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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Mar 26. 2020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독서노트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어디서 보고 들은 이야기, 어제 읽은 책의 문장,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기억, 고민하던 문제와 일련의 깨달음이 보기 좋게 뒤엉켜 허공을 부유한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의 파편들을 퍼즐처럼 맞추려면 우선 자신을 설득할 문장이 필요하다. 내뱉는 순간 사라지는 말과 다른 글의 무게를 느끼며 고심하는 얼굴로 자판을 치다가 이내 백스페이스를 꾹꾹 누른다. 필연적인 검열의 과정, 의혹과 회의로 가득한 이 불편한 과정을 무사히 통과한 글은 겸손한 힘을 얻는다.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가 글쓰기와 온전한 사랑에 빠졌다는 걸 확신했다. 그에게 글쓰기란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보인다. 어떤 대상을 열렬히 사랑하면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발견하다가 궁극에는 새로운 의미를 발명하는 것처럼. 그의 글은 힘차다. 적확한 단어 사용과 단문의 구성, 아포리즘처럼 통찰력 있는 사유의 문장들이 곳곳에서 무게감을 준다. 비슷한 종류의 여느 글과는 다르다. 자신이 아닌 타자 쪽으로 활짝 열려 있는 글, 그의 말대로 "누군가를 계몽하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감응하기 위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글쓰기가 삶의 위엄을 지키는 행위임을 믿고 모든 이가 글로 자신의 욕망과 권리를 표현하는 "삶의 옹호자"가 되기를 바란다. 글쓰기는 근본적인 고독을 체험하는 일이지만 고립의 과정이 될 수 없음을 '함께 쓰기'로 증명하고자 한다.

어떤 책은 작품이 아닌 창작자가 남는다. 책을 읽다가 불현듯 책날개에 있는 작가의 사진을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고, 음악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음악가에 대한 친근감이 부풀기도 했다. 대개는 솔직한 작품들, 새롭고 놀라운 작품을 만들겠다는 예술적 야욕을 발견하기 어렵거나 자신을 미화하고 변장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난 글이 그랬다. 은유 작가가 자신의 글쓰기 수업을 참여한 학인들에게 기대한 것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자신의 고유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경험을 구체적이고 진솔하게 서술해야 하지만 어떤 경험은 직시하기는커녕 발설하기도 고통스럽다. 공적 영역에 글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은유 작가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누군가 읽는다는 전제로 쓰인 글은 무조건 설득의 힘을 지녀야 한다. 만약 일기장처럼 비밀스러운 공간에 글을 쓴다면, 우리는 자신의 사고가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지, 모자람과 과함이 있는지 검열할 필요가 없으며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덜 분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글 쓰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새삼 깨달았다. 더 넓은 의미로 인문학을 배우는 일 자체가 현실성 없는 일종의 도피로 취급되는 요즘 그럼에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 무엇을 끝까지 부여잡고 가야 하는지 상기했달까. 그러니까 친구를 얻은 것처럼,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긴 대화를 나눈 것처럼 잔잔한 용기를 얻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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