마다 사연과 아픔, 즉 걱정거리가 있다는 거다. 나는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가정도 있을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만약 자신의 양육방식이나 가족이 '완벽'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어떤 보상심리로부터 출발한 확신인지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치료가 필요한 대상은 다정한 표정으로 환자를 보호하는 부모인 경우도 많다. 진정으로 건강한 부모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가 입었을 상처를 수시로 헤아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삶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아픔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 더 이상 문제가 번복되지 않도록 힘쓸 뿐, 신기루 같은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에 집착하지 않는다. 또한 자녀를 신뢰하며 독립된 인격으로 바라본다.

마찬가지로 부모에게 상처 받은 아이들도 나쁜 기억으로부터 해방되려면 아픈 자리를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즉, 당시 자신의 부모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문제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지 객관화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그는 상처에 존속된 존재가 아니다.


관계는 반드시 확장되어야 한다. 부모라는 최초의 관계가 자신의 인생 전반을 규정짓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며 관계의 고유한 '의미'를 찾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변화해야 한다.

상처를 직시하고, 객관화하고, 인정할 것. 나는 자신의 상처를 자신만의 이야기로 승화하고 그것에게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주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누구보다 긍지 있는 삶을 산다. 또한 삶의 핍진함을 알기에 타인의 상처에 함부로 코멘트를 달거나 자신의 경험이나 정보를 대입해 분석하지 않는다. 대신 도움이 필요한 이의 곁에 서서 그들의 안전 기지가 되어준다. 저자는 말한다. "위험한 도박을 하지 않고, 아무 상처도 받지 않으면서 든든한 안전 기지를 확보하는 것이 최선이다. 결국 안전 기지는,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이 아닌 자신의 주변이나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전 기지가 되어주려고 노력하다 보면 본인 역시 안전 기지를 얻을 수 있다. 그 대상은 조금만 신경 쓰면 주변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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