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노트
2019년 1월부터 3월까지 사이먼 래틀 뒤를 이어 베를린 상임 지휘자로 발탁된 키릴 페트렌코와 분데스유겐트오케스트라가 함께한 레너드 번스타인 <Sinfonische Tänze für Orchester aus "West Side Story">, 윌리엄 크래프트 <Konzert Nr.1 für Pauken und Orchester>,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Das Frühlingsopfer>의 공연을 시작으로 신뢰하는 지휘자 필립 헤레베헤와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의 바흐의 곡들, 멘델스존 <Elias>, 그리고 어제 공연의 주인공인 젊고 재능 있는 프랑스 출신 지휘자 라파엘 피숑과 피그말리온의 바흐<H-Moll Messe>를 경험했다.
사람들이 굳이 공연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모로 번거롭고 방해요소도 많은 공연장에 가서 돈을 내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 공연을 감상하는 것. 다양한 대답이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현장성, 명확히 말하면 '개입'하는 느낌 때문이다. 공연에서 듣는 게 음원으로 듣는 것보다 나은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은 능력만 있다면 개인이 충분히 좋은 환경을 조성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음반이야말로 거의 최선의 연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예술의 현장에서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 존재로 존재하고, 결정적인 흐름 속에 함께 서 있는 것이 황홀하게 여겨지는 이유로 공연장을 찾는 듯싶다. 음악은 잡히지 않는 무형의 것이어서, 그리고 나는 욕망을 가진 인간이어서, 가끔 너무나 아름다운 곡을 들으면 소유의 욕망이 생긴다. 그때 공연의 현장에서 온전한 집중의 시간을 가지며 조심스럽게 보이지 않는 형체를 더듬어 보기도 하고, 앨범이라도 구매해서 내 주변에 물질로 두고 싶을 때도 있다. 세상에 아름다운 곡은 무수히 많고, 망각은 습관이고,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으므로.
J.S. Bach / Ich hatte viel Bekümmernis, BWV 21 (Herreweghe)
바흐는 평생을 두고 들어야 할 음악가다. 종종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듣곤 하는데, 바흐의 곡들도 세계를 이해하는 만큼 들린다. '바흐는 완벽한 우주'라는 표현은 세계의 질서에 대한 일종의 은유이고 바흐에게 그 존재는 여지 없이 신이다. 필립 헤레베헤는 한 인터뷰에서 "당신은 신자입니까?"라는 질문에 "교회에 묶여있지 않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모든 인간은 신자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하면서 "연주회장에서 함께 음악을 들을 때 사람들은 서로서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와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느낄 수 있다. 물론 그것을 신이라 명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모호하게 들릴 수 있으나, 내게는 가차 없는 진실의 문장으로 여겨졌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도 바흐를 끝내 이해하지 못할 수 있고, 우주와 자연, 인간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신으로 향하는 길은 좁아지고 만다. 여기서 '신자'라고 일컫는 믿음의 사람은 조화와 아름다움, 더 높고 탁월한 것에 대한 열망과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헤레베헤가 지휘한 바흐 공연의 제목은 Lebenslicht, 즉 삶의 빛이다.
연주와 함께 상영된 Clara Pons 감독의 영상은 Ich hatte viel Bekümmernis BWV21을 배경으로 자살을 결심한 중년 여성의 이미지로 시작된다. 그래서일까, 이제 그 곡을 들을 때면 갈 길을 잃어서 고통 받는 이들과 언제 꺼질지 모르는 미약한 촛불 앞에 함께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시간이 흐르면 바흐를 조금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20대의 끝에서 경험한 이 완벽한 공연은 평생 잊지 못할 거다. 무엇이 있는가 그저 더듬거릴 뿐인 지금 이 순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