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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 Oct 19. 2016

제주살이를 마치고


내 인생에서 다시없을
반짝거리는 나만의 시간



 8개월 전, 25개월의 제주살이를 끝냈다.

 8개월 전에 이미 제주살이를 마쳤지만 이제야 그 마무리를 짓는 것은 제주에서의 기억들을 숙성시켜 와인처럼 깊은 맛을 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25개월 동안의 제주생활은 나도 모르게 끝내기로 결정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 날 갑자 기라고 표현하지만 그때의 나는 바다와 별과 바람과 함께 수만 번 고민했다. 구구절절 이별의 이유를 설명하기는 구차할 수 있으니 그냥 아마 나 또한 제주가 품고 있었던 또 하나의 이별이었나 보다고 생각하기로...

 

제주시 이도동 어반르토아


 제주에 살기 시작하면서 평소와는 달리 아무런 다짐도 세우지 않았다. 아무런 다짐도 목표도 세우지 않아도 천천히 살아낼 수 있을 것이라 다독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기 시작했다.

 제주에서의 기억들을 되짚어 보면 꼭 제주가 아니어도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 아마 마음의 여유가 가져다준 선물들이 아니었을까?

  

1. 마당 있는 집에 살기

2. 자전거로 제주도 반 바퀴

3. 완주 부담 없이 아무 때나 올레길 걷기

4. 해안도로로 제주도 한 바퀴 드라이브

5. 승마 배우기

6. 캘리그래피 배우기

7. 꽃꽂이 배우기

8.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따기

9. 서핑 배우기

10. 한라산에서 눈썰매 타보기

11. 제주 바다에서 스노클링

12. 한라산 백록담 보기

13. 아침산책으로 오름 오르기

14. 겨울이면 공짜 귤 먹으며 오동통통

15. 친구가 잡아다준 고등어와 한치로 자급자족 식탁 차려보기

16. 하루 종일 바다 보이는 카페에 앉아있기

17. 비행기 타고 명절 보내러 고향 가기

18.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늘 새롭게 여행하기

19. 한라산에 누워 별밤 보기

20. 한라산 계곡물에 발 담그고 백숙 먹기

21. 주스 장사해보기

22. 영화같이 펼쳐진 각종 꽃무덤에 들어가 보기


 잘 숙성시킨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보니 나의 25개월이 이렇게 행복하고, 신나고, 즐거웠다. 앞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꺼내볼 시간이 이렇게 길어진 것이다.





 서울생활을 다시 시작한 지 10개월,

 서울에서 달리는 친구들을 보며 뒷걸음치고 있는 내가 불안하던 순간도 있었지만 제주에서의 25개월 덕분에 누구의 어떤 것에도 맞추지 않고 온전히 나의 속도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 앞으로의 모든 시간들을 다시없을 반짝거리는 나만의 시간으로 만들어 나가도록 한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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