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남국이구나!
대한민국 최남단, 기후마저 육지와은 다르다는 제주도.
한겨울에 공항에 내려도 팜트리와 푸른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서귀포는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단다. 2013-2014 겨울, 회사를 그만두고 찾은 제주에 도착해서 처음 느낀 것은 한결 덜춥다라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내내 움츠리고 다니느라 잔뜩 올라간 어깨가 비로소 조금 내려온다. 가을과 겨울의 모호한 경계 속에 있는듯한 제주에서는 방한부츠라던지, 나를 하키선수 뺨치게 거대하게 해주는 패딩이 필요한날이 많지 않겠다. 특히 서귀포는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다니 이 얼마나 좋은가말이다.
차가운 비바람과 바닷바람의 습격
'제주도는 남쪽이니까 당연히 따뜻하겠지'라는 내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찬바람과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기온과는 관계없이 나의 온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들고, 일주일이 넘게 계속되는 우중충한 날씨와 옆으로 날아오는 빗방울과 눈송이, 그리고 해안가를 덮쳐오는 집채만한 파도들은 제주바람과의 시너지를 만들어내며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제주살이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제주의 겨울을 세번째 겪고 있자니 이제서야 제주 겨울의 화려함이 눈에 보인다.
위미리의 동백, 서귀포의 먼나무열매, 한림공원의 수선화, 노지감귤과 신풍목장의 귤껍질까지 총천연색의 집합이다.
지난 겨울 위미리의 숨겨진 겹동백 나무들을 발견했을때 우리 일행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팀버튼 영화속의 한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올해 다시 찾았을때는 셀프웨딩을 촬영하는 커플, 관광객들까지 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도 관광지가 되어버리겠구나 하는 마음에 아쉽기도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제주를 이렇게 이들도 좋아하게 될거라고 생각하니 금새 기분이 좋다. 다만 사유지인것 같은데 사람이 이렇게 많이 오다가 주인이 못들어가게하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된다.
그런가하면 집에서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면 신풍목장에 도착할 수 있다. 겨울 해풍에 약재로 사용할 귤껍질을 말리는 장관을 볼 수 있는데, 푸른 바다와 오렌지 물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서귀포에 가을부터 초봄까지 빨간 열매를 달고 길가에 심어진 이 나무는 '영원히 이름을 모르는 나무'라고도 한다는 '먼나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아재개그가 필요할것 같다. 반질반질 윤이나는 초록잎과 마치 어릴때 좋아했던 과자 '짝꿍'의 알갱이 같이 오밀조밀 모여 열린 빨간 열매가 꼭 크리스마스나무 같다.
남들은 봄, 여름에 피워내는 꽃을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피워내는 동백, 알맹이는 흙위에 나뒹굴고 껍질만 귀한 대접받는 귤껍질, 가을에 맺은 열매를 겨우내 달고 있는 먼나무를 보고 있으면 인생에 대해 또 한번 생각하게 된다.
꽃도 다 필 때가 있고, 껍질도 귀한 대접 받을 때가 있으며, 열매도 딸 때가 있다고. 이렇게 또 자연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